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우 / 언론사회학 박사

 

국보법 정상화에 대한 연재를 시작하며 

한반도 비핵화, 코로나 바리러스의 세계 강타와 함께 한반도 지각 변동이 진행되는 시점에서 국내의 진정한 민주주의 발전과 남북 평화통일 운동을 가로막는 걸림돌의 하나가 국가보안법이다. 국보법이 70여 년 동안 지배하면서 평화통일에 대한 역사적 당위성을 외면하거나 평화통일의 방법론 모색에서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의 배제가 당연시 되고 있다. 또한 공안기구의 밥줄이 국보법이라는 점, 종북몰이와 같은 파괴적 논리가 정상적인 정치, 사회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에서 국보법 개폐가 시급하다. 

21대 총선에서 유권자의 3/5 지지를 받은 문재인 정부는 향후 1년 안에 개혁, 적폐청산의 작업을 강행해야 한다. 현 정부가 미국의 주한미군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에 대해 정부가 강력히 대처하고 5.24 대북제재 조치 실효성 상실을 발표하는 것 등은 평가할 만하다. 정부가 좀 더 대미 협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시민사회, 학계, 언론, 정치권은 한국의 군사주권과 국민의 대북정책 적극 동참권리를 가로막는 구조적 적폐 청산에 노력해야 할 때다. 

세계인권선언에 반하는 국보법이 지배해 온 지난 70 년 동안 양심과 언론 자유, 민주주의는 처참하게 유린돼왔다. 국보법은 이 사회에 진보의 황무지 상태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이다. 진보는 상상의 자유 속에서 그 세력이 확장될 수 있는데 이 사회에서 민족의 절반이면서 통일의 동반자인 북한에 대해서 적대적인 관계나 수혜적인 관계만이 주로 허용될 뿐이다. 북한을 수평적인 관계에서 장단점을 평가하는 대상이 아닌 존재로 제한하는 국보법은 북한이 포함된 미래학이 이 사회에서 존재치 못하게 만들었다. 

국보법이 한미군사동맹에 대한 문제제기를 원천 봉쇄해왔고 한미군사동맹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하는 결정을 여러 차례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반도 평화 추진을 가로막고 있는 두 개의 쇠말뚝인 국보법과 한미동맹이다. 국보법과 한미동맹이 현재와 같이 존속되는 한 현 정부가 향후 남북 교류를 활성화한다 해도 그것은 대단히 제한적인, 그러면서 수구세력에 의해 언제든 깨질 유리그릇과 같은 그런 형국을 면키 어렵다.

수구세력의 종북몰이와 색깔 공세는 국보법에 두 발을 딛고 하는 것으로 일반 국민들을 겁박하고 수구세력을 규합하려는 의도가 깔린 악취 지독한 적폐중의 적폐다. 이승만이 깔아놓은, 사상의 자유조차 억압하고 남북평화통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악법 국보법이 21세기에서도 심각한 독기를 내뿜고 있는 것이다.  촛불혁명이 완성되려면 국보법이 철폐되어야 하고 국보법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민주화는 불안전한 미완의 그것에 그칠 것이다. 이 법이 제정될 당시 한국은 국민 소득은 100달러였지만 오늘날 세계에서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에 속한다. 이 법은 이제 폐기할 때가 된 것이다. 

국보법의 문제점을 그 제정 배경과 수십 년 동안 시행 과정에서 노출된 반민주, 반민족적 비극과, 그 개폐를 둘러싼 법리 논쟁 등을 통해 살피고자 한다. 또한 국보법에 의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국내의 보수와 진보의 개념과 종북몰이의 배경 등을 살피고 이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문제를 살폈다. 또한 국보법이 국제사회의 비판의 대상이 된 점과 강대국들이 국보법의 그늘 속에서 한반도의 현실과 미래에 부당하게 개입하려는 속셈을 펴고 있다는 점, 정전협정과 NLL과 사드 문제,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 등과 국보법의 관계 등도 점검코자 한다. 이 연재는 월 수 금, 매주 3회 연재된다. / 필자 주

 

4. 국보법 7조, 양심과 사상의 자유 침해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북한 핵 문제 등이 큰 변수가 되지 못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효과가 컸다고 보여 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수년간 대북 압박을 강화하면서도 겉으로는 평화적 방식, 대화를 강조하는 이중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트럼프는 대북군사 적 압박과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면서 입으로는 ‘김정은과 친구다. 그는 훌륭하다.’는 식의 표현을 앞세우고 있다. 국내 정치권에서는 국가보안법 등으로 고착된 고정관념에 의해 트럼프와 같은 말은 흉내도 내지 못한다.

