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21일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신형위성운반로켓 ‘천리마-1’형에 탑재해 발사, 궤도에 정확히 진입시켰다. ‘북한’이라고 하면 ‘식량난’이 먼저 떠오르지만 인공위성 발사에 이어 정찰위성 발사까지 ‘남한’을 앞지르는 기술력을 과시한 셈이다.

“여기 한 국가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국가를 정식 국가명으로 부르지 못한다.”
북한이 아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 가장 가까운 우리 민족의 반쪽이지만 가장 낯설게 느껴지는 ‘조선’을 김광수의 신간 『전략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선인)은 ‘정명’(正名)으로 호출한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김광수, 『전략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선인. 2023. [자료 사진 - 통일뉴스]

더구나 책의 부제는 ‘유폐幽閉된 북北의 참모습을 마주하다’이다. 한 마디로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제대로 마주하자는 취지의 책이다. 이른바 북한식 표현으로 ‘정면 돌파’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은 이제껏 단 한번도 남쪽 사회에서 시도해보지 못한 북의 ‘생경한’ 모습을 북 그들의 시각인 내재적 접근법과 함께, 우리 민족을 중심에 놓는 주체사관 및 민족사적 관점에서 정면돌파 하려 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은 오늘날 북한이 뿌리로 삼고 있는 항일무장투쟁부터 직시하고 있다. “그렇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항일무장투쟁, 그리고 그 항일무장투쟁이 낳은 백두혈통, 아니 주체 혈통은 ‘정치적 혈통’개념으로 재확립되고, 김일성 민족 시작의 시원까지 열어놓은 민족재생의 역사이자 ‘지금의’ 현재, ‘나아가야 할’ 미래 그 자체이다”라고 적고 있다.(39쪽)

주체사상에 대해 체계화 과정과 ‘김일성 김정일주의’로의 재정립 과정을 단계별로 설명하는가 하면, 협의의 주체사상과 광의의 주체사상으로 나누어 도표로 제시하는 등 좀더 깊이있는 이해로 안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미 북한 사회에서 보편화된 내용들이지만 8차 당대회에서 정립한 ‘이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이라는 3대 이념을 ‘시대적 환경’에 따라 재정립할 필요성 차원에서 상세히 설명한다든지 북한이 개혁⸱개방이 아닌 개건⸱개조를 내세우는 배경으로 북한이 바라보는 사회주의에 대한 개념이나 소련과 동구사회주의 경험 등을 근거로 제시하는 것 등이 그러하다.

백두혈통과 수령론, 후계자론 등 남한에서 ‘세습’으로 치부되거나 터부시된 주제들도 오늘의 북한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미 『수령국가: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수령체제 이해하기』(선인, 2015)를 펴낸 바 있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최근 등장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에 대해서도 “이번 75돌 경축 열병식에서 대중적으로 공개하여 조선인민군을 대표하는 1만여 명의 장병들로부터 “주체혁명 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하고 완성하는 사상정신적 결속”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고 제시하는가 하면, ‘백두혈통의 계승자’와 ‘수령의 후계자’가 “밀접한 연관은 되어 있으나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203쪽)

외부에서 피상적으로 평가 내지는 비판하는 북한에 대한 시각이 아니라 북한 자체의 사상과 이론, 방법론에 입각하고 그 역사성과 주변정세와의 상관성 등을 근거로 해설함으로써 북한이 취하고 있는 노선을 이해하는 이른바 본격적인 내재적 접근을 시도한 셈이다.

따라서 북한의 내부 사상체계와 작동원리들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관심을 갖고 정독할만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거꾸로 일반 대중들에게는 까다롭고 재미없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강화도에 있는 광성보 ‘신미辛未 순의총殉義塚’을 상기시키며 미국과의 대결의 본질이 북미대결이 아닌 우리 민족과의 전면대결임을 역설하는 저자의 ‘주체적 관점과 민족적 견해’는 독자들의 시야를 넓혀줄 것이고, 남과 북을 GDP나 GNI 지표로만 단순비교하는 맹목적 우월주의에 대한 비판은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보게 하는 ‘확증편향 깨기’로도 유의미할 것이다.

북한이 90% 이상 식량자급률을 달성한 국가이고 “덩샤오핑을 소환하지 않”고, “사회주의적 자립⸱자강의 경제로 나아가겠다는 결의와 의지만 있다”는 진단이나 한국전쟁을 통일전쟁이자 내전에서 시작된 ‘한국에서의 전쟁’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 등은 저자의 시각을 담고 있다.

지난해 9월 황해남도 농장에 보내질 트랙터 5,500 대가 축구 경기장 8개 면적에 도열한 모습이나 미국 본토를 사정거리에 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과 정찰위성 ‘만리경-1’ 발사 성공, 고층 건물들로 리모델링된 평양시가지... 우리가 미처 따라잡지 못한 북한의 최근 모습들을 이해할 수 있는 구조적 시각을 얻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휘어진 잣대를 바로잡기 위해 반대편으로 잣대를 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을 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은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판이 흔들리는 작금의 이 세계정세”라지만 “전략핵을 가진 북과 미국과의 대결에서 미국이 군사적으로 패배하는 길”과 같은 판단은 미국의 쇠퇴에 대해 여러 근거를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일반적 공감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아사자 발생’과 같은 보도는 ‘정치적 의도’가 짙다는 저자의 지적에 동의할 수 있지만 “무상의료⸱무상교육⸱무상주택의 혜택이 주어지는 세계 유일의(?) 인민 행복 지수가 보인다”거나 “2023년에 식량문제가 발생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식의 저자의 진단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을까?

북한은 여전히 중국쪽 통로로 상당한 양의 식량을 반입하고 있고, 무상의료 체계만 하더라도 의약품과 의료장비 부족 등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은 눈감을 수 없는 현실이다. 북한 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라도 공식 발표 문헌들과 현실의 괴리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저자는 물론 독자들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또한 ‘후계론’과 ‘후계자론’이 다르고 ‘백두혈통의 계승자’와 ‘수령의 후계자’가 다르다는 저자의 이론적 분별이나, ‘민족경제’와 ‘특구경제’ 외에 사회주의 경제의 개건⸱개조만 있을 뿐 개혁⸱개방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 등도 현실에서 어떤 유의미한 차별이 있을지 두고보아야 할 대목들이다.

실제로 김정은 시대에 강조되고 있는 인민대중제일주의, 나아가 ‘심부름군당’과 같은 원칙의 강조 이면에는 그들의 지도자가 직접 언급했듯이 ‘반(비)사회주의 현상, 세도, 관료주의, 부정부패, 세외부담행위, 온갖 범죄행위’들이 놓여있고, 이에 따른 법령 정비와 조직 정비(당 규율비서, 규율조사부와 법무부 신설과 중앙검사위원회 권한 강화) 등이 뒤따르고 있는 현실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저자의 공들인 책을 소개하며 굳이 휘어진 잣대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의 부작용을 세세히 경계하는 것은 저자가 이 책의 부제로 제시한 ‘북의 참모습’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기를 바라서이다. 진실보다 강한 설득력은 없기 때문이다.

“이후 제 뒤를 잇는 누군가의 용기 있는 행위로 인해 부족한 부분이 많이 메꿔지고, 나아가서는 그러한 북 전문가를 출현시켜 내는데 이 책이 작은 기여라도 하길 바란다”는 저자의 바람이 꽃피우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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