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인생보다 진실한 게임
 - 최영미

 돈과 권력과 약물로 오염된, 아무리 더러운 그라운드에도 한 조각의 진실이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인생보다 아름다운 게임이 축구이다. 


 중학교 남자 아이들이 학원 수업을 마치고 축구를 하다 아파트 주민들의 신고를 받은 경찰에게 연행되었다가 풀려났다고 한다.  

 학원 끝나는 시간이 밤 10시쯤이니 아이들의 괴성에 주민들이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거의 체육 활동을 하지 않으니 아이들이 불타오르는 에너지를 견디지 못했나 보다.  

 최영미 시인은 축구가 ‘인생보다 아름다운 게임’이라고 선언한다. ‘돈과 권력과 약물로 오염된, 아무리 더러운 그라운드’일지라도 축구에는 ‘한 조각의 진실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갈파한다. 

 원시인들은 전쟁도 게임으로 보았다고 한다. 내가 어릴 적에는 이웃마을 아이들과 ‘전쟁’을 많이 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아이들이 총동원되었다. 삽시간에 돌멩이가 하늘을 가르고 함성을 지르고 금방 전황은 살벌해졌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전쟁은 금방 끝나고 마을엔 고즈넉한 평화가 찾아왔다. 작은 상처들은 있었다. 돌멩이에 정강이를 맞은 아이들이 몇 있었다. 하지만 피를 철철 흘리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게임이었다. 여러 마을 아이들끼리 질서와  균형을 잡아가는 놀이였다.      

 아이들끼리의 대다수 싸움도 게임이었다. 정정당당하게 싸웠고, 코피가 나면 싸움을 멈췄다. 새로운 질서와 균형이 생겨났다. 

 아이들끼리 놀다 위험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강자가 앞장섰다. 싸움은 각자의 역할을 정하는 의식이었던 것이다.  

 아마 아득한 원시사회가 이렇지 않았을까? 부족의 전사들끼리 싸우는 거니 여러 작은 희생들은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대량 살상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원시인들은 소유를 몰랐으니, 땅 뺏기도 하지 않았을 테고 삼라만상을 영적인 존재로 보았으니 함부로 죽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삼라만상 자체가 게임 아닌가! 해가 뜨고 달이 지고,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리고, 가끔은 태풍이 불고 지진이 일어나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얼룩말을 필사적으로 좇는 사자. 그 둘은 신나는 게임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명을 건 한판 승부. 그들의 게임은 깔끔하다. 어떤 더러움으로도 오염되지 않은 자연이다. 

 그래서 승부가 끝나고 나면 얼룩말은 온 몸으로 승복한다. 사자는 승리를 만끽한다. 고즈넉한 평화.

 원시시대가 끝나고 농경이 시작되면서 인류에게 게임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전쟁이 살육과 약탈로 점철되었다. 병법서들이 등장하면서 온갖 싸우는 기술들이 개발되었다.    

 세상 전체가 전쟁터가 되었다. 인간은 승자와 패자로 나눠지게 되었다. 어느 누구도 승부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승리를 만끽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 둘은 오로지 승자 독식을 향해 무한 돌진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류는 게임의 향수를 버리지 못한다. 어른들은 끊임없이 장난을 치고, 아이들은 무슨 종교 의례를 하듯이 게임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게임이 사라진 세상엔 사이비 게임이 판친다. 게임을 빙자한 게임들이 난무한다. 그것들에는 지배와 폭력뿐이다.   

 게임을 잃어버린 인간은 n번방을 차려 잔혹한 게임을 해야 한다. 대다수는 ‘건전하게’ 한평생 성공을 향해 무한 경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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