물론 트럼프의 북한 지도자에 대한 언급은 입 발린 소리에 불과하고 궁극적으로는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방식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어쨌든 트럼프의 북한에 대한 이중전략으로 수구세력이 전개한 청와대와 여권의 대북정책에 대한 친북, 북한 퍼주기라는 공세의 약발이 총선국면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향후 미국 대선,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대응 등으로 한반도 위기 지수가 높아갈 가능성이 크고 그런 상황에 국보법을 이용해 집권 세력을 공격하려 시도하는 세력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세력은 비유하자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으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수구 세력은 해방이후 수십 년 동안 각종 선거 등에서 국보법을 악용해 부당 이득을 얻었던 경험을 기억하고 있어 국보법 폐지 논리 철저히 반대했고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21대 총선이후 이른바 진보세력을 자칭하는 일부 인사들도 ‘아직 시기가 아니다’며 국보법 폐지 주장에 딴전을 피거나 손사래를 치고 있어 과거 국보법 개폐 논의를 덮어버린 노무현 정권 시절은 행태가 재연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보법 폐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도했다가 중단했지만 우리 사회가 평화통일, 진정한 민주주의 발전의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법은 폐기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국보법이 미치는 부정적인 측면은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우선 모든 국민이 철들기 시작하면서 북한을 괴멸시켜야 할 대상으로 규정한 국보법의 테두리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교육받기 때문이다. 모든 간행물은 당연히 국보법의 테두리 안에서 만들어져 배포된다. 국내 언론은 매일 국보법에 걸리지 않도록 자기 검열을 지속하면서 뉴스정보를 생산, 보도하고 있다. 남한 주민은 국보법에 순치되거나 그 포로가 되어 국보법의 폐해를 의식치 못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남한은 국보법이라는 괴물이 지배하면서 사람들을 겁주고 벌주는 것이다.

국보법은 북한에 대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적대적으로 보려는 시각만을 허용하고 문제 삼지 않는다. 이 법은 북한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이나 같은 한민족으로써 역사에 기여하는 공동체의 반쪽이라든지, 남북이 공동으로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것과 같은 일에 관심을 갖거나 그것을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한다. 국보법은 7,4공동성명이나 6.15공동선언 등 남북이 합의한 것을 남한 국회에서 비준하는 것과 같은 조치를 취하지 못하게 만든다. 국보법은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격멸시키자는 것만을 강조하면서 어떤 큰 기준이나 원칙에 따른 분단 해소 등에 대한 생각을 멈추게 만든다. 상호 윈윈을 추구한다는 민족 공동체 논리를 불법 시 한다. 국보법은 적의 존재를 상상 속에서도 인정치 않기 때문에 적에 대한 전략 전술에 대한 도덕적 고려가 자리 잡지 못하게 한다.

국보법은 현실과 미래에서 남북한의 공존공영을 모색하는 것을 색안경을 끼고 범죄시하는 것은 물론 국내법과 제도에서도 유사한 시각과 제한이 일상화되도록 영향을 미친다. 남한의 법 체계를 보면 북한에 대한 상반된 내용을 담은 법체계로 혼란이 자심하지만 국보법 때문에 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개선 노력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모순된 현실을 방치하면서 법 감정에 심각한 혼란이 초래되고 그것이 결국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면서 평화 통일 노력을 외면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이 제기한 헌법 등에서 발견되는 북한에 대한 혼란스런 기술은 아래와 같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는데 헌법 제4조 등에서는 평화적 통일에 관한 조항을 두고 있어, 이 이들 조항이 논리적으로 모순되는가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전개되어 왔다. 헌법 3조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로 되어 있다.

