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평양몽(夢)의 하늘』이라는 책 제목을 보자마자 확 눈길이 갔다.

관계 교착을 넘어 한쪽에선 남북관계를 '두개의 적대적 국가관계'로 새로 규정한 마당이고 또 다른 한편에선 '원칙있는 남북관계'와 '자유로운 통일 대한민국' 외에는 그 무엇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서슬퍼런 세상에 '평양몽'이라니.

제목에서 더 아래로 내려가 보니 책의 부제는 '에세이로 읽는 북한 도시 비전'이다. 

지은이 박원호 선생에 대해서는 건설분야 현역 기술사이자 시인이라고 소개되어 있으니 그야말로 평양의 도시학을 전문적 식견과 유려한 필치로 그려냈을 것이라 짐작되어 더욱 기대가 커졌다.

이 책을 내기 전에 이미 『북한의 도시를 미리 가봅니다』(2019), 『평양의 변신, 평등의 도시에서 욕망의 도시로』(2019), 『피양 풍류』(2023), 『가까운 미래 평양-남북물류포럼 칼럼집(공저)』(2023)의 관련 저술이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박원호, 『평양몽(夢)의 하늘』, 도서출판 은누리, 2024. 3. [사진-도서출판 은누리 제공]
박원호, 『평양몽(夢)의 하늘』, 도서출판 은누리, 2024. 3. [사진-도서출판 은누리 제공]

69살의 적잖은 나이에도 엔지니어링 회사의 대표이사이자 건축사 사무소의 부사장으로 일하는 현장감에 기술사의 전문성은 기본으로 장착된데다, (사)남북물류포럼 회원으로서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오랜 세월 협업해온 열성까지 보태졌으니, 평양의 현재와 미래를 구상하는 그의 일가견에 귀기울여야 마땅한 일이었다.

저자는 평양몽을 꾸는 자신을 '평양을 짝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건설엔지니어 관점에서 평양의 도시 인프라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왔다"고 소개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만약 평양이 경제개방에 나설 경우, 도시 인프라를 어떻게 변환해야 할까,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외국 관광객들을 위한 쾌적한 도시 인프라 확충을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주된 관심영역을 시사했다.

책은 △1부. 평양몽과 자력갱생 △2부. 천리마에서 만리마까지 △3부. 북한과 국제협력으로 나누어 총 25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여명거리 △보통강 다락식주택구 △평양의 자전거 △심야 군사퍼레이드와 전력사정 △대동강 교량으로 보는 평양의 미래 △단천 열차전복사고 △태양광 열풍 △서해안 간척사업 △41년만에 준공된 함경북도 어랑천발전소 △관광단지 개발의 전망 △한강하구~예성강 뱃길 복원 △개마고원과 도야마 알펜루트 등 다루는 대상도 흥미롭지만, 필자가 제기하는 의문도 간단치 않다.

몇가지 책속 사례를 살펴보자.

먼저, 여명거리의 초고층빌딩은 전기가 없다면 엘리베이터, 냉난방, 상수도, 오폐수 설비도 무용지물일텐데, 댐에 가둔 물이 꽁꽁 얼어붙는 혹한에도 전기를 생산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안녕한가? 라는 다소 '도발적'인 궁금증이다. 

평양시 전력공급은 동평양화력발전소로는 태부족이고 2015년 최종 완공된 청천강 상류의 희천발전소와 12개 계단식 수력발전소에서 나오기 때문에 나온 걱정이다. 갇힌 물은 더 빨리 얼고 겨울 갈수기에는 저수량도 소규모 수력발전을 위한 수위 이하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기때문이다.

여명거리 주민들이 혹한을 피해 친척집으로 피했다는 유튜브 방송을 보며 든 생각이라고 한다.

2년전 입주가 시작된 보통강 800세대 다락식주택단지에 대해서는 수돗물 공급과 오수 및 하수처리를 비롯해 한 여름 갈수기에 보통강의 수질이 크게 나빠지 않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서해갑문 건설로 북한은 대동강으로 이어지는 내륙운하를 얻게 되었지만 해수유입이 차단되는 바람에 수질오염이 가중되는 부작용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강은 1960년대 이후 평균 5년 주기로 준설공사를 벌이는 등 만성적인 수질오염에 직면해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대동강변을 따라 초고층빌딩이 들어서는 평양을 뉴욕 맨해튼에 빗대 '평해튼'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연약지반인 이곳에 파일기초나 잠함기초를 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는 건물이 기울거나 벽에 균열이 발생하는 '부등침하'(不等沈下)를 원천적으로 막기 어렵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필자는 "조만간 남북의 건설기술자들이 평해튼의 그림자를 제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댈 날을 기대한다"고 했다.

△천리마운동으로 사회주의 이상! 평양을 재건하다(김일성시대 건설정책) △주체건축론, 예술과 프로퍼갠더 사이(김정일시대 건설정책) △만리마는 언제까지 질주할 것인가(김정은시대 건설정책)는 각 시대의 기념비적 건축 5선을 꼽아 북한의 건축사를 최대한 압축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미덕이 있다.

필자의 전문성과 애정이 특별히 돋보이는 대목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22년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언급한 동서해 연결 대운하 건설계획에 대해 대안을 제시한 것과 일본의 산악관광지인 도야마 알펜루트를 벤치마크해 개마고원 일대를 장진강 수력발전소-흥남비료기업연합소-장진호전투-개마고원-백두산에 이르는 세계적 산악트래킹 코스로 개발하자는 제안이다.

동서대운하에 대해서는 총연장 200~250km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대동강 상류와 원산 금야강 노선의 경우 평균 해발 1,000m의 백두대간을 넘는 문제와 운하의 수량 확보 문제, 동절기 결빙을 해결하는 문제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꼼꼼하게 언급했다. 참고할만한 해외사례로 갑문방식의 파나마 운하와 벨기에의 '스트레피 티유 리프트'와 같은 수직 엘리베이터방식, 유럽대륙을 관통하는 RMD(라인-메인-다뉴브강 연결) 운하, 수위가 다른 두 운하를 이어주는 '회전식 리프트' 방식을 적용한 스코틀랜드의 폴커크운하를 소개했다.

그의 결론은 기술적 난점과 천문학적 공사비, 30년 이상 소요되는 공사기간 등을 고려한다면 대운하보다는 고속철 건설이 최선의 방안이라는 것. 이 문제 역시 현지를 편답한 바 없는 그로서는 북의 기술자들과 머리를 맞대야 할 일이겠다.

△해외 건설사업을 남북합작으로 한다면 △블라디보스토크항, 중국 품에 안긴 이후 △연해주 개발, 남북공조의 주무대로 만들 수 있다 △하노이, 평양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원산갈마 관광지구, 쿠바의 바라데로(Varadero)가 롤모델인가? 등은 꽁꽁 막힌 남북관계에서도 북이 추진할 수 있는 국제협력 가능성을 따져 본 필자의 제안이다. 

'평양을 짝사랑하는' 한 건설 분야 전문가의 진실한 탐구를 따라 가보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앞서 출판한 도서를 함께 읽다보면 '평양몽'의 세계에 보다 깊숙히 빠져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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