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연재를 다시 시작하며

58년 개띠 노동자 이야기를 다시 하려고 합니다. 잠시 쉰다는 것이 1년을 넘겨 버렸습니다. 그 동안 우리의 주인공 신돌석씨도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세상은 많이 변한 것 같은데 어찌 보면 완강하게 버티며 변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그보다도 변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소소한 일상을 통해 그려 보고자 합니다. 통일뉴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질책을 부탁드립니다. / 필자

 

▲ [삽화-백소(白笑)]

서울역 전철역에서 내려서 ktx 탑승장까지 가는 계단을 뛰어오를 때 공중에 매달려 있는 전자시계가 7시2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분 안에 열차를 탈 수 있을까? 숨을 헐떡이며 10번 승강장으로  뛰어 내려가니 열차는 아직 출발하지 않았으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문을 세차게 두드릴까 하다가 멋쩍어서 그냥 보고 있자니 열차가 스르르 미끄러져 가기 시작했다. 놓친 것이다. 1분 아니 어쩌면 10초 차이로 놓친 셈이었다.

성주 소성리에 가기 위해 경부선 ktx를 타고 김천구미역에 가려고 하는데 그만 열차를 놓쳐 버린 것이었다. 막 떠난 열차에는 장선우가 타고 있었다. 그가 사드반대공동행동이란 곳에 소속되어서 신돌석씨에게 소성리에 함께 가자고 하고 열차 예매까지 해놓았었다. 원래 아침 일찍 가기 위해 6시 반 차를 타고 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어제 밤 지역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니 한 사람이 간다고 하여 7시 반으로 늦추었는데 놓친 것이었다.

소성리에 간 적은 여러 번 있었다. 사드반대공동행동에 속한 여러 단체들이 돌아가면서 지킴이를 하러 가곤 했었다. 얼마 전까지 사드 반입과 관련해서는 소강 상태였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는 골프장에 기습적으로 배치한 뒤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가 영내 군인들의 생활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공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 공사가 또 다른 꼼수 아닌가 생각해서 주민들을 중심으로 공사차량 출입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물론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나 할까?

코로나19는 사드반대운동에도 예외 없이 영향을 미쳤다. 소성리의 벚꽃이 너무 아름다워서 4월에는 신돌석씨 지역 사람들이 가기로 장선우와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취소되어버렸다. 그 대신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한 달 동안 하기로 하였다. 신돌석씨 지역 사람들이 매주 화요일 11시부터 1시까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하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런데 두 번 하고 중단되었다. 새로운 일이 터진 것이다.

첫 번째는 신돌석씨가 하고, 두 번째는 두 사람이 가서 하였다. 장선우가 고맙다는 인사로 술을 한 잔 사겠다고 해서 넷이서 술을 마시고 있는 도중이었다. 전화를 받은 장선우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자기 지금 소성리에 내려가야겠다고 했다. 경찰이 동원되어서 주민들을 접근 못하게 하고는 새로운 장비를 들여 놓고 있단다. 또 다시 사드를 추가 배치하겠다는 것인가? 지금 혼자 내려가서 무슨 소용이냐고 하니, 걱정 때문에 잠못 이루느니 가는 게 낫다고 한다.

경찰의 침탈로 일단 1인 시위는 마지막 한번을 남겨 두고 중단하기로 했다. 그 대신 공사차량의 출입을 막기 위해 돌아가면서 소성리에 내려가기로 했다. 신돌석씨 지역도 한 번 맡아달라고 해서 오늘 내려가기로 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려가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신돌석씨가 장선우와 둘이 내려가기로 했다가 어제 밤에 갑자기 함께 내려가겠다는 사람이 생겼는데 시간을 늦추어 달란다. 그래서 부랴부랴 장선우에게 연락하여 시간을 늦추었다.

열차를 떠나보낸 뒤 바로 장선우에게 전화를 했다. 다음 차타고 오란다. 함께 내려가겠다는 사람은 다시 못 간다고 했단다. 일이 이리저리 꼬인다. 신돌석씨는 할 수 없이 만남의 장소로 터덜터덜 올라왔다. 신돌석씨는 코레일톡 앱이 있지만 왠지 잘 안 쓰게 되었다. 그래서 창구로 가서 열차표를 예매하였다. 다행히 30분 뒤에 열차가 있었다. 이번에는  4번 승강장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같은 경부선인데도 타는 곳이 바뀌어 있었다.

