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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교수의 잘못된 전제

기사승인 2020.07.04  03: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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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정해랑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김누리 교수의 책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가 화제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우리보다 앞선 사회인 독일 사회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소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글쓴이는 김 교수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에 대해서 다소 과장되고 단정적인 면이 있지만 대부분 공감한다. 독일 사회의 장점을 소개한 것에 대해서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론 이 부분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온 진보적인 학자들이 그 내용의 대부분을 이미 우리 사회에 소개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김 교수처럼 대중적인 언어로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김 교수가 역설하는 내용의 전제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쓴다.

우선 김 교수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한 비교 대상으로 독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요술 거울’이라는 비유를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도 이러한 비교 대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일면 타당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고 대상이지 우리가 가진 문제의 본질을 알게 해준다거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교훈을 얻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조건을 알게 된다. 앞사람으로부터 물려받은 자신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존재와 비교할 때 우리는 좌절감에 빠지거나 자신의 이상에만 매몰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왜 우리나라와 독일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가? 현대사의 궤적이 가장 유사하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과 분단의 운명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국가의 규모도 엇비슷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독일은 현대사의 궤적이 전혀 비슷하지 않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바이마르 공화국을 통해 민주주의가 만개되었던 경험이 있는 나라이다. 그리고 전 세계의 선진 제국주의와 인류 최초 사회주의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국력이 막강한 나라였다. 그리하여 전범국가의 책임을 지고 분단이 된 나라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일부 선각자들을 제외하고는 민주주의에 대해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식민지가 되었고, 해방이 되자마자 또 다른 외세에 강점되고 분단되었으며, 세계대전을 방불케 하는 전쟁의 참화를 겪고 분단이 고착화된 나라이다. 현대사의 궤적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가?

이러한 잘못된 대전제는 또 다른 잘못된 소전제를 낳는다. 우리 현대사의 민주주의 역사가 그 이면으로 보면 군사 쿠데타의 역사이기도 하다고 보는 것이다. 김 교수는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으로 이어져온 한국 민주주의가 위대한 민주주의의 역사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군사독재의 야만 속으로 다시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김 교수는 우리 현대사의 민주주의 역사를 추락의 반복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우리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4.19혁명이 5.16군사쿠데타로 좌절되고, 5.18민주화운동이 폭력적 진압으로 끝나고, 6.10민주항쟁이 양김의 분열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군사독재를 연장시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제3세계의 나라들에서 보는 ‘반복’은 아니었다. 그것은 군사독재를 해체시키는 과정이었고, 비록 불철저하고 부족하다 할지라도 우리 사회를 민주주의를 위한 토대를 만들게 한 것이다. 4.19혁명이 없었으면, 5.18민주화운동이 없었고, 5.18민주화운동의 무장항쟁이 없었으면 6.10항쟁은 무력으로 진압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촛불혁명의 평화적인 시위는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실패와 반복’으로만 볼 수밖에 없다.

현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우리의 현재 문제의 근원을 ‘6.8혁명’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낳게 만든다. 김 교수는 ‘한국만 예외적으로 6.8혁명이 없었다’고 한다. 그가 6.8혁명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책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그것은 서구에서 미국, 일본으로 번져 갔고, 동구에 전파되었는지는 몰라도 여타 제3세계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었다. 한국만 예외적으로 없었다고 하는 것은 김 교수의 서구 중심의 세계관을 보여 주는 것이다. 1968년의 한국이 어떠한 상황이었는지는 김 교수도 언급하고 있고, 그것은 대체로 맞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한국은 남북 대결이 고조되고 군사독재가 점점 더 강화되어 가면서 공공연하게 폭력을 행사하여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던 시기였다. 김 교수가 말하는 6.8혁명의 문화혁명 등은 꿈도 꿀 수 없는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아는 김 교수가 그것이 없어서 오늘의 사회가 되었다는 말을 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다시 말하지만 김 교수가 우리 사회에 대해 갖는 문제의식이나 민주주의에서 앞선 나라들의 경우를 통해 우리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갖는 조건 속에서 우리는 우리 문제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잘못된 전제를 그냥 수용한 채 문제의 원인이나 해결 방안을 찾는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논리가 대중 속에서, 또 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 속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을 글쓴이는 가볍게 보지 않는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악조건 속에서도 전진해 왔다. 그 결과 군사독재와 냉전을 불완전하게나마 무장 해제시켰다. 하지만 아직 그것은 미약하고, 더욱이 길 닦아 놓으니 개가 먼저 지나가더라고 민주주의의 성과를 재벌을 비롯한 수구세력의 잔재들이 오히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활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치열하면서도 치열하고 현명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그 점에서 김 교수의 문제의식은 우리가 참고해야 할 사항이면서도 비판 극복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해랑 jhr137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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