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진보답게 살려면 알아아할 것들'이라는, '그럴듯'할 수 도 있고 '고리타분'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부제가 달린 책이 나왔다. 

제목은 『진보 길라잡이』. 진보의 길로 인도하겠다는 의도, 의지가 담겨있는 제목이다.

487쪽에 달하는 두터운 책이다. 그렇다고 쫄건 없다.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야 되는 책은 아니고 체계적인 학습을 위한 일종의 커리큘럼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먼저 우리역사, 북 바로알기, 국제관계, 민중운동사를 비롯해 14개의 주제영역이 있다. 각 주제영역을 다시 10개 안팎의 소주제로 쪼깨서 각각 개요를 설명한다. 그러고는 '생각해 볼 논점들'을 몇 가지씩 써놓고 소주제별로 참고도서와 인터넷 자료를 제시한다.

그러니까 차례대로 볼 필요 없이, 내키는대로 한 주제를 잡아서 책이 길라잡이하는대로 따라 가보면 될 것 같다.

여기서 잠깐 책의 중요한 특징을 이루는 참고자료에 대해 한마디. 각 주제별로 남과 북의 진보적 관점을 포괄적으로 다루겠다는 취지에 따라 북측 도서와 논문 등이 다수 참고자료로 제시되어 있다.

보기에 따라 약간의 편향이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한번은 깨고 넘어야 할 금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다만 북측 1차 자료를 접하기 어려운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서 이용할 수 있는 자료를 중심으로 소개된 점은 여전한 아쉬움이다. 또 영상 시대에 맞게 유튜브 동영상, TV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동영상 자료도 찾아볼 수 있도록 한 것도 참신하고 유용한 시도이다.

▲ 『진보 길라잡이-한국에서 진보답게 살려면 알아야 할 것들』. 487쪽, 도서출판 4.27시대, 2020.7.22 [사진제공-도서출판4.27시대]

누가 이런 책을 만들었을까. 4.27시대연구원에서 일하는 연구위원들이 주축이 되어 함께 만들었다.

4.27시대연구원은 어떤 곳일까.

책 머리에 쓰여 있는 한충목 4.27시대연구원 원장의 소개글이다. "'우리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4.27판문점선언의 정신을 깊이 새기면서 2018년 4.27시대 실현에 앞장서고자 통일운동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모여 4.27시대연구원을 창립하고 자주통일운동 노선과 이론, 정책을 생산해 온 지 2년을 맞이하고 있다."

이어지는 질문. 그럼 왜 이런 책을 만들었을까.

한충목 원장은 "지난 2년동안 자주통일운동의 강화와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해 우리 나름대로 치열한 토론과 연구, 선전교양과 저술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활동을 대중들과 공유하고, 보다 광범위한 교양체계를 구축하고자 '4.27시대 통일교과서'발간사업을 당차게 준비하여 우선 『진보길라잡이』를 출간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글쓴이들을 대신하여 이정훈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은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단체에서 무엇을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중적 요청과 질문은 많은데 시원하게 답해주는데가 없다"는 말로 책의 기획의도를 밝혔다. 

이어 한국의 진보가 그 이름값을 못하고 사상이론적으로 1980년대 이후 정체되어 심지어 후퇴하고 있지는 않은지 '강력히' 반문했다.

그리하여 "시대의 발전추세에 맞고 대중이 좋아하는 매력적 콘텐츠를 한국 진보의 원칙적 입장에서 개척하고 풍부한 학습과 토론을 위한 자료부터 공급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기초부터 만든다는 입장에서 머리를 맞댔다"고 출판의 변을 대신했다.  

그렇게 정해진 기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우리역사(편집부) △북 바로알기(이정훈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 △국제관계(손정목 4.27시대연구원 부원장, 류경완 (사)코리아국제평화포럼 공동대표) △민중운동사(최기영 4.27시대연구원 연구실장) △노동, 농업·농민(한도숙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페미니즘(문현숙 경남여성연대 대표) △심리학(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종교(김성윤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소장) △철학(김동원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 백철현 전국노동자정치협회 노동자정치신문 편집위원장) △경제(이승규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 △정치노선(이정훈) △활동방법론(편집부) △과학기술과 21세기 산업혁명(이정훈)

환경과 인권, 문화예술 분야 등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은 앞으로 보완하겠다고 한다. 

이쯤에서 '우리역사라는 주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조금만 더 들어가 보자. 

편집부는 "객관성 운운하며 이루어진 대한민국의 실증사학만을 보아서는 청맹과니를 면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남쪽과 전혀 다른 역사관을 세우고 역사연구의 방법을 도입하여 국가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연구해 온 북의 역사를 함께 보아야 한다"며 사적 유물론을 발전시킨 북의 '주체사관'을 함께 볼 것을 주문한다.

우리 민족의 기원을  구석기시대부터 한반도에서 살아오던 사람들이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현대 한반도인의 직계선조로 이행한 것으로 설명하고, 한반도에 중국보다 1,000여년 앞서 청동기 시대를 열고 고대국가를 세워 인류역사의 가장 빠른 시기에 고대문명을 창조했다는 '대동강문명론' 등이 대표적인 견해이다.

이어 고조선은 기원전 3,000년 무렵 탄생한 한반도 최초의 고대 노예제 국가이며, 단군은 체계적인 통치기구를 갖춘 고조선의 세습군주라는 설명과 함께 남북 역사학계가 고조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중국과 다른 우리 문화의 독창성에 대해서 토론해 볼 것을 권한다.

참고자료로는 인터넷 서점 등에서 낱권 구입이 가능한 『조선단대사』1~25권(조선사회과학백과사전 출판사),   남측 진인진 출판사에서 2009년 영인본으로 발간한 『조선사람의 기원과 형성』(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조선고고학전서 51권),  『새로 쓰는 고조선역사』(박경순, 내일을 여는 책, 2017)를 소개했다. 

일반적인 웹 브라우저 조건에서 열리지는 않지만 북측 자료인 『우리민족강당』(조선역사, https://ournation-school.com/lecture/category/13)도 정리해 두었다.

소모임별 학습을 계획할 때 참고해도 좋고 혼자서 공부할 때 옆에 두고 틈틈히 읽어도 좋을 성 싶다.

(수정-22:10)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