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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 한국 외무부가 숨기려 했던 일

기사승인 2020.06.30  09:2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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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부 KAL858 문서 2차 공개 (6) - 박강성주

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 ‘국제민간항공에 관한 협약’ 부속서 13에 나와 있는 항공 사고의 독립적 조사 원칙.

KAL858기 사건에 대한 수사/조사는 한국 당국, 구체적으로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현 국가정보원)가 주도했다. 

더불어 국제규범에 따른 조사도 있었는데, 이는 버마(미얀마)가 맡았다. 왜냐하면 비행기가 버마 관할 구역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버마는 ‘국제민간항공에 관한 협약’에 따라 사고 발생국(the State of Occurrence)으로서 조사를 일차적으로 책임지게 돼 있었다. 이 협약 부속서 13은 항공 사건/사고 조사에 관한 내용으로, 제5장 4절에 따르면 조사 과정에 독립성(independence)이 지켜져야 한다(ICAO, “Aircraft Accident and Incident Investigation”). 

이 글에서는 버마의 KAL858기 조사와 관련된 사항을 살펴보려 한다.
 
버마 보고서는 ‘버마’가 보냈는가?
 
먼저 그 내용과는 별개로, 버마 조사보고서가 국제민간항공기구에 보내진 형식이 주목된다. 버마가 KAL기 잔해를 찾았다고 알려진 무렵, 외무부(현 외교부)는 1988년 3월 17일 버마 한국대사관에 “긴급”히 연락을 한다.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칼기사건 토의와 관련, 다수 우방이사국 대표들은 버마정부가 858기 잔해 수거사실을 독자적으로 ICAO에 보고하는 것이 공중폭파를 증명하는데 필수적임을 강조”했다는 내용이다(2016090027, 63쪽). 

따라서 외무부는 “보고서가 ICAO에 DHL[국제특송] 편으로 송부되었는지 확인하고, 송부 안되었을 경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 3.21전 필착토록” 하라고 지시한다. 여기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라는 문구에는 줄이 그어져 있는데, 삭제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표현이 일러주듯, 한국 정부는 버마 보고서 제출 과정에 적극 개입했다.
 
이 개입 과정은 1988년 3월 18일 노재원 당시 캐나다 주재 대사(전두환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외무위원장 역임)가 쓴 문서에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요약하면, 버마 주재 한국대사관 직원이 보고서를 받아 태국으로 가면, 이를 태국 주재 대사관이 캐나다에 보낸다. 캐나다 ‘한국’대사관은 이 보고서를 캐나다 주재 ‘버마’대사관에 보내고, 그러면 버마가 몬트리올에 있는 국제민간항공기구에 제출한다는 내용이다(69쪽). 

버마 정부가 “독자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한국이 대신 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래서였을까. 문서는 아래와 같이 끝을 맺는다. “송달과정은 버마조사 보고서의 제출과정에 아국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을 대외에 알리지 않기위하여 취하는 조치임을 참고 바람.”
 

   
▲ 한국은 버마의 KAL858기 보고서 제출 과정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감추려 했다.

그 다음 날에 작성된 외무부 문서도 이를 강조한다. “보고서 제출 과정에  아국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이 대외에 알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임을 유념바람”(70쪽). 이처럼 한국은 무리한 행위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버마 보고서 제출 과정에 끼어들었다. 이는 알려져서는 안 될 비밀이었다. 캐나다 주재 대사는 또 다른 문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북한의 왜곡선전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의미에서도 아측의 동 보고서 수령 사실이 누설되지 않도록 보안에 각별 유의하여 주시기 바람”(74쪽). 
 
이와 같은 예외적 조치는 한국이 버마에 보고서를 “DHL 등 가장 긴급한 방법으로 ICAO에 전달해줄것을 요청했던바, 버마측은 동발송을 민항국장명의로 하되 발송방법은 아측에 일임하여” 이루어지게 된다(73쪽). 