술 마시다가 소성리로 가던 날 장선우는 산을 타고 갔단다. 마을회관 있는 곳에 가니 이미 경찰이 막고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단다. 소성리에 여러 번 간 경험이 있으므로 산길을 타고 진밭교라고 하는, 사드반대공동행동 상황실이 있는 곳까지 갔다. 수천, 어쩌면 수만일지도 모르는 경찰을 동원해서 막으니 얼마 되지도 않고 나이까지 많은 주민들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급히 연락을 받고 온 부근의 원불교 성직자들, 활동가들도 꼼짝 못하는 상황이었다.

왜 이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그러는 것일까? 이번 침탈의 명분은 노후 장비 교체였다. 실제로 뭔가가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들어가는 것에 전자장비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 주민들의 증언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정말 발사를 하려는 것인가? 뉴스에는 제대로 안 났지만 엊그제 한미일 미사일 훈련을 했단다. 미국의 MD체계에 본격적으로 편입하기 위한 수순을 밟는 것일까?

장선우는 사드 문제를 이야기할 때 민주주의와 적폐 청산이라는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곤 했다. 장선우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노동운동을 한 사람인데 자주를 강조하기보다는 평등을 강조하는 사람이었다. 이제 정파에 따른 노선 차이라는 것은 크게 의미를 갖지 않겠지만 장선우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그가 사드 반대 공동행동에 소속되어 일한다는 것에 신돌석씨는 조금 놀라기도 했었다. 물론 사드반대공동행동은 상설 조직이 아니라 공투체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는 그보다는 노동자투쟁 등에 집중할 것 같았었다

그런데 그의 생각을 들어 보면 그 나름대로  일관성이 있었다. 사드는 박근혜가 갑자기 들여오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2015년까지도 박근혜 정부는 사드를 배치하라는 미국 정부의 요청도 없었고, 논의도 없었으며, 결정된 것도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2016년이 되면서 말이 바뀌기 시작하더니 그해 7월에 들여오는 것으로 전격적으로 결정되었다. 그 후 촛불시위가 겨울 내내 계속되고 박근혜가 탄핵되었다. 사드도 일본군 위안부 합의 등과 마찬가지로 없던 일로 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아니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황교안이 기습적으로 발사대 2기를 도둑질하듯이 배치하였다. 그 과정에서 마땅히 해야 하는 환경영향평가도 없었고, 국회의 동의도 없었으며, 반경 3.6킬로미터 안 전자파 위험지역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주민들에게 한마디의 설명회나 동의 과정도 없었다. 더욱이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 미국과 어떤 논의를 했는지 공식적인 협정문서도 내놓지 못했다.

▲ [삽화-백소(白笑)]

대통령 선거가 있고 새 정부가 들어섰다. 졸속적인 배치 결정이나 도둑질 하듯 한 기습배치도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취소되리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다. 그런데 새 정부는 환경평가를 제대로 하겠단다. 그렇다고 배치된 걸 취소하는 건 아니란다. 불법적인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발언을 하였다. 미국과 수구세력의 거센 압력을 슬기롭게 넘어가려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문제로 지금 막 출범한 정부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도 하였다. 신돌석씨는 그런 말을 들을 때 그러려니 했다.

그런 와중에 소성리에 이미 배치된 2기 이외에 4기가 더 국내에 반입되어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황당한 일이었다. 새 정부의 대통령에게 보고되지도 않았다. 새 정부의 정의용 안보실장이 인수 업무 때문에 아직 국방부 장관직을 수행하는 한민구에게 물었더니 자기도 전혀 모른다고 했단다. 국방부 정책실장인가 하는 사람이 서류를 대충 변경해서 얼렁뚱땅 넘어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엄하게 다스려야 할 문제였다. 보수언론들은 새 정부가 다 알면서도 군을 길들이려고 짐짓 그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이 문제로 어떻게 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해 9월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촛불정부라고 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나머지 4기가 배치되었다. 황교안 권한대행 때 못지않은 엄청난 경찰 병력을 동원하였다. 신돌석씨는 당시까지 공장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그해를 마지막으로 신돌석씨는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고 아는 사람이 하는 공장 자재 창고를 관리해 주는 일을 하였다. 그 이후로는 비교적 시간을 내기가 수월하였다. 그래서 2018년부터 여기저기 투쟁 현장에 갈 수가 있었고, 소성리 역시 그랬다.

