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통일뉴스 주최 21세기 민족주의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한 김낙중 선생 [통일뉴스 자료사진]

한평생 민족의 분단을 아파하며 통일을 위해 몸부림치던 김낙중 전 민중당 공동대표가 29일 12시 50분경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 김낙중 선생은 193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전쟁 후 분단이 고착화되던 1955년 25살의 나이에 스스로 성안한 '통일독립청년고려공동체수립안'을 허리에 두르고 임진강을 건너면서 자신의 운명을 민족의 통일에 바쳤다.

남북을 오가며 신념을 버리지 않고 1964년 군법회의 사형선고, 1973년 간첩예비죄, 1992년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까지 4차례 18년 수형생활을 하면서 통일운동에 매진했고, 인생의 말년까지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고문으로 활동하면서 통일의 의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2005년 맏딸 김선주는 아버지의 일대기를 가족의 시선으로 쓴 『탐루』에서 "임진강을 건너기 전에 이미 ‘탐루(探淚, 눈물을 찾는다)’라고 쓴 등불을 대낮에 켜들고 포연이 가시지 않은 부산 광복동 거리거리를 헤매고 다니며 외쳤던" 아버지의 순수한 열정과 어머니가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고통을 '암울한 우리 현실을 향한 통곡'으로 기록함으로써 고인의 일생을 고단했던 가족사를 넘어 지난한 분단극복의 역사로 그리기도 했다.

유족으로 부인 김남기씨와 아들 선혁(고려대 교수), 딸 선주, 선결씨 그리고 며느리와 사위가 있다. 

빈소는 일산장례식장(3호선 마두역)에 마련됐고 장례는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인은 31일 오전 9시. 장지는 파주 법흥리 선영이다.

< 김낙중 선생 약력>

-1931. 파주출생
-1952.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입학
-1954. '탐루(探淚)'라고 쓴 등불을 들고 평화통일을 주장하며 단독 시위
-1955. 북한의 평화통일 의지를 알아보려 월북, 미제간첩으로 몰려 기소
-1956. 남한으로 귀환, 간첩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1957.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2학년 편입, 이후 대학원 진학
-1962.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3년 6개월 형)
-1968.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원 및 정경대학 강사
-1973. 고려대 '민우지(民友紙)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7년형)
-1990. 민중당 공동대표
-1992. 국가보안법 위반등의 혐의로 기소(무기징역형)
-1993. 국제사면위원회 양심수 선정
-1998. 김대중 정부 출범 후 광복절 특별사면 형집행정지로 출소

(추가-30일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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