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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여섯째 이야기, 사드 가고 평화 오라(2)

기사승인 2020.07.18  01: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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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랑 연재소설> 노동자 신돌석씨의 하루 (35)

정해랑 /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연재를 다시 시작하며

58년 개띠 노동자 이야기를 다시 하려고 합니다. 잠시 쉰다는 것이 1년을 넘겨 버렸습니다. 그 동안 우리의 주인공 신돌석씨도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세상은 많이 변한 것 같은데 어찌 보면 완강하게 버티며 변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그보다도 변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소소한 일상을 통해 그려 보고자 합니다. 통일뉴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질책을 부탁드립니다. / 필자

 

   
▲ [삽화-백소(白笑)]

경복궁역에서 청와대 앞 분수대로 가는 길을 가면서 신돌석씨는 촛불시위가 한참이던 2016년 겨울의 마지막 토요일을 떠올렸다. 그날 세월호 참사 피해자 유가족들이 시위하는 군중에게 노상에서 음식을 대접하였다. 거기까지 오는 데도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0월 말부터 11월까지에는 경찰에 막혀 나가지 못했다. 그래도 계속 가처분신청을 내면서 한발 한발 앞으로 전진했다. 그 과정을 보면서 신돌석씨는 이렇게도 역사가 진전하는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을 느꼈었다.

그렇게 시위 등의 압력과 합법적인 절차를 병행하는 전술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도 신돌석씨 주위에는 많았다. 특히 8-90년대의 거친 상황을 지나오면서 노동운동,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그래봤자 저들이 굴복하냐고 하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러한 전술은 어떤 개인이나 조직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 있었다. 신돌석씨는 그것을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집단지성이 창출해낸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었다.

그때 불만을 말한 사람들은 막상 박근혜가 탄핵이 되자 별 말이 없다가 그 뒤 새 정부 들어서 적폐청산이 더디게 되자 다시 비판의 칼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아무 의미가 없다면서 그때 국회를 해산시켰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돌석씨는 그런 전략 전술에 대해서 명쾌하게 이야기할 지식도 부족하고 논리력도 없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알았다. 그때 국회를 해산할 능력이 우리에게 있었는데도 안 했단 말인가?

청운동 동사무소를 지나서 사랑채에 갔다. 화장실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여기에서도 들어갈 때 발열체크를 하고 이름을 썼다. 나와서 보니 분수대 앞에는 벌써 자리를 차지하고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11시 10분 전에 도착해서 한번 죽 둘러보았다. 작년에 했을 때 보았던 신천지 피해자 가족이라는 사람은 아직도 있었다. 동일한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딸이 집을 나갔는데 신천지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작년에만 해도 좀 황당하게 생각했는데 코로나19 이후 신천지에 대해 보도가 많이 되면서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11시 정각이 되자 장선우가 피켓을 들고 왔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전쟁의 불씨 사드 배치 문재인 정부 규탄한다’ 라는 구호가 적힌 것들이었다. 부근의 시민단체에 피켓을 갖다 놓고 매일 시위할 때마다 가지고 왔다가 가져가는 모양이었다. 보통 1인 시위는 1시간을 하는데 이번에는 두 시간을 하였다. 바람이 좀 세차게 불었다. 피켓이 자꾸 날아가려고 하였다. 그것을 꽉 붙들고 있는 것도 요령이 필요하였다.

여기서 보면 촛불혁명 뒤에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한눈에 보였다. 바로 옆에 여자 두 사람이 있었는데, 방위비 인상 반대와 국가보안법 철폐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사드반대와 가장 가깝게 느껴졌는지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역시 세월호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참사피해 유가족들이 노란 점퍼를 입고 서 있었는데 7명이 와 있었다. 이곳에 터줏대감이라고 장선우가 소개한 사람은 전교조 조합원이었다. 교직에서 은퇴한 뒤 전교조 합법화를 요구하며 여기서 살다시피 한단다. 아예 의자를 갖다 놓고 가림막도 쳐 놓은 사람은 ‘이석기 전의원 석방’을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다 아는 주장들인데 조금도 진전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가 하면 평소에는 잘 모르던 요구사항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돈 농가의 피해를 보상하라는 것과 토지강제수용을 하지 말라는 요구도 있었다. KT 전 회장 황창규를 구속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에 1인 시위했던 사진을 내걸고 있었다. 억울한 관청 피해에 대해 호소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이런 사람들의 피켓일수록 작은 글씨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제일 특이한 사람은 신돌석씨의 왼쪽에 있는 사람인데 라엘 오르그라는 프랑스인의 방한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말을 걸어오기에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니 후쿠시마에 있다가 오키나와로 옮긴 사람인데 1983년에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서 한국에 못 들어온다고 하였다. 오키나와에서도 주일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단다. 거기까지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가 UFO를 보았고, 그것이 후쿠시마 지진도 유발했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래서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1인 시위의 요구가 꼭 진보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19를 우한 폐렴이라고 하면서 중국인을 막지 않은 문재인이 퇴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현수막이 서 있었다. 그런데 이곳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이들이 몰려와서 시위를 할 가능성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코로나19 이전에 이곳에서 죽치던 성조기 부대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되면 정말 민주주의는 죽 쒀서 개 주는 것 아닐까?