신돌석씨가 사드 문제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장선우에 대한 신뢰도 있고, 이제 시간이 좀 되니 노년을 의미 있게 보내자는 생각도 있어서였다. 처음에는 사드 이야기만 들으면 흥분했다가 도중에 많이 헷갈렸는데 장선우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정리가 되었다. 장선우는 사드를 적폐의 하나로 규정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를 중국의 표적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하였다.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가려는 지금까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고, 그러한 짓을 촛불정부라고 하는 곳에서 한다는 것에 분개했다.

신돌석씨는 장선우의 생각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였다. 하지만 운동을 하는 일반인들을 만나면 사드에 대해서 크게 관심들이 없었다. 심지어 통일이 되면 그게 바로 우리 것이 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북이 핵을 개발했을 때 통일되면 그게 우리 것이 되는데 왜 난리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그때 깜짝 놀라서 고무되기까지 했는데 이번에는 그 반대의 논리가 비슷한 사람들 속에서 나왔다.

중국과 러시아의 공격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할 것이며, 북한 핵은 어떻게 막을 것이냐는 주장도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신돌석씨로서는 명쾌하게 반박하기 어려웠다. 전자파 피해 문제에 대해서는 아들 힘찬이에게 핀잔을 들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선동하듯이 하면 오히려 역공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힘찬이는 전자파 위험은 거의 없다고 하였다. 이것 역시 신돌석씨로서는 반론을 펼 수가 없었다. 결국 신돌석씨는 그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하지 못하는 문제를 지적하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8시 출발 열차는 9시22분에 김천구미역에 도착 예정이었다. 장선우가 먼저 가서 30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미안했지만 그래도 30분 만에 가는 열차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표를 예매할 때 가족석이라서 맞은 편 자리에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괜찮냐고 직원이 물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서 그냥 좋다고 했다. 차에 올라가 보니 한 열차에 모두 60석이 있는데, 32석과 28석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가운데 여덟 석이 마주 보고 있게 되었다. 그게 바로 가족석인 모양이었다.

평소에도 모르는 사람이 마주 앉는 것은 싫은 법인데 요즘처럼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시기에는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석 여덟 석 중 네 자리만 사람이 앉았다. 신돌석씨가 앉은 자리 네 석 중에 신돌석씨를 포함하여 둘이 앉았고, 다른 쪽 가족석에도 둘이 앉았다. 신돌석씨 맞은 편에는 젊은 사람이 앉았는데 창 측에 먼저 앉은 신돌석씨를 보고는 복도 측에 앉았다. 다른 가족석에는 젊은 여자 둘이 역시 한 사람은 창 측에 반대편 사람은 복도 측에 대각선으로 비껴서 앉았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광명역에서 한 번 정차하였다. 신돌석씨 건너편의 젊은 사람이 창 측으로 옮겨 앉았다. 마주 보는 셈이 되었다. 이 사람이 다리를 약간 펴자 신돌석씨가 다리를 오므려야 될 판이었다. 이래서 가족석이 괜찮겠냐고 물은 모양이었다. 모르는 사람끼리 마주 앉아서 다리도 못 편다면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싫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는 눈을 지그시 감더니 조금 있다가 숨소리까지 거칠게 내며 잠이 들었다. 할 수 없이 신돌석씨가 복도 측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차하는 역 사이마다 코로나19에 대한 안내 방송을 하였다.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턱에 걸치거나 코 밑에 걸치지 말라고 하였다. 또 통화나 대화는 객실 밖에서 해달라는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계속 승무원이 다니면서 마스크를 턱에 걸치면 시정하도록 요구하였다. 그러다가 승객이 화를 내면서 거부하고 행패를 부린 사람이 철도경찰에 연행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이 열차에서는 승무원의 요구가 있으면 즉시 시정하였다. 그러다 보니 열차 안이 버스나 전철과는 달리 절간처럼 고요하였다.