또한 헌법 제66조③은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로, 그리고 헌법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남북이 유엔에 가입되어 있는 것처럼 국제 사회에서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대법원 판결에서 북한은 반국가단체로 규정짓고 있다. 분단 시대가 장기화 되고, 국내외에서 겪게 되는 북한에 대한 개념차이로 인한 혼란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남북은 7,4공동성명이나 6.15공동선언 등을 통해 남북이 한반도의 공존 정치체제라는 사실을 대내외에 과시한 사실도 중요하다. 특히 일반 탈북자들이 국내에서 헌법 3, 4조 등의 적용을 받는다는 측면에서 탈북자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보아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상과 같은 법적 장치를 고려할 때 단순히 국가보안법 등에 의해 북한을 적대시 하는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문제로 더 이상 국제사회가 한반도를 비정상적인 시각에서 주시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국보법은 유엔의 대북 제재 등에 남한이 동참할 경우 정경 분리나, 인도주의 측면 고려와 같은 예외 사항을 외면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중국과 러시아 심지어 미국도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 시 북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제재는 추구하되 북한 주민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라는 점을 강조하고 일본도 피랍자 문제 계속 협의나 인도적 지원 지속 등 최소한의 대화 창구는 열어두는 방식을 택한다.

국가보안법은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는 모호하고 포괄적인 규정 등을 앞세워 북한의 모든 언행에 대해 거짓이거나 기만 또는 도발로 매도하면서 국내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에 대한 탄압의 주 무기로 악용되어왔다. 국보법은 특히 제7조로 인해 국가안보와는 무관하게 양심과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국가보안법 제7조, 소위 "찬양.고무" 조항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제19조, 언론· 출판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제21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제22조 등과 상충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수차례 개정을 거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국보법은 개인의 사상, 양심,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남북관계 보도에 있어서 북한을 항상 인류의 적으로 단죄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정보 보도 또는 그 접근권을 차단하고 있다. 그러나 수구세력은 국제적 수치인 국보법 존속을 주장하면서 그 폐지를 외치는 세력의 주장에 대해 색깔론으로 덧칠한 왜곡된 논리로 공격하고 ‘반국가적 사상’이라며 낙인찍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4년 낸 보고서 ‘국가보안법 적용상에서 나타난 인권실태’에 따르면 1961년부터 2002년까지 7778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거됐으며, 이들 중 90% 이상에게 제7조 찬양·고무죄가 적용됐다. 보고서는 국가보안법의 다른 조항들이 형법 등과 중복되는 데 반해 제7조는 다른 법에는 없는 조항으로 국가보안법의 ‘상징’이라고 지적했다(서울신문 2004년 8월25일).

보고서는 국가보안법의 적용 절차에 있어서도 고문 등 가혹행위, 불법 체포, 피의사실 공표 등 인권침해가 자행된 실태를 지적하면서 “국가보안법은 국가 안보가 아닌 정권안보를 위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국가보안법이 반인륜적으로 남용된 사건으로는 대법원의 사형선고 20시간 만에 형이 집행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 이승만 정권 시절 사법살인을 당한 죽산 조봉암 선생 사건, 검사가 직접 고문을 지시한 ‘깃발사건’, 검사와 고문 수사관들이 공조, 협박한 ‘송씨 일가 간첩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헌법재판소와 대검찰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49년 처음으로 사형을 집행한 이래 사형이 마지막으로 집행된 1997년 12월30일까지 모두 920명의 사형이 집행됐으며 48년 이후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254명의 사형이 집행됐다. 간첩죄로 사형된 사람은 43명이었다. 남북 분단과 좌·우 이념대결 속에 국가 살인이 심각했던 것으로 풀이된다(노컷뉴스 2010년 2월25일). 1986년 전두환 정권 때 국가보안법 사범이 마지막으로 사형대에 오른 후에는 사형에 처해진 사상·정치범은 없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변란을 도모했다는 이유로 사법 살인을 당했다가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권고로 재심을 거쳐 얼마 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국가보안법은 수 십 년 동안 수많은 ‘빨갱이’나 간첩을 양산했는데 이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불법구금, 고문 등으로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소지가 많은 법으로 그 집행과정에서 남용되어 무고한 사람들의 인권을 짓밟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1~2014년까지 4년 동안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중 대부분이 무죄나 집행유예를 받았으며, 실형을 선고 받은 경우는 16.8%에 불과, 5명 중 1명에도 못 미쳤다.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17%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 다른 통계도 있다. 대법원은 2007년, 지난 1972~87년 동안 발생한 시국·공안사건 6천여 건을 분석해 재심 예상 사건 224건을 분류함으로써 유신정권과 전두환 정권시절 발생한 대부분의 시국·공안 사건은 사실상 재심이 필요하다고 인정했다(사람일보 2007년 2월12일).

