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북어(北魚) 
 - 최승호

 밤의 식료품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가 노란 불을 켜고 있다. 누구지? 가로등 빛에 비쳐보니 연락이 없던 고향 친구다. 무슨 일이지? 경조사? 자전거를 한참 달리다 조용한 곳에 멈춰 서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야,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내냐? 응... 그래... 우리 죽기 전에 한 번 만나야지? 그래, 코로나 끝나고 한 번 보자! 4인방 다 모여야지? 카톡방을 만들어 의논해 보자. 

 다음 날, 카톡방이 개설되고 고향 친구들이 무슨 ‘좋은 말들’을 잔뜩 올려놓고 ‘친구들! 잘 지내지?’하고 짧은 인삿말을 했다.   

 가벼운 카톡방은 너무나 싫다. ‘좋은 생각’에 나옴직한 글들이 마구 늘려있고, 진정성이 없는 공허한 말들이 난무한다. 그래서 나는 카톡방에 글을 올리지 않는다. 

 왜 사람들은 ‘좋은 생각’을 좋아할까? 바르게 살지 않는 깡패들이 팔뚝에 ‘바르게 살자’고 쓴 것과 같은 심리일까?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나부터 살고 보자!’가 최고의 처세법이다. 그러니 다들 ‘나쁜 생각’에 젖어 있다. 그 생각으로 기울어진 생각이 균형을 잡다보니 ‘좋은 생각’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리라.  

 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시대.  

 하루에 수십 명이 자살. 매일 매일 코로나 확진자 수만큼 자살하는 나라.      

 자살하는 사람은 자신의 전체, 온 생명을 걸고 말하는 데도 그 소리들은 그를 떠나 이 세상에 메아리치지 않는다.

 깨달음을 얻은 석가의 첫마디는 ‘나는 아므리타를 얻었다’는 것이었다. 아므리타는 ‘무사(無死)’라는 뜻이다. 석가는 ‘죽음이란 없다’는 점을 명확히 깨달은 것이다. 죽음이란 것이 깨닫고 보니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 지어낸 허상이었다는 것이다.

 석가는 이렇게 ‘죽음이 없음’을 알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 인간은 죽지 않는다. 오로지 삶만이 빛나는 것! 영생이다. 예수도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하느님 아버지의 품안에 안겼다. 그래서 그는 신과 하나가 되고 영생을 이뤘다.  

 삶과 죽음은 하나다. 하나가 누추해지면 다른 하나도 누추해진다. 죽음이 하찮아 지면 삶도 하찮아 진다.   

 우리 대다수 사람들, 장삼이사들의 삶과 죽음은 어떤가!  

 최승호 시인은 밤의 식료품가게에서 꼬챙이에 꿰어져 있는 북어(北魚)들을 보며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의 실상을 본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막대기 같은 생각/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헤엄쳐갈 데 없는 사람들이/불쌍하다고 생각되는 순간,/느닷없이/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새벽에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다가 헉! 숨이 막혔다.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자살했단다. 아니? 왜? 어쩌다? 

 그의 죽음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인터넷에서는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온갖 말들이 난무한다. 그의 죽음은 말없이 이 시대를 증언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죽음은 앞으로 태산처럼 무겁게 될까? 깃털처럼 가볍게 될까? 그의 죽음의 무게가 우리의 미래를 가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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