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 제72주년 제헌절 맞이 유신독재청산 심포지엄이 7월 2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사진-정해랑]

제72주년 제헌절 맞이 유신독재청산 심포지엄이 지난 2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이 심포지엄은 ‘사라진 국회 10월 유신과 민주주의 말살’이라는 제목이 말하듯이 핵심 주제가 유신체제의 근본적인 불법성이다. 유신체제의 피해자이면서 저항자였던 사람들이 각 분야에서 활동하다 유신청산을 위해 모여서 만든 ‘유신청산민주연대’가 주최하고, 그 중 한 단체인 민주 인권 평화를 실천하는 긴급조치사람들이 주관한 이 심포지엄은, 유신의 피해 당사자 혹은 피해자의 자녀인 설훈, 노웅래, 우원식, 이학영, 김영호 의원도 주최의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유신청산민주연대의 이대수 운영위원장의 사회로 시작된 심포지엄의 첫 발언은 국회의원들의 인사말이었다. 인사말을 통해 국회의원들은 유신체제는 불법적이었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미친 악영향에 대한 싸움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유신청산을 위해 연대조직을 만들고 이런 행사를 마련한 유신청산민주연대에 대해 감사하고, 유신청산을 위해 입법권한을 가진 국회의원으로서 항상 함께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고 김상현 전의원의 아들인 김영호 의원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체포되고, 구속되었을 때 면회를 가던 이야기, 재판정에서 철모르는 아들로서 아버지 포승줄을 잡고 재미있어 하다가 구속자 가족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던 일들을 이야기해서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어서 피해당사자이기도 한 홍윤기 동국대 교수의 영상과 증언이 있었다. 유신 선포 당시의 계엄령 발동과 국회, 중앙청, 대학가 등에 진주한 군대 모습에 대한 영상과 함께 시작된 홍윤기 교수의 영상과 증언은 발표자의 개인적인 체험과 더불어서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홍윤기 교수는 유신체제의 성립을 알림과 동시에 시행된 국회 강제 해산은 헌법 조항에도 근거가 없는 위헌적인 것으로, 이에 대해 이후 50년 가까이 지나도록 그 흔한 1인 시위조차 하는 국회의원이 없었다는 것에 대해 개탄한다고 말하였다.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더 이상 피해자를 위해 무엇을 한다는 식의 말을 하지 말고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국회를 법조항도 없이 강제 해산한 것에 대해 스스로의 존엄을 되찾는 역할부터 하라고 강조하였다.

2부는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직한 강경선 교수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첫 발제자로 나선 김재홍 유신청산민주연대 상임대표는 ‘유신 선포의 내란 성격에 관한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는데, ‘대통령 박정희의 국회 해산과 민주주의 파괴’라는 부제를 통해 이 날 심포지엄의 핵심적 내용들을 정리하였다. 특히 유신을 선포하면서 국회의원들을 연행해서 보안사, 중앙정보부, 군 헌병대 등에서 고문한 내용들을 증언을 통해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김재홍 상임대표는 유신 선포는 폭력을 동반한 내란이라고 규정하면서, 유신체제는 붕괴되고 민주화 세력으로 정권교체는 이루어졌지만, 사회지배세력의 민주화는 아직도 요원한 실정이라면서, 유신청산민주연대의 과제는 사회권력의 교체라고 규정하고, 그 하나로 반민주행위를 한 유신 부역자들에 대한 명단 정리와 공개를 예로 들면서 발표를 마무리했다.

둘째 발제자로 나선 임지봉 서강대 법학과 교수는 ‘제헌절, 유신헌법 해부와 평가 및 헌정사적 향후 과제’를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제헌헌법의 정신에 비추어 볼 때 유신이 선포된 1972년부터 유신헌법이 종말을 고하는 1980년까지는 헌법이 없는 시기로 헌법진공시기이든가 혹은 1969년의 헌법이 여전히 유효한 시기라고 규정하였다. 유신헌법은 개정 과정에서부터 당시 헌법에 위배되는 내용이었는데, 당시의 헌법인 1969년의 제6차 개정헌법은 제119조에서 121조에 걸쳐 헌법 개정의 절차를 규정하고 있었다. 제119조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 또는 국회의원선거권자 50만 명 이상이 헌법 개정을 발의할 수 있고, 대통령이 30일 이상 이를 공고해야 함을 규정했고, 제120조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통한 국회 의결을, 제121조는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통한 국민투표로서의 헌법 개정 확정을 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회를 해산하고 국회의 의결도 없이 곧바로 국민투표에 붙임으로써 헌법에 근거가 없는 헌법 개정을 한 것이었다.

또한 유신헌법은 개정 절차만이 아니라 내용에서도 국민주권원리, 권력분립원리, 법치주의원리, 입헌주의원리, 민주공화국 국가형태에 위배되는 헌법이었다. 이러한 유신헌법의 반(反)헌법성과 폭력성이 아직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작동하고 있다고 규정한 임지봉 교수는 유신헌법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방법으로 세 가지를 제안하였다. 첫째, ‘유신청산특별법’(가칭)과 같은 국회 입법을 통해 유신헌법의 불법성과 무효 확인을 선언한다. 둘째, 대통령이 대국민 성명을 통해 유신헌법에 대해 사과한다. 셋째, 사법부가 긴급조치 사건 등 개별적 사건의 재심을 통해 무효화 판결을 내린다. 이 중에서 둘째 방법은 그 후 대통령들에게도 이러한 대국민 성명이 유효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셋째 방법은 너무 개별적이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므로 지금으로서는 ‘유신청산특별법’(가칭)과 같은 국회 입법을 통해 유신헌법의 불법성과 무효 확인을 선언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결론으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토론자로 나선 한국외국어대 반병률 교수는, 김재홍 교수에게 ‘국지적 안보위기론(한반도 위기론)이 강압적이며 일방적인 방식이기는 하지만 국민들 사이에서 먹혀들어갈 수 있다고 보이는데 그 배경과 이유에 대해 보충적으로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또 임지봉 교수에게는 헌법학자로서 유신체제의 시점과 종점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헌법 전문에 들어간 것은 6공화국 헌법 때부터인데, 그때의 임시정부는 ’상해임시정부‘가 아니라 ’한성임시정부‘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하였다. 두 번째 토론자로 나선 송병춘 변호사는 유신청산 특별법 제정의 의의에 대해서 제기하였다.

마지막 순서인 종합토론에서 참가자들은 발표자인 홍윤기, 김재홍, 임지봉 교수에 대한 질문과 자신의 주장을 폈는데 어릴 적 유신시절의 정신교육 덕분에 반공 국가주의 전쟁공포 권위주의 등의 경향이 평생 남아 있어 교육차원에서 반드시 청산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또한 언론인임을 밝힌 참석자는 유신시대의 불법 청산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하자는 구체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는데. 연대회의에서도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이 전권을 갖는 유신독재 대신 대법원장, 검찰총장, 감사원장 등을 직선제로 선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었다. 답변에 나선 발표자들은 유신독재에 맞서 싸운 국민저항권과 관련해 우리 헌법은 전문에 3.1운동과 4.19의거를 명시함으로써 저항권을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고, 유신의 사법파동을 시작으로 유신시대를 거치면서 용기 있는 법관들은 대부분 떠나고 긴급조치 관련 8건을 판결한 양승태 같은 인물이 남아 사법농단까지 이어지면서 현재의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오후 6시를 넘기면서 열띤 토론이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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