▲ [삽화-백소(白笑)]

열차는 1시간 22분 만에 김천구미역에 도착하였다. ktx 역은 지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다 보니 이렇게 역 이름도 두 지역을 함께 쓰나 보다. 김천의 구시가지와는 달리 새로 개발된 곳이라는데 구미도 함께 이름을 쓰고 있었다. ktx는 정말 빠르다는 것을 탈 때마다 느끼게 된다. 집에서 서울역까지 간 시간이 서울역에서 김천까지 내려온 시간보다 더 걸린 셈이었다. 누가 뭐라 그래도 발전이고, 이 발전된 상황이 인간을 공간적 시간적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일 것이었다.

김천구미역에서 택시를 탔다. 성주 소성리 마을회관을 지나 더 올라가서 상황실이 있는 진밭교까지 갔다. 마을회관은 코로나19 때문에 닫혀 있다고 하였다. 택시비가 19,000원이 나왔으니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도착하자마자 낯익은 원불교 교무가 반갑게 맞이했다. 이곳 부근에 2대 종사인 정산 송규정사의 탄생지가 있는데, 그곳 부근의 성지가 침탈당하였다 하여 사드반대투쟁에 원불교 성직자와 신도들이 열심히 참여하고 있었다.

오늘 와서 할 일이 진밭교에서 부대로 올라가는 길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통행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조금 있자니 대구에서 두 명, 김천에서 세 명이 왔다. 지금까지 올 때마다 열렬히 싸우던 이곳 주민들, 특히 할매라고 불리는 할머니들은 지난 번 경찰 침탈에 항의하기 위해 성주경찰서로 가서 싸우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경찰들이 주민들을 마을회관 부근에서 가로막고 통행을 제한하여 집에도 돌아가지 못한 채 밤을 새워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경찰서장의 사과를 꼭 받아내고 다시는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야겠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었다.

날이 무척 더웠는데 이곳은 시원하였다. 옆에 계곡이 있었다. 계곡 물소리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런 곳에 앉아서 출입 통제만 한다면 충돌이 없는 한 신선놀음하는 기분일 것 같았다. 이런 평화로운 곳에 무시무시한 무기가 배치되어 있고, 얼마 전에도 경찰 수천 명이 동원되는 싸움이 있었다는 것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원래 이곳에는 차가 다니는 길이 없었는데 롯데가 골프장을 만든 뒤 도로가 생겼다고 한다.

진밭교는 다리 이름인데 진밭이 원래 이 동네 이름이라고 하였다. 다리 이쪽은 사드반대투쟁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건너편에는 경찰들이 커다란 천막 안에 있었다. 경찰이래야 의무경찰이 네 명 정도 있었다. 병역 의무를 대신해서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로 어린 친구들이었다. 다리 건너기 전에 오른쪽으로 난 길로 죽 올라가면 평화계곡 피정의 집이라고 하는 천주교 시설이 있었다. 이곳의 계곡 이름이 평화라고 하는 것은 우연치고는 참 얄궂은 느낌이 들었다.

가끔씩 다리를 지나는 차들이 있었다. 진밭교와 부대 사이에 사는 주민들이 있다고 한다. 주로 별장 같은 것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곳 주민들을 위해 전기공사를 하는 차가 통행한다고 해서 보내주었다. 또 묘지 이장을 하기 위해 측량하러 들어가는 차도 들여보내 주었다. 경운기를 타고 가면서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도 있고, 트럭을 몰고 가면서 죄송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다 그렇게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고급 승용차를 몰고 온 사람은 왜 막냐고 시비조로 나왔다. 들여보내 주기는 했지만 영 거슬리는 사람이었다.

11시가 조금 넘었을 때 원불교 교무가 인증샷을 하자고 하였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기지불법공사 뒷받침하는 문재인정부 규탄한다’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함께 모여서 사진을 찍었다. 몇 주 전에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도 잘 될 거란 보장은 크게 없었지만 지금처럼 황당하지는 않았었다. 왜 이렇게 되어야 하는 걸까? 소성리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촛불혁명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필자 정해랑(鄭海郞)

서울에서 태어나 여의도 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노동정책연구소 정책실장, 경희총민주동문회 회장, 이수병선생기념사업회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재생의 담론 21세기 민족주의>(2010년, 공저), <공주와 도둑들>(201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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