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 / 한신대학교 글로벌피스연구원 교수,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

 

완전한 패배였다. 정용일과 정창현 두 선배가 공동으로 집필한 『북한 박물관 기행』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두 선배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금수산태양궁전은 저자들의 말처럼 “금기의 영역”이다. 여기를 다녀온 사람치고 처벌받지 않은 사람이 없고, 언론의 뭇매를 안 맞은 사람이 없다. 혹 몰래 다녀오고선 다녀왔다고 말하지 못해 속앓이하는 남측 관광객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두 저자는 ‘금기의 영역’을 남측 당국의 ‘승인’을 받고 다녀왔다지 않는가. 거기를 다녀왔다고 책까지 펴내 자랑하지 않는가. 어찌 안 부러울 수가 있는가.

이 책을 만난 것은 지난 9월 2일,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택배 노동자 김태완 동지의 49재가 열렸던 마석모란공원에서였다. 그날 오전 정용일 선배의 1주기 추모 행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통일뉴스 관계자로부터 서평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은 지 꼬박 한 달이 지났다.

푸에블로호가 대동강에 전시된 사연

정용일 정창현, 『북한 박물관 기행』, 굿북 플러스, 2023..9. [자료 사진 - 통일뉴스]
정용일 정창현, 『북한 박물관 기행』, 굿북 플러스, 2023..9. [자료 사진 - 통일뉴스]

책을 처음 받고 내심 기대했던 것은 푸에블로호 이야기였다. 원산에 있던 푸에블로호가 ‘어느 순간’ 평양 대동강에 ‘전시’돼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푸에블로호도 하나의 전시물인 셈이다. 그럼 대동강 역시 박물관이 아닐까. 그래서 푸에블로호 이야기도 이 책에 나오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를 했다.

아쉽게도 이 책에 ‘대동강 박물관’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혁명전통 교양의 중심 조선혁명박물관”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푸에블로호 이야기가 등장해 아쉬움을 다소나마 덜어냈다.

항일혁명 투쟁 시기, 민주주의 혁명 시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 첫 시기, 6.25 전쟁 시기, 사회주의 기초건설을 위한 투쟁 시기, 사회주의 전면적 건설을 위한 투쟁 시기,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투쟁 시기 등 북한 혁명의 매 시기별 진열실로 구성된 ‘조선혁명박물관’은 만수대언덕에 위치한다고 한다.

북한의 박물관에는 해설 강사들이 다수 존재하는 특징이 있는데, 이곳의 해설 강사는 미국 침략선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운 평양 인민의 투쟁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모양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반가운 푸에블로호가 나왔다. 당시 평양 인민들이 셔먼호를 불태운 자리에 비석을 세웠는데, 그 비석이 서 있던 자리에 미국의 푸에블로호가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과연 ‘반미의 나라’답다. 제너럴셔먼호를 물리쳤던 과거 조선의 기백과 푸에블로호를 나포했던 현대 조선의 기백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자부심 아니겠는가.

북한에도 팬레터를 받는 인기 연예인이 있다?

평양시 외곽 형제산구역에 조선예술영화촬영소가 있다. 총 부지면적 100만㎡에 야외촬영거리, 실내촬영장, 각종 영화제작 관련 설비실이 있다. 여기에 특수한 성격의 전시관이 있는데, 북한의 문화예술 관련 전반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북한에서 ‘혁명적 문예전통교양의 거점’으로 불리는 “문화성사적관”이 그것이다.

우리 사회의 유명 드라마세트장이 그러하듯이, 이 촬영소와 사적관은 북한 관광명소의 하나라고 한다. 연평균 참관자가 15만~20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북한 인민들에게 상당한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2006년 3월 이곳을 방문한 저자들은 북한을 대표하는 영화배우 리영호를 만났고, 그 인터뷰가 책자에 실려 있다. 북한 배우 리영호는 1986년 영화 「홍길동」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인물. 당시 「홍길동」은 북한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몽골과 베트남 등에도 영화가 수출되어 북한판 ’한류열풍‘이 만들어졌다고 저자들은 소개한다.

리영호 배우를 만난 저자들은 ”너무 남쪽식으로 생각한 건 아닐까 싶었지만 내친김에“ 팬들에게 편지를 받기도 하는지 물었다. 배우 리영호의 답변이 신선하다.

”한 달에 10통씩은 정상적으로 오고 있습니다. 영화촬영소까지 찾아오는 분들도 있어요.“

한 달에 10통이니, 우리 사회의 연예인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북한에도 특정 배우에게 열광하는 열혈팬이 존재한다는 사실, 재미있지 않은가?

김일성 광장엔 어떤 박물관이?

저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나라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다. 전국 각지에 박물관과 사적관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 평양만 해도 수십 개의 박물관이 있고, 공장 기업소와 협동농장, 학교 등에도 사적관을 조성해 놓고 살아있는 교육 공간으로 활용한다고 한다. “생활 속에 박물관이 있고 박물관이 곧 생활”이라는 것.

그도 그럴 것이 북한에서 박물관의 기본 사명은 인민에게 ’혁명적 수령관‘을 심어주고 자주적인 사상과 창조력을 가진 공산주의적 인간형을 양성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 박물관의 전시물들은 남쪽 사람들에게 다소 낯설게 보일 수 있다고 저자들은 책머리에서 밝혔다.

그렇다고 북한에 수령과 당 관련한 박물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이 우리 민족 100만년 역사를 품은 타임캡슐로 소개하는 조선중앙역사박물관, 국보급 작품이 수두룩한 예술작품의 보고라고 소개하는 조선미술박물관, 우리민족의 생활문화의 원형이 집대성되어 있는 조선민속박물관, 고려 500년 문화와 유물의 보물고인 개성고려박물관, 불교문화유산의 총본산인묘향산역사박물관 등 일반적인 박물관도 다수 존재한다.

특히 조선중앙역사박물관과 조선미술박물관은 열병식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김일성 광장 좌우에 위치한다고 한다. “좌역사 우미술”인 셈이다. 수도 평양의 중심부에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 관련한 박물관이 위치할 것 같은 예상을 깬다.

북한 박물관, 다시 갈 날을 꿈꾸며

이 책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저자들이 취재한 박물관과 사적관에 대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2023년에 나왔지만 사실 15년 전의 북한 이야기이다. 그 사이 김정은 체제가 들어섰고, 북한은 많은 변화를 보였다. 북한의 박물관과 사적관 역시 그 시간만큼 새로운 것들이 채워졌을 것이다.

2023년 현재, 남북 관계는 최악이다. 15년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회의감도 든다.

그럼에도 “남북이 역사 문화유산을 매개로 박물관 교류를 통해 서로의 부족한 분야를 메우는 날이 오기를 꿈”꾼다. 이 책을 펴낸 이유 역시 “남북 박물관 교류, 더 나아가 사회문화교류에 조금이나마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고(故) 정용일 선배는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유명을 달리했다. 고인의 유작인 셈이다. 통일을 위해 한 생을 바쳤던 고인의 통일에 대한 염원과 낙관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평을 쓰는 필자 역시 같은 생각이다. 비록 지금 남북 관계는 어렵지만, 남과 북이 한자리에 모여 통일을 노래하는 날은 다시 올 것이다. 그때 이 책을 들고 북한의 박물관을 찬찬히 둘러보는 상상을 해본다. 고인이 만났던 해설 강사들 그리고 고인이 만난 리영호 배우도 만나 이 책을 펼치며 고인을 회상하는 그날을 꿈꾼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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