겉으로는 버마가 한국에 “일임”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위, 아래 문서들이 보여주듯) 한국이 버마를 계속 압박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보고서는 3월 25일 KAL기 관련 국제민간항공기구 논의 마지막 날 극적으로 제출된다.
 
버마 보고서는 ‘버마’가 썼는가?
 
그러면 보고서 ‘작성’ 과정은 어땠는지 살펴보자. 작년에 공개된 외교부 자료를 검토하며 나는 버마가 한국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 보고서를 썼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올해 공개된 자료 역시 이를 확인해준다. 

1988년 2월 9일 버마는 예비 조사보고서를 마련한다. 당시 버마 주재 대사에 따르면, 이는 한국 “조사팀과의 회의결과,본부[외무부]제공 각종 증거자료및 사진을 참고하여 당관과의 긴밀한 협의” 아래 작성됐다(32쪽). 

국제민간항공기구 협약에 따르면, 한국은 사고기 등록국(the State of Registry)으로서 버마가 맡은 조사에 참여할 수 있었고, 위 협의는 형식적으로 정당했다. 문제는, 협의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버마 주재 대사는 2월 24일 주재국 관계자들과의 면담에서 새로 발견된 잔해 내용과 “KAL기 사고가 북괴 공작원에 의한것임을” 버마가 “ICAO FINAL REPORT[최종 보고서]에” 포함해주기를 요청했다(47쪽). 

3월 4일 외무부 본부 역시 버마 한국대사관에 보낸 문서에서 이를 강조한다. “Final report에는 KAL 858기가 공중 폭파되었음을 증명하는 물적증거를 통한 기술이 중요한바 … 이를 뒷받침해주는 사실... 가급적 상세히 기술해주도록 각별 협조 요청바람”(55쪽). 

이에 버마 주재 대사는 3월 8일 버마 당국자들을 만찬에 초청하고, 보고서에서 KAL기 사건이 “공중폭파에의한것임을 충분히 설명해주기를” 요청했다(61쪽). 버마 관계자는 “더 요망 사항있으면 알려달라면서 가능한한 동보고서를 ICAO에 조속제출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한다.
 
이와 같은 요청은 엄격히 말해, 앞서 언급한 사고 발생국의 독립적 조사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었다. 해당 원칙이 명시된 협약 부속서 13은, 제5장에서 사고 원인의 확정(the determination of the causes)과 최종 보고서 완성(the completion of the final report)을 조사 내용에 포함시키고 있다. 

동시에 부속서 13은 ‘2001년’에 보강된 듯한 제6장 3절에서, 한국과 같은 관련국이 최종 보고서 초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보고서 작성국은 이를 보고서에 넣을 수 있다고(amend the draft Final Report to include the substance of the comments received) 규정한다. 곧, 당시 기준으로 무리했던 한국의 행위가 현재 시점에서는 정당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더라도 보고서 내용을 보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1988년 2월에 쓰인 버마 최종 보고서는 표지를 포함해 21쪽이다(78-98쪽). 그런데 현지에서 수집된 몇 가지 정보(최종교신 지점, KAL기를 목격한 어부 진술, 잔해)를 빼고는 대부분 한국이 제공한 자료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특히 버마 당국이 ‘직접’ 조사하지 않았음에도 비행기가 폭탄 폭발로 파괴되었다고(destroyed by the bomb explosion) 결론낸 부분이 그렇다(86쪽).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보고서는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가 이미 오래 전에 얻어낸 것이기도 한데, 이를 검토한 이도 비슷한 관찰을 했다(서현우, <KAL 858기 폭파사건 종합 분석 보고서>).   
 
버마 조사의 구조적 한계
 
이를 떠나 버마 당국은 2월 앞서 말한 한국의 요청이 있었을 때, “사고 원인을 탑승객에 의한 폭발 사고로 기히 결론을 내려 PRELIMINARY REPORT[예비 보고서]에 기술 하였고 기 수거한 구명정(LIFE RAFT)만으로도 사고 증거물로 충분하다”는 맥락의 답변을 했다(2016090027, 47쪽). 

