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북(북의 사상과 정치) 정치학 박사, <수령국가> 저자,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남북의 시간’, 정치적 용어로는 참 매력적이다. 이인영 통일부장관이 내정자 시절부터 즐겨 언급하면서 지금까지 회자된다.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고 있어 더더욱 그런지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런지, 시간을 따져 그 사실로 한번 들어 가보자.  

지난 2개월 간 북(김여정 제1부부장과 통일전선부장)이 보여준 그들의 태도 핵심에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와 ‘대적사업’ 선언으로 상징되는 관계파탄뿐이다.  

결정판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가 있고, 4대 대남군사행동은 이 정부에 대한 북의 최종 결론이었다. 

그런데 그 태도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의해 최종적으로는 잠시 보류되어 있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당연히 많은 사람들(전문가, 정치인, 정부당국자 등)이 그 의도 분석에 뛰어들었다. 

南의 대북 삐라 살포나 문재인 정부의 대북대결에 대한 전술적 불만이거나, 아니면 지금의 이 정세를 잠시 숨고르기 시켜 문재인 정부로부터 뭔가 얻어내려는 술책 정도로 이해하려 한다. 

전형적인 희망적 사고이다. 북이 왜 저렇게까지 분노했고, 최종적으로 북이 우리 남에게 어떤 정치·군사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 역지사지하지 않는다.  

그 연장선상에서 남북의 시간도 존재하는 듯하다. 

보류된 남북정세의 풍전등화(風前燈火) 성격을 이해하려하기보다는, 또는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관계로 봤을 때 약속불이행이라는 남측의 원인에 의해 발생한 위기구조를 덮으려는, 즉 북에게도 그 책임을 전가하려는 그런 의미에서의 ‘남북의 시간’은 철저하게 정치화된다. 

어떻게? 

문재인 정부의 100% 약속불이행으로부터 시작된 이 위기구조에 대한 성찰은 없고, 오직 국면전환용 정세인식뿐이다. 

통일부장관의 새로운 임명도 그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새로 임명된 통일부 장관도 지금의 이 위기구조에 대한 본질적 접근보다는 정치인 출신답게 ‘북미의 시간이 아닌, 남북의 시간’, ‘평화의 문 닫히기 전에 다시 평화의 길 개척’, ‘먹는 것, 아픈 것, 죽기 전에 보고 싶은 것’ 같은 인도협력 분야에 있어서는 ‘우리 스스로의 판단으로 추진할 수 있어야’, ‘통일부는 천수답이나 간헐천이 아니어야’ 등 화려한 언변과 기교만 부려낸다. 진작 정세 본질에는 접근하려하지 않거나, 못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결론도 뻔하다. 그렇게 해가지고는 잠시 보류된 남북정세, 다른 말로는 중환자 호흡기를 달고 있는 남북정세가 얼마간의 시간을 벌 수는 있겠으나, 그 시간은 절대 오래갈 수 없고, 금방 본질이 탄로 나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북도 그 상황을 파악하려 할 것이고, 철저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어떻게?
  
첫째, 이인영 장관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것이다. 

즉, 북은 위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이 정부에 대한 신뢰를 거의 제로(zero)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도 새로 임명된 장관이 거기에 답 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주변의 변죽만 울려내고 있다.   

인도적 지원이니, 방역과 의료협력 등만 언급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이는 마치 암환자의 고통호소에 감기증상을 처방을 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해결책을 근본적이고도 본원적으로 찾아내려하기보다는 미국(한미워킹그룹)이 허용해 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만 하려는 주변의 변죽만 으로는 절대 완전파탄 난 남북관계를 신뢰회복해낼 수 없다. 지나가던 개도 웃을 뿐이다.  

오직 신뢰회복의 상징, 두 정상 간 합의한 합의문을 반드시 약속이행 하겠다는 그런 행보만이 지금의 이 국면을 타개해 낼 수 있고, 그것 없는 장관의 그 어떤 행보도 북을 절대 설득해 낼 수 없다.   

해서 다시한번 거듭 말하지만, 자신들의 정치·군사적 메시지를 한낱 인도적 교류협력 수준으로 ‘땜빵’하려는 그런 장관을 믿고, 북은 절대 지금의 남북관계를 풀려하지 않는다. 

하여 풀려면 북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라는 초강수까지 쓰면서 정면돌파전으로 나온 그 의도를 잘 읽고,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정도의 의지는 보여줘야 한다. 다름 아닌, 남북 간 정상합의 정도는 무조건 이행하겠다는 결기 정도는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 여전히 장관은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와 선순환 구조에 묶여두고 있다. ‘한미워킹그룹 역할론’, ‘미국의 지지와 신뢰에 바탕 한 남북관계 진전’ 등등 운운이 그것이다. 

북의 시그널을 전혀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즉, 북은 우리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에게 남북관계 회복(=민족공조)을 통해 미국의 벽을 '같이' 넘자고 하는데, 장관은 여전히 ‘미국과 함께 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북에게 보내고 있다.

그러니 어찌 북이 이 대답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한번 생각해보자. 그것도 역지사지(易地思之)해서 한번 생각해보자. 북은 문재인 정부를 엄청 신뢰했다.(북 공화국 수립이후 최초로 대한민국 대통령을 10만 평양시민들 앞에서 공개연설을 하게했고, 자신들의 혁명성지인 백두산도 함께 동반했다.) 체제의 운명이 걸린 ‘불확실한’ 북미관계 포문이었지만, 문재인 정부를 믿고 ‘엄청난’용기를 냈다. 하노이 회담 성사가 그 징표였다. 

