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 대한항공은 KAL858기에 대한 폭탄 전문가 의견을 듣기 위해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에 연락을 했다. 대한항공의 편지는 안기부 수사발표 뒤에 보내졌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는 KAL858기 사건에 대해 지금까지 전혀, 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내용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 NTSB)와 관련된 부분이다. 이 위원회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교통/항공 사고를 조사하는 기관이지만, 필요하면 해외 조사에도 참여해오고 있다.

당시 대한항공 안전관리실장은 미국에 보낸 편지에서 KAL기 폭파에 대한 폭탄 전문가(bomb specialist)의 견해를 물었다(2016090026, 201쪽). 그런데 시점이 주목된다. 편지가 쓰인 때는 1988년 1월 28일로, 이는 1월 15일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수사발표가 있고 난 뒤다. 한국 당국은 KAL기가 북쪽의 테러로 공중 폭발되었다고 수사결과를 확정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대한항공은 ‘자체적으로’ 폭파와 관련된 사항을 확인하려 했다. 왜 그랬는지 궁금하다. 혹시 정부의 발표를 대한항공이 검증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대한항공, 뒤늦게 폭파 관련 확인 시도

이 편지는 노재원 당시 캐나다 주재 대사가 에드먼드 스토(Edmund Stohr) 국제민간항공기구 이사회 미국 대표를 만났을 때 건네받았다. 미국 대표는 “아국[한국]이 미국의 NTSB와 접촉하고 있다”면서 편지 사본을 캐나다 대사에게 전해주었다(199쪽). 대한항공이 정부와 사전 교감 없이 미국에 연락했다는 뜻이다.

물론 편지는 정부의 직·간접적인 요청을 받아, 또는 정부와 보이지 않는 협의를 통해 대한항공이 자신의 이름으로 보낸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문서상으로는 대한항공이 직접 연락한 것으로 나온다. 어떤 경우든, 이 편지는 당시 안기부 수사발표에 대한 검증이 필요했다고 일러준다.

편지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대한항공은 사건의 추정 원인(probable cause)을 “여성 테러범 용의자의 진술에 따른(as per statements made by a suspected female terrorists) 공중에서의 폭탄 폭발”로 명시했다(201쪽). 어떤 물리적 증거가 아닌 “진술”에 바탕을 둔 폭파라고 한 대목이 주목된다.

그 다음 부분은 폭발물의 종류를 말하고 있는데, 잘 알려졌듯 “Composition-4” 350g과 “PLX” 700cc로 적혀 있다. 이를 포함해 전반적인 상황으로 봤을 때 대한항공은 두 가지를 궁금해 했다. 짧게 말해 첫째는 그 분량의 폭탄으로 비행기가 어떤 상태에서 추락했는지, 둘째는 추정되는 추락지점이 어디인지였다(202쪽).

미국 위원회, 블랙박스 없어 답변 불가능할 수도

1988년 2월 26일 답장에서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는 도움을 받기 위해 편지를 ‘연방항공청’과 ‘보잉사’에 전달했다고 밝힌다. 하지만 위원회는 대한항공에 가치 있는 답변(valuable answers)을 제공하기가 불가능할 수 있다고(may not be possible) 말한다.

왜냐하면 블랙박스, 곧 비행기록장치가 없는 상태에서(without flight recorder) 정확한 폭발 시점과 피해 정도를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200쪽). 또한 날씨 정보도 편지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위원회는 대한항공이 아마도 정보를 많이 갖고 있지 않을 것이라며 추정(assumptions)을 바탕으로 일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인다.

이와 같은 미국 위원회의 반응은 중요한 점을 몇 가지 일러준다. 먼저 폭파와 관련된 사항을 더 정확히 알려면 “블랙박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블랙박스를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사고 원인을 확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아울러 위원회가 “추정”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넓은 맥락에서 대한항공은 물론 한국 정부 모두 실종 원인을 추정할 수밖에 없다는 뜻일 수 있다. 왜냐하면 블랙박스 같은 확실한 물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한항공이 인용한 폭탄의 종류와 양은 공식 수사발표에 나온 내용인데, 이는 임의로 “추정”된 것이었다. 안기부는 1988년 1월 15일 “콤퍼지션 C4, 라디오... 여백에 폭약 350g 장약”하고 “P. L . X... 700cc를 술병에” 담은 폭약으로 KAL기가 폭파됐다고 했다(2017040099, 83쪽).

그러나 2004년 7월 8일 정형근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안기부 KAL기 수사를 지휘했던 당사자로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김현희] 진술을 토대로 추정 단정해서 발표한 것이지 이것이 김현희도 모릅니다. 그게, 얼마를 넣었는지...”

그리고 미국 위원회는 한국 정부의 항공 부서에서 누가 이 일을 맡고 있는지 알려 달라고 했다. 편지에 해당 내용이 없어서였는데, 위에서 지적했듯 이는 대한항공이 위원회에 자체적으로 연락했다는 뜻이다.

만약 그렇다면 편지는 대한항공이 폭탄과 관련된 안기부 설명을 확신하지 못했다는 증거일 수 있다. 혹시 편지가 정부와의 논의를 통해 보내졌다 하더라도, 이는 안기부 발표가 어떤 형태로든 ‘검증’될 필요가 있었다는 뜻이다.