한국 안기부의 설명을 예비 보고서에서부터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점도 문제지만, 버마가 구명보트 하나를 물증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던 대목은 좀 충격적이다. 하지만 당시 버마의 ‘역량’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버마 수도 랑군에는 기초적인 항공 통신 장비는 있었지만 포괄적 레이다(radar) 시설은 없었다(83쪽). 
 
이런 맥락에서 교통부 관계자가 “KAL 858 실종기 사고조사” 목적으로 버마와 태국을 다녀온 뒤 쓴 “공무 국외 여행 귀국보고서”가 주목된다. 출장 기간은 1988년 1월 18일부터 일주일로, 대한항공에서도 2명이 함께했다. 

보고에 따르면 “랭군[랑군, 양곤] 국제공항은 외국의 항공기가 1대도 없었으며, 공항시설도 1952년 개관이래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랭군 공항에는 이번 KAL기 실종사고 항로를 보조해줄 레이다 항공보안시설도 갖추고 있지못하여 실종된 위치를 찾을 수없었”다(2016090023, 150쪽). 버마의 조사 능력에 한계가 많았다고 일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교통부는 버마 조사위원회와 두 차례 회의를 가졌다. 첫째 회의는 1988년 1월 21일 버마 랑군 국제공항에서 있었는데, 한국은 버마 당국이 요청한 자료, 교통부가 쓴 영문 조사보고서 등을 버마에 건넸다(143쪽). 교통부 보고서는 비행기가 폭발물로(by some explosives) 파괴되었다고 추정된다는 결론을 담고 있었다(2016070060, 18쪽). 

아울러 교통부는 정부의 공식 수사발표가 보도된 1988년 1월 16일치 영자신문(Korea times, Korea herald)도 함께 건넸다. 다시 말해 한국은 정부의 공식 발표를 버마가 사실상 받아주기를 바랐다. 
 
이는 다음 날에 있었던 모임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버마 주재 한국대사관저에서 열린 회의에서 한국은 ‘안기부’의 수사보고서를 버마에 건넨다. 이 회의는 버마 주재 대사가 “버마 조사위원들에게 오찬을 베풀어... 감사인사와 함께 앞으로 ICAO에 보고될 최종 보고서 작성에 아측입장을 설명하”는 자리였다(2016090023, 144쪽). 이 오찬은 앞서 언급된 3월 “만찬”과는 별도로 마련됐다. 

아무튼 교통부에 따르면 1월의 두 차례 회의 결과, 버마는 한국의 “사고조사 보고서 및 수사결과 보고서를 토대로 곧 국제민간항공기구에 보고될 정식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146쪽). 버마가 일주일 전인 1월 15일에 발표된 안기부 결과를 자신의 보고서에 담겠다고 한 것이다. 

   
▲ 버마 조사보고서는 한국의 공식 입장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한국의 무리한 개입
 
한국이 공식 수사발표를 한 뒤에 이루어진 회의,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했던 조사 역량. 결국 버마로서는 별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더라도 한국이 독립적이었어야 할 버마 조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위에서 살펴봤듯, 한국은 버마 보고서의 ‘작성’은 물론 ‘제출’ 과정에도 무리하게 개입했다. 
 
나아가 한국은 버마를 특별한 동맹으로 여기고 이 관계를 북쪽과 관련해 계속 활용하려 했다. 다시 교통부의 KAL기 출장보고서다. “이나라는... 지난 [1983년] 아웅산 사건과 이번의 KAL기 폭파사건을 계기로 아국과는 오히려 더욱 돈독한 관계정립의 계기가 되었다고 보며 국제사회에서 북한과 같은 공산테러국가에 대한 응징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게 될것으로 사료됨”(150쪽).

 

 

박강성주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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