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선생께 드리는 백서(白書)

 

최창희(崔昌凞)

 

S선생님.

제가 상경했던 23일 저녁이었습니다. 선생님과 대담 끝에 22일 저녁 시청 앞에서 있었던 「반공임시법반대」 데모 얘기에 화제가 미쳤을 때였습니다.

선생님께선 일언지하(一言之下)에 「혁신계는 빨갱이」라고 하셨습니다.

근데 그때 제 옆에 앉았던 분이 누구인진 딱히 모르겠습니다만, 「다 부질없는 짓들이야 어차피 미·소 양대세력 틈바구니에 끼어 사는 처지에 잠자코나 있을 게지 괜히 저희들이 무엇을 한다고...」


일견 옳은 말씀입니다. 그 분이 시를 하는지 소설 또는 평론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문학을 하기에, 예술을 하기에, 세상사에서 초연하려드는 방관의식(傍觀意識), 가히 짐작이 가집니다.

그렇지만 문제의 초점은, 세상을 달관하기 때문에 초연하는 자세와, 실은 그렇지도 못하고 소심하고 비겁한 성격으로 연유한 자기기만에서 문학한다는 허세 아래 방관자의 입장을 취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다르리라고 봅니다.

「세상은 빤한 것이 아니겠어. 말을 안 하다뿐이지.」 왜 말을 못할까요. 참 이상스러운 노릇입니다. 실상, 자신이 알긴 뭘 안다는 겁니까. 알지도 못하며 아는 체하는 그런 위인들. 미안하지만 말을 해보래도 댓구를 제대로도 못하니 말입니다.


4천년의 은자적 성격이라더니 정말 자라목이 드나드는 식의 용감성(?)은 명동 뒷골목에서나 통용되겠죠. 적어도 저희가 시대에 대한 고민 없이 예술인지 합네 하고 대중을 속이려드는 반항의식이니 항거니 하는 손재주꾼들의 그 초연한 몸가짐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누군 누구만 못해서 권외에 서질 못하겠습니까. 공산독재가 그렇고, 보수정권의 마각(馬脚)이 드러났고, 앞으로 이 나라의 운명이 암담할 뿐이니, 나라가 망하고 난 다음 그래도 예술이 있을 수 있으며, 또 예술 하는 사람은, 나라 망한데 대한 전연 책임이 없는 것이겠습니까.

남한이 불행하게도 북괴에게 먹히었을 경우, 나는 문학을 하니까, 정치와는 거리가 머니까, 저야 알 수 있겠습니까, 저야 알 수 있겠습니까, 하는 식의 자기변명을 늘어놓아서 용납이 될까요?

 
선생님, 말이 격해질 것 같아 이상 더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저희 본분을 충실히 지키는 노릇이 가장 마땅한 일이지만 만약에 장면총리가 진정으로 교체정권이나 후계자가 없어서 그렇게 미적거리는 노릇이라면, 저는 직접 서명이라도 내서 정권을 이양 받을 공상도 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정치를 할 게지 문학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시겠죠. 건 그러지가 않겠죠. 저흰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문학을 해야겠죠. 정치는 저희 분외의 것인진  몰라도, 때에 따라선 자신이 불길 속에 뛰어들 용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가장 권외자인체 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비겁성을 호도하는 인간들에겐 고소가 머금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날, 어쩐지 선생님과 미진한데가 있는 것 같아 몇 말씀 덧붙이는 바입니다.

민족일보에 글을 준데 대해 못 마땅히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예를 들어서 1·4후퇴시 저는 병이 들어 어느 분의 지프차에 편승하게 되었습니다. (현 정부의 고관인) 차를 타려고 방에서 일어서다가 픽 쓰러지고 말았죠. 도중에서 죽을 것이 분명해 졌습니다. 그분 말씀이 「최형, 그냥 머물러 있으면서 한약이라도 쓰고 치료하쇼.」

 
이 경지, 이 심경이랄까,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건 벌써 정치라든지 사상 따위와는 거리가 먼 인간 본연의 태도가 아니고 무엇이었을까요. 그렇지만 저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간다고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그렇거늘 저희가 오늘날 이 땅에 태어난 탓에 괴롭게 부대끼며 살아가야하는 번민을 할 것조차 없다 해서야 되겠습니까.

(청주시 수봉 234)

▲ 예술에 앞서는 것 [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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