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1910년 3월 26일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 내에서 동북아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하였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와 리준 열사의 유묵』, 2019년 3월,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아 예술의전당 서예관에서 개최한 독립운동가 자료전에 나란히 걸린 안중근 의사와 리준 열사의 유묵. 안중근 의사와 리준 열사는 국체보상운동에서의 동지이기도 했고, 리준 열사는 안중근 의사가 설립한 학교를 방문하여 연설을 하기도 하였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안중근 의사와 리준 열사의 유묵』, 2019년 3월,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아 예술의전당 서예관에서 개최한 독립운동가 자료전에 나란히 걸린 안중근 의사와 리준 열사의 유묵. 안중근 의사와 리준 열사는 국체보상운동에서의 동지이기도 했고, 리준 열사는 안중근 의사가 설립한 학교를 방문하여 연설을 하기도 하였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안중근 의사께서 순국하신 지 100년이 되던 2010년 3월의 어느 날 오전 10시, 나는 뤼순 감옥의 안 의사 독방(獨房)으로부터 교수대에 이르는 그 길을 안 의사의 의지를 따라 걸었다. 그 화창한 날에, 100년 전 안 의사는 눈물 없이 조선 평화의 의지로 걸었던 그 길,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걸었다. 슬퍼서가 아니라 감격에 겨워서였다.

또한 그날 오후에 나는 뤼순 감옥의 구지묘지에 이르는 그 길목을 걸었다. 거기에는 현지 주민으로 보이는 중국인 2~3인이 대화를 하는 것 같이 하며 오가는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을 유유히 따돌리고 나는 구묘지에 들어가 한 시간여를 헤맸다. 구묘지는 잡목투성이였고, 나는 그곳 어디인가 안 의사께서 묻혀 계신 것을 절절히 느끼며 헤맸다.

그리고 이제 14년이 흘렀다. 그동안의 우여곡절이 많으나 그 일부만 쓴다.

안중근을 살인자라고 말한 1980년대 KBS의 J 기자

1983년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한국방송공사가 주최하고 한국방송사업단이 주관한 어느 역사유물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 바 있다. 그 행사 이후 KBS 보도본부 문화부의 여러 기자와 가까이 지냈다.

당시 문화부에는 E대 출신의 J 기자가 근무를 막 시작하였다. 우연히 그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대뜸 “제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안중근은 살인자”란다. 그의 말은 한국인으로서 할 말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충격을 받았고, “김구 선생은 테러리스트냐?”고 물었다. 그는 답변하지 못하였다. 이후 지금까지 나는 J 기자를 두 번 다시 상종하지 않았다. 후일 J 기자는 한나라당의 국회의원을 하였다. 이렇게 안중근 의사를 살인자로 보는 것이 한국 수구의 친일파적 견해이다. 그들은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을 애석하게 말한다.

『안중근 사기 후편(희곡)』, 김춘광 저, 1책(판권지 포함 122면, 119~120결장), 1946년 1월 1일, 청춘극장 발행. 해방후 4개월 보름만에 나온 책이다. 저자 김춘광(金春光, 1901~1949)은 무성영화의 유명한 변사(辯士)로서 그는 친일 의혹이 전혀 없는 민족의 지조를 지킨 인물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안중근 사기 후편(희곡)』, 김춘광 저, 1책(판권지 포함 122면, 119~120결장), 1946년 1월 1일, 청춘극장 발행. 해방후 4개월 보름만에 나온 책이다. 저자 김춘광(金春光, 1901~1949)은 무성영화의 유명한 변사(辯士)로서 그는 친일 의혹이 전혀 없는 민족의 지조를 지킨 인물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안중근 사기 최후편(희곡)』, 김춘광 저, 1책(판권지 포함 122면), 1947년 12월 20일, 한흥출판사 발행. 1946년 청춘극장본의 재판본. 김춘광의 작품세계는 작품 수만큼이나 다양한데, 대체로 사랑과 의리와 인정이 주제였다. 즐겨 쓴 역사극을 통해서는 권력의 무상과 식민지시대의 민중항거 등을 이야기했고, 현대물에서는 의리와 인정, 사랑과 배신, 이별 등을 주로 취급했다. 그는 신파극의 대표적 작품인 「검사와 여선생」 외에도 「촌색시」 「어머니와 아들」 「사랑과 인생」 「안중근사기」 「눈물의 진주탑」 등 40여 편의 작품이 있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안중근 사기 최후편(희곡)』, 김춘광 저, 1책(판권지 포함 122면), 1947년 12월 20일, 한흥출판사 발행. 1946년 청춘극장본의 재판본. 김춘광의 작품세계는 작품 수만큼이나 다양한데, 대체로 사랑과 의리와 인정이 주제였다. 즐겨 쓴 역사극을 통해서는 권력의 무상과 식민지시대의 민중항거 등을 이야기했고, 현대물에서는 의리와 인정, 사랑과 배신, 이별 등을 주로 취급했다. 그는 신파극의 대표적 작품인 「검사와 여선생」 외에도 「촌색시」 「어머니와 아들」 「사랑과 인생」 「안중근사기」 「눈물의 진주탑」 등 40여 편의 작품이 있다. [사진 제공 – 이양재]