대법원이 재심 예상 사건으로 분류한 224건 중 가장 많은 것은 간첩사건(141건, 62.9%)과 반국가단체 구성 사건(13건, 5.8%)이며, 긴급조치 위반사건 26건, 민주화운동 12건, 기타 33건 등이었다. 특히 간첩사건 중에는 그동안 인권단체들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해 온 대부분 사건이 해당된다. 재심 예상 간첩사건 141건에는 조총련 관련 52건, 남파간첩 33건, 납북어부 18건, 재일교포 16건, 기타 22건 등이 포함된다.

국가보안법 적용상에서 나타난 인권실태는 국가인권위가 지난 2003년 발표한 연구용역보고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힌 데서 그 참혹함이 드러난다 - “일반시민들이 술김에 격분으로 또는 농담 삼아 토로한 언동조차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으로 단죄되었는데, 바로 이처럼 과도하게 남용되는 것을 빗댄 표현이 ‘막걸리 반공법’ 또는 ‘막걸리 국가보안법’이라는 별칭이었다.”

일반시민들의 사소한 불만마저 정권 비판으로 둔갑했다. 이런 비판은 북한이 남한 정권을 비판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구조를 갖게 되기 때문에 친북반미로 해석되고, 이는 곧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이 쳐놓은 그물에 딱 걸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원순 시장은 변호사 시절 펴낸 <국가보안법 연구>를 통해 “가장 초보적이고 원천적인 언론자유의 유린”이라며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에 비유했다. ‘마녀사냥’은 유럽에서 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선량하고 무고한 부녀자를 종교 재판에 부쳐 살해한 만행으로 이는 부패한 교회와 국가, 성직자와 귀족들의 정치적 무능과 부도덕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였다. 박 변호사는 “보안법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틀로서, 이 법이 지향하는 체제와 그 체제로 인해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의 보호막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한겨레 2004년 9월9일).

박정희, 전두환 등은 정권 위기 상황이 닥치면 이를 모면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앞세운 공안 사건을 터뜨렸다. 그 때마다 정보기관, 검찰 등의 고문 등으로 사건이 조작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이 드러나 2000년대 들어 재심을 통해 무죄로 판명이 나는 사건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재심을 통해 무죄로 결론난 대표적인 경우는 조봉암 선생을 비롯해 '민청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고 김근태 전 의원,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던 재일교포 강모(사망)씨 등 6명,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부림사건'으로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고모씨 등 5명, 지난 1984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4년을 선고받고 실제로 12년6개월의 옥살이를 한 납북어부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 김씨 등이다.

지난 수년간 국가보안법, 간첩 죄 등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가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경우가 100여 건을 넘는다. 한심한 것은 가짜 간첩 등을 만들어낸 공로로 정부로부터 훈포장을 받았던 국정원이나 검찰, 경찰의 담당 공무원들은 사건 조작에 대해 처벌 받기는커녕 해당 훈포장에 대한 취소 등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으로 간첩을 조작하는 등 인권을 유린하고, 민주화 요구를 탄압한 자들과 가짜 간첩을 만들어내어 반공 이데올로기 및 군사독재권력 유지 연장에 기여한 자들에 대한 서훈 박탈은 이명박·박근혜 기간 동안 지연되었다.

