북한은 3.1절때면 `반외세`를 크게 강조하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해 3.1운동 기념 사설을 통해 주한미군을 평화통일의 장애물이라고 지적하며 반미투쟁을 촉구한 것에서 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동신문은 "남조선에 미제 침략군이 남아 있고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간섭이 계속되는 한 나라의 통일을 실현할 수 없으며 민족의 자주권과 안녕, 나라의 평화를 수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6.25전쟁때 일어났던 미군의 민간인 학살사건이 불거지고 주한 미군 병사의 살인사건이 발생, 반미투쟁 촉구가 거셌다.

올해 3.1절때도 6.15 남북 공동선언 채택과 북한의 자본주의 국가와의 외교관계 강화 등 환경이 지난해와 비교해 크게 변했지만 역시 외세 반대 입장을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언론은 최근 "우리민족 내부 문제인 조국통일문제에 외세가 간섭할 명분도 끼어들 자리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이 3.1절때 반외세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운동이 외세인 일제에 항거해 일어난 민족해방운동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북한은 3.1운동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북한은 3.1운동을 실패한 민중봉기라고 밝히고 있다. 북한의「조선전사」는 "3.1봉기는 각계각층 애국적 인민들의 적극적인 참가와 헌신적인 투쟁에도 불구하고 일, 미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교살책동과 주체적인 혁명역량이 튼튼히 준비되지 못한 탓으로 투쟁목적을 이룩하지 못한채 끝내 실패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북한은 이 운동을 `3.1인민봉기`로 쓰고 있다.

「김일성 저작집」은 3.1운동의 실패 원인데 대해서도 "거족적인 반일항쟁이 탁월한 수령의 영도, 혁명적인 계급과 혁명적인 당의 영도를 받지 못한 데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또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의 불견실한 입장과 그들의 무저항주의와 정치적 투기행위는 3.1운동을 실패로 돌아가게 한 주요한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김일성 주석의 `현명한 영도`가 없었으며 민중봉기가 무장투쟁으로 이어나가지 못하고 무저항주의로 일관했기 때문에 결국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3.1운동의 발생지를 평양으로, 김 주석의 아버지인 김형직이 주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평양방송의 지난해 3.1절 기념 보도는 "역사적인 3.1인민봉기는 평양에서 있은 대중적인 시위투쟁을 첫 봉화로 해서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방송은 이어 "평양에서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며 우리나라 반일 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인 김형직 선생님이 몸소 키운 애국적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이 주동이 돼 10여만의 각계각층 군중이 반일 시위투쟁에 일어섰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당시 평양숭실학교의 교사로 재직하던 김형직이 학생들에게 독립운동정신을 심어 주고 3.1운동의 주도세력으로 키웠으며 또 평양 장대재에 있던 숭덕여학교 운동장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평양에서 시작된 3.1운동은 북부지방에서 남부지방으로 확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민족대표 33인들이 천도교와 불교, 기독교 단체에 의해 선출됐다며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3.1운동이 실패하게 된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이들이 고창했다고 북한은 밝히고 있다.

북한은 그러나 전민족이 독립과 자주권을 위해 궐기한 3.1운동이 실패하기는 했어도 "일제 무단강점자들이 조선인민의 반일 감정을 무마하기 위해 그후 무단통치를 이른바 `문화통치`로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정연식기자 2001/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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