그러나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격살은 일본제국주의 침략자에 맞선 전투행위로서, 최후의 항거였다. 그는 테러리스트도 암살자도 아니다. 적군의 침략 장소에 소수의 정예병을 이끌고 숨어 들어가 적국의 두목에게 일격을 가하여 쓰러뜨린 것이다. 언제든 제2의 제3의 이토가 나온다면 제2의 제3의 안중근 의사가 나올 것이다.

1980년대 수구파 중에는 ‘이등박문’을 ‘윤등박문’으로 말하는 자도 있었다

1980년대에 활동하였던 친일파 일각에서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 즉 ‘이등방문(伊藤博文)’이 조선인 윤가(尹家)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다. 1980~90년대 충청남도 지역의 친일 수구들 일부가 그런 주장을 하였는데, ‘이등방문(伊藤博文)’이 “윤등방문(尹藤博文)”이라는 것이다. 이토의 어린 시절 이름인 ‘슌스케’(俊輔, 春輔, 舜輔)가 조선인 이름이라는 것이다. 이토는 일본인과 조선인을 동등화시켜 아세아를 점령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尹藤博文’이라고 새긴 동인(銅印)을 주조하여 골동가에 유통하려 한 적도 있다. 이는 식민사관의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극복하지 못한 친일 수구의 망발이자 망동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자들은 안중근 의사를 우습게 비하한다.

그러나 제정신을 가진 우리 민족주의자들은 안중근 의사는 민족의 영웅이자 독립전쟁의 영웅으로 본다. 그리고 안 의사를 평화주의자로 기린다. 사악한 외침을 향한 최후의 항거를 할 수 있는 행동파 평화주의자야말로 진정한 평화주의자이다.

2024년 안중근 의사 순국일에 다시금 민족공동사업을 생각한다

『뤼순감옥구지묘지(旅順監獄舊址墓地)』 표석, 2001년에 중국의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사진 제공 – 이양재]
『뤼순감옥구지묘지(旅順監獄舊址墓地)』 표석, 2001년에 중국의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사진 제공 – 이양재]

내일(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이다. 올해가 114주기이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10년에 나는 뤼순 감옥 구지묘지 유적지를 둘러보고 이를 한국 야후(Yahoo Korea) 블로그에 올렸다. 그러나 한국 야후가 없어지면서 인터넷 블로그에 내가 올렸던 자료는 모두 지워졌다. 그러나 이후 당시 내가 찾은 그 뤼순 감옥 구지묘지 유적지는 안중근 의사의 성체가 묻혀있는 가장 정확한 지점일 것이라는 주장은 국내외로 널리 퍼져나갔다.

2007년경부터 나는 남북이 협력하여 민족공동사업으로 안중근 의사의 성체를 찾아 나설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남측 단독의 발굴팀을 꾸릴 때부터 그 사업의 실패를 예견하였다. 발굴팀 인적 구성도 그렇고, 뤼순감옥소의 소장의 딸이라는 어느 일본 여성의 말도 안 되는 중언에 휘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 이르러 남북관계가 호전되자 나는 안중근 의사의 성체를 찾는 사업을 남북이 공동사업으로 추진하여 휴전선 비무장지대에 남북공동 추모공원을 만들어 홍범도 장군과 함께 모시자고 하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그런 제안을 북에 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미국에 질질 끌려가면서 좋은 기회를 날려 버렸고, 홍범도 장군만 대전으로 모셔왔다.

만약 내가 앞으로 안중근 의사의 성체를 찾는다면, 나는 친일 수구들이 판치는 남쪽이 아니라 그분의 고향 황해도로 보내 드리겠다. 그것은 홍범도 장군을 욕보이는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를 보면서 다시금 굳힌 결심이다. 2024년 3월 하순의 밤은 이렇게 기울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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