미국, 김현희 사용 폭탄 “미국에서만 생산”

▲ 미국은 김현희가 사용한 폭탄이 “미국에서만 생산”된다고 한국에 조용히 알려왔다.

폭탄 관련해 주목되는 문서가 또 있다. 한국은 국제민간항공기구에서 KAL기 사건 관련해 대북 규탄 결의안이 채택되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보고서가 제출되고, 1988년 3월 16일 한국 관계자는 국제민간항공기구 미국 대표와 면담을 한다. 미국 대표는 “미국측만이 아는 사항이며 미국은 물론 이사회에서 이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PLX는 “미국 뉴저지주에 소재하는 PISCATAWAY의 LIQUID EXPLOSIVE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되나 동 액체폭탄은 미국에서만 생산되고 미국에서만 구득이 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음”(2017040102, 37-38쪽). 곧, 김현희가 사용한 폭탄은 미국에서만 얻을 수 있는 미국 무기다. 따라서 이 대표는 한국이 KAL기 관련 국제민간항공기구 논의에서 폭탄의 “정확여부 및 공급원등에 대한 설명준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PLX 액체폭약에 대한 이 설명은 2016년 개인적으로 열람했던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자료에도 나와 있었다. 위원회는 KAL기 사건 재조사 과정에서 옛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의 비밀문서를 찾았다. 슈타지의 1988년 5월 11일 문서에 따르면 “PLX는 미국에서 생산하는 액체폭약물”이다(DA0799681, 122쪽). 아울러 이는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가 2005년에 마련한 토론회 자리에서 폭약 전문가가 밝혔던 내용이기도 하다.

또한 위 미국 대표에 따르면, 김현희 일행이 폭탄을 넣었다는 라디오 “PANASONIC MODEL RF-082는 당지 CANADA에 확인한 결과 존재하지 않는 모델”이었다(2017040102, 37쪽). 그런데 이 라디오는 실제로 있었고, 지금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안기부 수사 당시 김현희가 라디오를 SONY 제품이라며 그림까지 그렸는데, 나중에 수사관이 PANASONIC 제품을 보여주자 “이거 맞아요!” 했다는 것이다(국가정보원,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III>, 425-426쪽). 김현희 자신도 폭탄 위장에 사용한 장비가 무엇인지 몰랐다는 말이다. 국정원 발전위원회 역시 이 사건을 재조사했는데 “라디오의 정확한 종류는 불분명하나, Panasonic RF-082 라디오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428쪽).

인도, 대한항공 조언에 따라 수색 중단

▲ 인도 조사보고서에는 KAL858기 교신 기록이 첨부되어 있다.

한편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내용 가운데 또 하나는 인도 조사보고서다. 1987년 12월 12일 안다만 해 인도 관할 구역에서 KAL기 잔해가 보였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한다. 정말 KAL기의 잔해라면 사고가 인도 구역에서 난 것으로, 이는 국제규범에 따라 인도가 조사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수색이 시작되었지만 실제로 잔해를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2월 16일 버마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는데, KAL기 잔해가 버마 해역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었다. 그러자 당시 현지에 와 있던 조중건 대한항공 사장이 인도가 수색을 그만두도록 조언했다고(advised that we may terminate our search operations) 한다(2016090027, 19쪽). 지금까지 KAL기 잔해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때 인도가 수색을 계속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인도는 이 수색을 계기로 조사보고서를 쓴 듯하고, 작성 일자는 1987년 12월 23일이다. 덧붙여 인도는 KAL기가 ‘공식적으로’ 알려진 최종교신 지점 URDIS에 앞서 인도-버마 공동 구역인 TOLIS를 지났다는 점에서 관련이 있었다. 또한 탑승자 가운데 1명이 인도 사람(D. Phulwani, 두바이 주재 상사 근무)이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인도의 이용 가능한 정보(the available information)에 따르면 사고 추정 지점은 버마 해역에서 서쪽으로 50-60마일 떨어진 국제해역(international waters)이었다. 이 경우 사고 조사는 한국(the Korean authorities)이 맡게 된다(19쪽).

이를 바탕으로 인도 당국은 대한항공 사장에게 인도 관할 구역에서 수집된 정보들이 한국에 제공되리라고 시사했다. 결과적으로 버마가 사고 발생국 자격으로 조사를 했는데, 인도가 말한 “이용 가능한 정보” 관련해서는 구체적 내용을 포함해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관제소 통신 기록이 있었다면

이를 떠나 KAL858기는 TOLIS와 교신을 하기까지 정상적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고서에는 KAL기와 인도 관제소와의 통신 기록(녹취록)이 첨부되어 있는데, 모든 교신 내용이 나와 있다(24-28쪽).

나는 최근 연재를 하며 버마 관할 구역인 최종교신 지점과 관련해 논란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는 인도처럼 버마가 통신 기록을 구체적으로 내줄 수 있었다면 풀릴 수도 있었지 않나 생각된다.

참고로 작년에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1987년 12월 4일 대한항공 사장은 버마 당국에게서 “URDIS 지점부터 랑군 TOWER 교신한후부터35분간의 RADIO CONTACT 녹음테이프를” 건네받았다(2016070040, 131쪽). 하지만 대한항공은 국정원 발전위원회 재조사 당시 “해당 녹음테이프를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III>, 5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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