과한 해석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고스란히 다음과 같은 언명에서 그 고민의 흔적은 묻어난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미국은 바로 그때 2019년 초 하노이에서 부분적인 제재해제를 해주는 것 같은 시늉을 내면서 얼마든지 우리의 핵중추를 우선적으로 마비시켜놓고 우리의 전망적인 핵계획을 혼탕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에는 우리가 거래조건이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제재의 사슬을 끊고 하루라도 빨리 우리 인민들의 생활향상을 도모해보자고 일대 모험을 하던 시기(강조, 필자)였다고 할 수 있다.(김여정 제 1부부장 담화, 2020.7.10.)”

그렇게 북은 모험을 하였던 것이다. 9.19 평양공동선언을 믿고, 하노이 회담 참가를 결심하였던 것이다.   

그러니 역지사지해 생각해보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북의 실망감과 분노가 얼마나 크겠는가? 

북은 그 정도 용기가 필요했고, 용기를 내었다. 그런데 진작 왜 이 적용을 자신들한테는(=문재인 정부) 적용하지 않는 것인가? 

북은 그렇게,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수립에 불확실한 전망을 갖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 고뇌와 갈등, 두려움 등은 문재인 정부를 믿고(=민족공조를 통해) 북미관계를 한번 넘어서보겠다는 믿음이 작동했듯이 우리도 한번쯤은 북의 그러한 요청(=민족공조를 통한)을 수용해 ‘함께’ 미국의 벽을 넘어서가보겠다는 용기와 신뢰는 필요 없단 말인가. 

어렵지 않다. ‘先한미관계, 後남북관계’를 ‘선남북관계, 후한미관계’ 방식으로 접근시켜 내기만 하면 된다. 

명분도 충분하다. 우리와는 달리 가치동맹보다 국익적 외교관계로 접근해오고 있는 트럼프, 코로나-19 극복과정에서 확실하게 확인된 탈미(脫美)정신은 남북관계 회복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셋째, 통일부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신의 태생적 본령사업에 충실해야 한다. 

즉, 70여 년 간 지속되고 있는 분단체제 극복과 두 동강난 허리를 하나로 있는 통일체제 성립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고, 지금 미시적 해법현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인도적 지원, 의료협력 등 자신들의 본령사업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지원·협조자세로 태세전환하고, 통일부의 태생적 본령사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또 북도 호응을 유도할 수 있고, 판문점의 시대에 걸 맞는 통일부(장관)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한 그 첫째는, 비핵화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표일 수 없다는 명확한 인식을 해내어야만 한다. 나아가 비핵화의 최종해결 주체는 북미이지 우리(南)일 수 없음도 분명히 해내어야 한다.

이름하여 남북관계 아젠다를 비핵화 아젠다에서 평화의 아젠다로 전환시켜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남북문제가 한미동맹의 관점에서 민족공조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철학적 정립이 가능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南은 ‘가능하지도’ 않는 중재자 역할론에서 당사자의 역할로 되돌아 올 수 있다. 

역할의 재정립과 함께, 미국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민족 절체절명의 직접적 문제이자 국권적(=국민 생존권 문제이자 주권적 문제) 문제로 인식되어 그 어떤 전쟁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핵화 올인 정책에서 절대적으로 빠져나와야 할 이유가 발생하고, 백번 양보해 이 정부가 추진하는 방식으로 비핵화가 실제 가능하다 해도 적어도 완전한 해결까지는 수 십 년-40여년 이상이 소비된다 했을 때, 그러면 그때까지 남북관계는 한 치도 전진하지 않고 올 스톱되어 있어야만 한단 말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先비핵화, 後남북관계’ 진전의 프레임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 국익이 아닌, 미국의 국익인 것이다. 왜 우리가 그런 멍청한 짓을 해야 만 한단 말인가?   

하루빨리 우리(대한민국)가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선남북관계, 후비핵화’ 추진으로 정책전환을 해야 한다.(정 그것이 힘들다면 남북관계와 비핵화를 병렬적으로라도 배치해야 한다.) 

둘째, 통일부는 통일부답게 6.15공동선언 2항을 판문점시대에 걸맞게 한 단계 더 진전시켜 나갈 구상을 해내어야만 한다.

구체적으로는 남과 북이 ‘가)연방연합제 통일구상 남북특위’와 같은 공동기구를 구성하고, 더해서 南은 민·관이 함께 동수로 참여하는 범정부기구를 만들어 범국민적인 공론의 장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셋째, 현실적으로 한미워킹그룹을 당장 넘어설 수 없다면, 통일부(장관)는 그 실효적 대책으로 미국의 간섭과는 직접적 연관관계가 없는 입법부를 움직여 내어야 한다. 

177석 집권여당을 움직여 두 정상이 합의해낸 합의문을 반드시 국회비준 시켜내어야만 한다(필요하다면 6대 선언까지)는 말인데, 그렇게 법률적 제도화에 성공하면 미국의 간섭으로부터도 우회로가 만들어지고, 또 北에게도 일정정도 이 정부의 진정성을 믿게 할 수 있고, 우리 내부적으로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역진을 방지해 남북관계가 본궤도에 오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는 진정으로 ‘남북의 시간’작동을 원한다면 이렇게 남북의 시간을 만들어 내어 북을 불러내어야만 한다. 

그 외 대안은 없다. 꼭 명심해주길 바란다.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사)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  자문위원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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