장선우가 먼저 가고 남아서 1시까지 1인 시위를 하고, 피켓을 들고 다시 청운동 주민센터 쪽으로 나왔다. 피켓이 두 개를 이어 붙인 것이라서 들고 가기에 쉽지 않았다. 장선우는 한 정류장 정도 거리이니 버스를 타고 가라고 했는데 그것도 뭐해서 그냥 들고 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 보곤 하였다. 이전에는 부자들이 살던 동네였지만, 이제는 그렇지도 않은 듯했다. 이 사람들은 아마 정치적 구호에 꽤 익숙하리라. 온갖 시위가 다 이곳에 와서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곳 어딘가에 외할머니가 살았었다. 베트남에서 전사한 외삼촌을 여의고 며느리인 외숙모와 손주들과 사셨다. 주로 아니 거의 대부분 외할머니가 찾아왔지 신돌석씨 형제가 외할머니한테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신돌석씨에게는 항상 외할머니는 어머니를 돌보아 주는 사람이면서 어머니를 옥죄는 사람이라는 양면적 이미지가 있었다. 그 외할머니도 세상을 뜬 뒤에는 외숙모나 외사촌들과는 경조사 때나 보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사진을 찍고 나서 조금 있다 보니 상황실장이 왔다. 올 때마다 보는 사람이었다. 대구에서 평화와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인데 벌써 4년째 이곳에서 먹고 살면서 상황실장을 하였다. 처음 오던 때 그의 안내에 따라 기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달마산에 올랐었다. 걸어서 가기에도 좁게 보이는 산길을 그가 운전하는 경차를 타고 갔다. 어느 지점에 가서 내린 뒤 걸어 올라갔는데 그는 빨치산이 연상될 정도로 빠른 걸음으로 비탈진 산을 올라갔었다.

   
▲ [삽화-백소(白笑)]

사드가 배치되고 해가 바뀐 2018년 지방선거가 있던 6월 13일이었다. 신돌석씨는 장선우와 지역 문화 단체 활동가인 최운영과 함께 소성리에 내려갔다. 그때는 최운영이 가져온 차를 타고 갔다. 그래도 명색이 그랜저였는데 오래 되어서 기름값이 너무 많이 든다고 최운영이 투덜대었다. 그래서 좀처럼 타지 않는데 장거리를 가야 하니 몰고 간다는 것이었다. 지방선거라 공휴일인데도 길은 그렇게 막히지 않았다. 그래서 2시간 조금 넘어서 소성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전해에 있었던 기습 배치 이후에 매주 토요일에 김천역 앞에서 집회가 있었고, 소성리에서는 수요일마다 집회를 하였다. 수요 집회 주관을 공동행동에 소속된 여러 단체가 돌아가면서 하였다. 그날은 신돌석씨의 지역에서 하기로 했는데 막상 갈 사람이 별로 없어서 신돌석씨와 최운영이 가게 되었다. 집회를 주관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소성리 지역 대책위원들, 현지의 상황실과 원불교 성지 수호 대책위원들이 다 준비해 놓았다.

가자마자 집회에 참석하였다.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 커다란 차양이 쳐져 있었다. 들어서 옮길 수 있는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주민들이 앞자리에 앉았다. 주민들은 거의 대부분 이 동네 할머니들이었다. 경북 지역의 개신교나 천주교 목회자 활동가들, 지역에서 평화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이 왔다. 집회에 참석한 인원이 40여 명 되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 동네는 100가구가 안 되고, 인구 수도 200명 안 된단다. 사실상 마을 주민 모두가 사드반대 투쟁을 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왔다고 발언을 시켰다. 장선우나 최운영더러 하라고 했는데 굳이 신돌석씨가 가장 연장자니까 해야 한단다. 그래서 나가서 발언을 했다. 오늘이 지방선거 날이다. 지방자치를 잘 하자고 선거를 하는 날이다. 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반대하고 있는 사드를 왜 엉뚱한 동네 사람이 결정해서 하려고 하냐? 한 마디 묻지도 않고 이래도 되는 거냐고 했더니 동네 사람들이 잘 한다고 박수를 쳤다. 장선우도 최운영도 말 잘 했다고 하면서 이제 기회만 되면 하란다. 신돌석씨는 손사래를 쳤다.

