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 木馬

 

빙빙 돌아라 木馬야

어이없는 건달 같은 직업

 

3월 31일(금요일, 맑은 날씨)

오늘도 어린이들의 코 묻은 십 환짜리 동전을 긁어모아 늙으신 어머니 아내 두 남매 조카들의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정해진 곳은 없지만 「골목의 직장」으로 나갔다.

이걸 시작하지 않았던들 눈감으면 코 베어 먹을 세상에서 여섯 식구가 고스란히 굶어죽었을지도 모른다.... 이른 아침부터 네 바퀴 달린 「회전목마」를 끌고 나서면서 이런 허술한 생각이 들어 쓴 웃음으로 혼자 어깨가 씰룩해졌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 그럭저럭 하루 평균 돈 천 환 꼴은 벌어들인 셈이다. 동네 어느 골목길에서 목마를 돌리다가 문득 작년 겨울 종로서 당한 화재가 생각났다. 온몸에 화상(火傷)의 얼룩을 어루만질 때마다 어린 것들을 두고 불에 타 죽은 먼저 아내의 그 영상이 아련히 떠올랐다. 

실컷 고생만하다 가버린 불쌍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아내에게 그 전과 같은 고생을 시켜서는 안 되겠다. 목마를 자꾸 자꾸 돌려서 내 행복을 찾아야겠다.

골목마다 타보고 싶어 성화를 부리는 조무래기들이 많이 모여든 골목을 두 번이나 옮겼다. 두 번 다 신나게 돌려주었다. 남에게 죄짓고 욕먹느니 보다는 조금도 나쁠 게 없다.

빽빽 소릴 지르며 울다가도 말(馬)타자면 딱 그치고 한번 올라앉으면 그저 눈알이 포도알처럼 동그래지며 울던 놈도 빙글빙글 웃고 「목마」도 빙글빙글 웃는다.

오늘은 백화(환?)짜리 국수 한 그릇대신 떡 오십환으로 과자 한 봉을 샀다. 오늘은 청량리(淸凉里)서 이화동(梨花洞)까지 이 거리 저 골목을 헤매었다. 털털거리는 빈 「회전목마」를 끌고 내 집 앞에 이르렀을 때면 친어미를 잃은 순이와 어린 철이가 마중 나와 있어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회전목마처럼 그 자리에서만 뱅뱅 도는 건달 같은 나의 직업(職業)이 싱거워 또 한 번 어깨가 씰룩해진다.

아- 나는 이 가난 속에 언제까지나 목마를 돌려야 할까?


제기 2동 74
김재진(金載珍)(38)

 

▲ 거리의 초상(肖像) (2) [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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