2017년 2월 발표된 ‘반(反)헌법행위자 열전 수록 집중검토 대상자 405명 명단’에 따르면 건국 이래 반공법, 국가보안법 사건 조작에 앞장서거나 심각한 반민주주의적 행태에 앞장서 훈포장을 받은 공직자들은 아래와 같다(브레이크뉴스 2017년 2월17일).

인혁당 사건 등 1960, 70년대 중앙정보부 고문수사의 대명사 이용택 중정 6국장은 국가안전보장 유공자에게 주는 보국훈장만 3개이고, 1980년대 김근태, 심진구 고문 및 중부지역당 등 조작사건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정형근은 4개다. 또한 6.8부정선거, 삼선개헌의 정일권은 무려 9개, 북풍, 안풍, 총풍 등 헌정을 유린한 권영해는 5개, 1950년대 초 5개 분야 국민학살에 모두 간여한 송요찬은 국민훈장 중 가장 높은 무궁화장 등 6개를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

1965년 치안국 박영수, 정석모 등 32명은 “한일회담반대라는 불법시위와 난동사태 예방진압 임무수행을 위해 자기생명을 무릅쓰고 공안질서유지에 공헌했다”는 이유로 3등 근무공로훈장 등을, 1971년 보안사 김재규, 김교련 이학봉 등 17명은 “1971년 양대 선거를 계기로 4.19와 같은 민중봉기를 획책한 간첩단 4개망을 적발했다”는 이유로 보국훈장 등을 수여받았다.

1974년 중정 안경상 등 5명은 울릉도 간첩단 검거를 이유로, 1975년 보안사 이학봉 등 17명은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검거를 이유로 보국훈장 등이 수여되었다. 1980년대에도 매년 몇 차례씩 보안사 소속 장병화 등 4명, 백남은 등 10명, 안기부 이종원 등 7명이 정권유지 연장을 위해 이런 식으로 훈장이 수여되었다.

인권을 유린하고 민주화를 탄압하며 간첩을 조작한 사람들에게 수여된 훈포장 박탈과 같은 정당한 조치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또한 과거 인권과 헌법을 유린한 사건들이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 국가 손해배상판결로 이어지고 그 손해배상을 국가가 부담하는데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정부가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어 문제다. 범죄자들이 저지른 범죄의 손해배상을 당사자들이 부담하지 않고 국민이 낸 세금으로 부담하게 하는 비정상은 시급히 시정되어야 한다.

파면, 구속된 박근혜 정권 시절에도 간첩 조작사건이 발생한 것은 인권유린 행위에 대한 배상 등의 법적 장치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이라면서 인권 유린, 명예훼손 등에 대한 배상, 보상 제도는 1960~70년대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권유린과 명예훼손 등이 정부기관이나 수구보수단체 등에 의해 자행되는 일이 빈번하다. 한국 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이런 후진적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생명과 인권 등에 대해 서구의 경우와 같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공직자가 범행을 저질렀을 때 국가가 구상권을 행사해 해당 공직자가 경제적 부담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래야 사법 살인이나 종북, 친북 공세 등이 멈출 수 있다.

국보법은 이승만이 1948년 만든 이래 대소 선거를 지배하면서 수구세력에게 부당이득을 안겨주고 있다. 수구세력은 선거 국면에서 상대를 반사회적 존재로 격하시키거나 공동의 적으로 몰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즉 국보법으로 공격하거나 국보법에 뿌리를 둔 종북이념 공세를 퍼붓는 것이다. 수구 보수 세력은 역대 선거에서 북풍을 야기하거나 북한 변수를 끌어들여 야당에 대해 종북 공세를 벌였다. 그러나 너무 그것을 남용하면서 최근에는 그 약발이 약화된 감이 짙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선거철을 전후해 남북관계를 전쟁 일보 직전의 상태까지 악화시키거나 대북 적개심 등을 고조시킨 것은 종북공세가 어떤 효과가 있을까를 계산한 정치공학적 술책이었다. 21대 총선이 북한 변수가 크게 작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끝났지만 향후 한반도 정세가 위기 국면 등으로 치달을 경우 국보법에 의한 친북, 종북 논리가 판을 칠 가능성이 크고 수구세력은 그런 상황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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