그날은 1박하기로 하고 가서 집회가 끝나자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교무의 안내로 원불교 성지를 둘러보았다. 원불교 사원이 있는 곳과 2대 종사인 정산송규종사의 생가는 좀 떨어져 있었다. 사드만 아니면 평온하기 그지없는 곳일 듯하였다. 신돌석씨 일행을 안내한 교무는 원불교 내에서도 사드 반대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성지를 수호한다는 뜻에서 출발했다가 이제 사드 배치 자체가 교리에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반대를 한다고 하였다.

저녁 5시 반이 되자 부대 앞으로 이동하였다. 마을회관에서 진밭교까지 10분 정도 걸었고, 거기서 부대 앞까지는 걸어서 가기에는 꽤 멀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신돌석씨 일행도 걸어가다가 도중에 상황실장의 차가 와서 거기에 동승해서 갔다. 철조망이 이중으로 쳐져 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사드 기지는 미군 기지임이 분명한데 우리 군이 지키고 있단다. 그것도 최정예부대의 하나라고 하는 특공대 장병들이 지킨다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협정의 어느 조항에 우리 군이 미군부대를 지켜 주기로 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상황실장은 이야기하였다. 법이나 규정이 별 소용이 없는 것이 한미관계인 것 같다.

원불교 교무의 사회로 진행된 집회는 낮에 있었던 집회와는 달리 참석한 사람들이 플랭카드를 들고 부대 앞에서 노래 부르고 구호를 외치는 식으로 진행하였다. 참석한 사람 모두가 짧게라도 연설을 하거나 구호를 선창하였다. 오는 도중에 보았던 가지각색의 현수막에 적혀 있는 구호가 소리가 되어 나오는 듯하였다. 전국의 모든 운동단체들이 다 현수막을 내건 것 같은데 왜 저지할 힘이 되지는 못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집회를 끝낸 뒤에는 진밭교로 내려와서 공사하는 사람들의 차량을 막았다. 여기서도 약식으로 집회가 있었다. 집회가 끝날 때까지 차량에 탄 사람들은 기다렸다. 매일 있는 일이라서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경찰들은 그냥 보고만 있었다. 서로 암묵적으로 약속이 되었는지 약식 집회가 끝나고 그들을 향해 우리 민족을 위험에 빠뜨리고 미국의 이익만을 위한 사드기지공사를 하지 말라고 한 뒤 길을 터주었다. 일단 이 사람들은 명분상 사드기지공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지 내 장병들을 위한 편의시설 공사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밤에는 주민들이 마련해준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마을회관에서 잤다. 세 사람과 상황실장이 함께 잤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상황실장이 차려 준 아침 식사를 한 뒤 진밭교에서 하는 예배를 드리러 갔다. 아침마다 거기서 개신교 목사 집도로 예배를 본다고 하였다. 어제 저녁과는 달리 진밭교에는 경찰 수십 명이 와 있었다. 할머니들인 주민들 10여 명과 상황실장, 원불교 교무, 개신교 목사 그리고 거기서 잔 신돌석씨 일행 세 명이 전부였다. 경찰의 절반도 안 되는 수였다. 경찰을 보자 신돌석씨는 갑자기 긴장감이 느껴졌다.

예배가 시작되었다. 찬송을 부르고, 목사의 기도가 있고, 설교가 있었다. 7시 40분쯤부터 차들이 오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에 퇴근한 사람들이 다시 공사장에 출근하려는 것이었다. 입구를 막고 예배를 보고 있는데 차들은 그냥 기다리고 있었다. 7시50분이 되자 경찰 지휘관인 듯한 사람이 마이크를 들고 입구를 열어 달라고 하였다. 신돌석씨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끝까지 막고 싸워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비켜 주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외부에서 온 사람이 싸우자 말자 하기도 뭣하였다.

원불교 교무가 귀띔을 해주었다. 그냥 일어설 수는 없고 경찰이 옮겨 줄 테니 거기에 몸을 맡기시라고 했다. 지휘관이 지시를 내리자 경찰 세 명이 일조가 되어 의자채로 들어서 옆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특별한 저항을 하지 않고 ‘사드 가고 평화 오라’라는 노래를 계속 불렀다. 어찌 보면 형식적인 싸움 같기도 하고, 달리 보면 비참한 현실이기도 하였다. 저항을 해봤자 들려 나가는 것은 어차피 마찬가지였다.

