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자유 
- 엘뤼아르 

나의 대학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그리고 눈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읽은 책장 페이지마다 
하얀 책장 공백마다 
돌과 피와 종이와 잿가루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정글에도 사막에도 
새둥지 위에 개나리 위에 
내 어린 때의 메아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밤의 신비스러움 위에 
낮의 하얀 빵조각 위에 
약혼하였던 시절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하늘빛 헝겊 조각 위에 
태양이 이끼 낀 연못 위에 
달빛이 흐르는 호수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황금빛 조각 위에 
병사의 총칼 위에 
임금의 왕관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들판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늘진 풍차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먼동 트는 새벽 입김에 
바다 위에 모든 배 위에 
미친 듯 불 뿜는 산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뭉게구름의 하얀 거품 위에 
소나기의 땀방울 위에 
굵다란 김빠진 빗방울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빛나는 모든 형태 위에 
모든 빛깔의 종이 위에 
물리적인 진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잠이 깬 오솔길 위에 
환히 뻗은 행길 위에 
넘쳐 있는 광장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불 켜진 등불 위에 
불 꺼진 등불 위에 
모인 내 집 식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돌로 쪼갠 과일 위에 
텅 빈 조개껍질 내 침대 위에 
내 방과 거울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귀엽게 까부는 강아지 위에 
똑 곧추선 그 양쪽 귀 위에 
어설픈 그 두 다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조화된 모든 육체들 위에 
내 모든 친구의 이마 위에 
악수를 청하는 모든 손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놀라움의 창문 위에 
기다리는 입술 위에 
침묵보다 훨씬 높은 곳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나의 피신처 위에 
무너진 나의 등대들 위에 
권태를 주는 담벽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욕망이 없는 곧은 마음씨 위에 
발가벗은 이 고독 위에 
죽음의 이 행진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그리고 한마디 말의 위력으로 
내 인생을 다시금 마련한다. 
너를 알기 위해 나는 태어났고 
너를 이름 짓기 위해 있느니 
오 ‘자유’여!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적 거리두기로 바뀌며 내 인문학 강의도 개강을 했다. 나도 수강생들도 축제를 하는 듯 했다. 공부가 이리도 즐거운 건, ‘살아 있음의 환희(조셉 켐벨)’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코로나 19가 집단적으로 발생하며 개강하려던 몇 개의 강의는 다시 휴강에 들어갔다. 이럴 때는 슬프고 분노가 일어난다. 

 인문학 강의가 있기까지 인류는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을까.  
 
 ‘나의 대학 노트 위에/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모래 위에 그리고 눈 위에/나는 네 이름을 쓴다.//-//그리고 한마디 말의 위력으로/내 인생을 다시금 마련한다./너를 알기 위해 나는 태어났고/너를 이름짓기 위해 있느니/오 '자유'여!’ 

 자유에 대한 간절함이 인문학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인문학의 꿀과 향기를 마음껏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동학농민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날 때, 우리나라에 콜레라가 창궐했다고 한다.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은 콜레라를 관찰한 결과 동학의 콜레라 방역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백성들이 동학에 들어가면 콜레라에 걸리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콜레라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에 대해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생활 방역을 통해 극복해 낸 해월의 지혜가 샛별처럼 빛난다. 

 지금은 어떤가? 코로나 19가 대유행하는 지금, 우리는 그때만큼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는가? 

 걸핏하면 도서관, 공원을 폐쇄한다. (생활 방역 수칙만 잘 지키면) 도서관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얼마나 되는가! 더구나 야외인 공원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릴 수 있나! 
 
 클럽 등 온갖 유흥업소들은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결국엔 클럽에 간 사람들의 방종이 현 상황을 만든 것처럼 그들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지금은 유흥업소들을 일시적으로 폐쇄했다고 하지만, 저녁에 주점들에 가보면 빈자리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큰 소리로 떠드는 술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코로나 19가 대규모로 발생할 때마다 학교와 도서관은 문을 닫고, 온갖 강의들이 폐강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된다.

 공부는 삶과 더불어 하는 것이다. 동학 운동과 콜레라 방역은 병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동학교도들은 서서히 하늘이 되어갔다. 

 공공시설부터 폐쇄하면 사람들은 공포심을 갖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여행을 자제하고 주점과 식당에도 적게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생존의 압박을 느끼며 잃어버린 일상을 그리워하고, 치료제와 백신이 나와 빨리 코로나 19가 종식되기만을 바라게 될 것이다.   

 삶 속에서 방역을 하는 힘은 서서히 잃어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약해지고 어느 강력한 지도자가 나와 (개인 정보가 마구 공개되더라도) 자신들을 구원해 주길 바라게 될 것이다. 파시즘은 이렇게 도래한다.

 이번 총선에서 왜 국민들은 집권당을 거대한 여당으로 만들어주었을까? 국민들은 촛불 혁명으로 들어선 현 민주 정부에게 코로나 19의 방역의 전권을 맡긴 것이다.

 그런데 왜? 촛불의 정신과 다른 방역의 길로 가는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공부하며 (사람들이 민주시민으로 거듭나며) 코로나 19를 극복하는 길은 너무나 많지 않은가?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적 거리두기로 바뀌며 공부가 우선 순위였나? 유흥업소가 우선 순위였나?
  
 물류 센터 같은 열악한 상황들을 진정 몰랐는가! 알았다면 도대체 대책은 무엇이었나!  

 기독교 소모임, 탁구장, 다단계 업체들은 왜 제대로 규제하지 않는가! 구상권 청구 같은 말만 난무하고 제대로 집행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공권력은 공정하고도 엄격하게 집행되어야 하는데, 그래야 정의로운 법정신을 갖게 되는데, 얼마나 법집행이 자의적인가! 우리는 어떤 시민의식을 갖게 될까? 

 다른 나라들처럼 코로나 19로 떼죽음은 당하지 않으니 우리의 방역이 모범이라고 하지만, 지금 같은 방역 속에서 가장 중요한 우리의 심성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이젠 클럽-노래방 갈 때 QR코드 찍어야..교회-영화관도 자율 추진’ 이런 기사들이 뜨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지할 것이다. ‘우선 살고 보자!’의 심성으로 바뀌고 있으니까. 이게 목적인가? 민주시민과 방역을 병행하는 수많은 방법들을 왜 이리도 쉽게 포기하려는가!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은 코로나 19 이후의 정의로운 민주복지 사회를 강력히 희망했다. 현 정부는 이 하늘의 뜻을 진정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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