   
▲ [삽화-백소(白笑)]

상황이 종료되고 상황실장에게 물으니 공사를 우리가 막고 있다는 것을 아침 저녁으로 보여준다는 데 의미를 두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해는 되었지만 뭔가 아쉬웠다. 그렇다고 신돌석씨에게 묘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더 말하기도 어려웠다. 예배가 끝나고 마을회관으로 돌아가서 쉬고 있는데 상황실장이 기왕 오셨으니 시간이 되면 달마산에 한번 가보자고 하였다. 거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사드 기지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란다. 그래서 그의 차를 타고 달마산에 가게 되었다. 상황실장이 운전하느 경차를 타고 마을 밖으로 나가서 산을 빙 돌아서 갔다.

그러다가 산길로 접어들었다. 경차 아니면 갈 수 없는 길을 한참 올라갔다. 차를 세워 놓고도 걸어서 산길을 타고 올랐다. 세 사람은 상황실장을 따라가기가 힘겨울 정도였다. 누군가의 입에서 이럴 때 자주 나오는 말이 나왔다. 운동 좀 해야 하는데. 산에만 가면 중년의 남자들이 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산만 내려가면 다시 잊어버리고 음주에 찌들어 버리곤 했다. 상황실장은 산을 잘 타는 것뿐만 아니라 이 산에 아주 익숙한 듯 평지에서 뛰듯이 올라가다가 뒤돌아보고 기다려 주곤 하였다.

정상에 올라 너럭바위 위에 앉으니 정말 기지가 한눈에 보였다. 상황실장은 망원경을 들고 갔다. 매일 한 번씩 여기에 올라와서 상황을 체크한단다. 사진도 여러 장을 찍었다. 신돌석씨도 핸폰으로 몇 장 찍었다. 헬리콥터가 오르고 내리는 것이 보였다. 반대쪽에 출입구가 없다고 한다. 출입구가 이쪽에만 있는데 우리가 막고 있으니 병사들의 부식 등을 헬리콥터로 나르는 것 같다고 한다. 사람들이 조금씩 움직이고 기지 내 도로를 따라 차들이 이동하는 것이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정지된 느낌을 주었다.

달마산에서 본 기지는 정말 천혜의 요새였다. 어떻게 산 꼭대기에 그런 평지가 있는지 희한하게 느껴졌다. 롯데에서 이 땅 내놓기가 아까웠을 것도 같다. 어쩌면 더 큰 것을 받아내기 위해 알아서 준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쉽게 주기에는 아깝게 보였다. 원래 그 자리에 목장이 있었는데 롯데가 사들여서 골프장을 운영한 지 얼마 안 돼서 사드 기지로 낙점되었다고 한다. 상황실장이 망원경을 건네주면서 저게 바로 문제의 사드니 잘 봐두라고 하였다. 저게 무엇이기에 이 마을 주민들을, 우리 국민들을 괴롭게 하는 것일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 코로나19 때문에 마을회관이 폐쇄되어서 어디서 묵고 있냐고 물었더니 상황실장은 웃으면서 소성리가 다 자기 집이라고 하였다. 대구에서 평화운동, 통일운동을 하다가 이곳에 파견되어 왔던 이 사람은 벌써 햇수로 5년째 여기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신돌석씨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 사람처럼 말없이 헌신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쉽게도 오늘은 대구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가봐야 한다고 하였다.

점심때가 되니 할매들이 점심 먹기 위해 나타났다. 진밭교를 지키던 사람들과 할매들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장선우가 오늘은 마을회관도 닫히고 해서 빵으로 점심을 때우자고 했는데 뜻밖에도 갈비탕이 점심으로 왔다. 함께 둘러앉아서 갈비탕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끔이지만 여러 번 오니 낯이 익은 할매들도 많았다. 그 중 한 할매가 지난 번 경찰의 침탈 이야기를 하면서 성주경찰서가 괘씸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장선우가 술 마시다 간 날도 이 조그마한 동네에 무려 4천 명의 경찰이 동원되었다고 하였다. 그것도 의경들이 아니라 기동대 소속인 듯 거구들만 모였단다. 순식간에 마을회관부터 통제해서 진밭교로 못 올라오게 하고, 진밭교에 이중으로 진을 쳐서 장비를 진출입시켰다고 한다. 분을 못 삭이며 이야기를 하는 할매는 지방선거 이기고, 국회의원 선거 이기면 뭐하냐고 하면서,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말을 몇 번씩 하였다.

 

 

정해랑 jhr137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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