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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셋째 이야기, 아름다운 황혼을 위하여(3)

기사승인 2020.05.23  10: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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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랑 연재소설> 노동자 신돌석씨의 하루 (28)

정해랑 /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연재를 다시 시작하며

58년 개띠 노동자 이야기를 다시 하려고 합니다. 잠시 쉰다는 것이 1년을 넘겨 버렸습니다. 그 동안 우리의 주인공 신돌석씨도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세상은 많이 변한 것 같은데 어찌 보면 완강하게 버티며 변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그보다도 변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소소한 일상을 통해 그려 보고자 합니다. 통일뉴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질책을 부탁드립니다. / 필자

 

고모와 현규는 같이 살다가 따로 살기를 몇 차례 하였다. 고모와 현규 처의 갈등이 갈라지게 한 큰 요인이었다. 이런 문제가 늘 그렇듯 쌍방 모두에게 문제가 있었다. 현주나 현철이는 자기 엄마가 성격은 좀 거칠지만 그래도 자기 엄마 같은 시어머니가 어디 있냐고 말했다. 현규는 자기 마누라 같은 며느리가 어디 있냐고 했다. 둘 다 맞는 말이면서 틀린 말이었다. 문제는 둘 다 물러서거나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이라는 데 있었다.

그러다가 현규가 먼저 외국으로 떠나고, 이어서 현규 처도 같이 떠났다. 10여 년 전 일이었다. 현철이 모시려고 했는데 고모가 완강히 거절해서 부근에서 살면서 들러보기만 했다고 한다. 그런데 7년 전인가 현규가 별안간 한국에 들어와서 다시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건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러면서 현철이더러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단다. 그렇게 몇 년을 부근에서 살면서 고모를 챙기는 듯하더니 어느 날엔가 사라졌다고 한다.

들어왔을 때 아내와 딸은 외국에 두고 혼자 왔었더란다. 그리고 현철의 추측에는 아마도 그때 고모를 꼬드겨서 집을 팔게 했을 것이라고 한다. 물론 현철이 생각이다. 아무튼 사라진 것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엔가 찾아가 보니 고모가 다쳐서 누워 있고, 현규는 종적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기가 막혔다. 그리고는 수술을 했고,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현철이 생각으로는 현규가 그때 이미 이혼한 상태가 아니었을까 여겨진다고 한다.

노인들이 혼자 살다가 넘어지고 한참 뒤에나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신돌석씨의 고교 동창 중 하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일주일 뒤에나 알았다. 냉장고에는 음식이 썩고 있었다고 한다. 그 친구는 평생 풀지 못할 한을 갖게 된 셈이었다. 어머니가 혼자 돌아가시고 한참 지날 때까지 찾아뵙지 못한 한이었다. 하지만 멀리 사는 아들이 수시로 혼자 사는 어머니를 찾아뵌다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찌됐든 신돌석씨 나이 부근의 사람들은 부모님 문제로 힘들어 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고령화 사회가 안겨준 짐이라고나 할까? 신돌석씨는 요즘 친구들과 만나면 화제는 대개 두 가지로 모아진다. 하나는 건강 문제고, 다른 하나는 부모님 봉양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건강 문제는 자기들 이야기이고, 부모님 봉양 문제 역시 미래의 자기들 이야기일 것이다. 고령 사회가 되다 보니 80은 물론 90이 넘은 부모님이 많이 살아계신다. 사는 방식도 가지가지다.

이제 부모님이 80 전후로 아직 건강하게 계시는 친구도 있다. 앞으로 일을 걱정하지만 일단 강 건너 불과 같은 이야기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친구들도 있다. 일단 한숨 놓은 듯한 태도이다. 신돌석씨가 그렇다. 문제는 80대 후반부터 90대인 부모님들이 계신 친구들이다. 거의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거동이 불편하고, 치매에 걸리셨다. 그러다 보니 요양원에 모실 수밖에 없다. 신돌석씨 나이 또래의 자식들은 누구나 부모님을 요양원에 가시게 할 때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때로는 남은 가족들 사이의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신돌석씨의 어릴 적 친구 중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 아내와 이혼한 뒤 어머니와 살았는데, 어머니가 큰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거의 거동을 못하시게 되었다. 누군가 옆에 붙어 있어야 했다. 처음 한동안은 옆에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침 방문간병인제도를 알아서 간병인을 오게 하였다. 정부 지원이 6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가서 돈을 벌어야 했다. 제대로 된 일자리가 생길 리가 만무하였다.

돈벌이도 그렇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만날 수가 없었다. 어쩌다 한 번 친구들과 만날 때면 간병인에게 돈을 더 주어서 시간을 연장해 달라고 하였다. 정말 견디기 힘든 하루하루였다. 주위 사람들이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라고 하였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 친구의 어머니는 인지능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단지 몸만 거동하지 못하였다. 그런 어머니를 원하지 않는데 요양원에 보내도 되는 것인가? 고민은 깊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먼저 요양원에 가겠다고 하였다. 아들의 고통을 보다 못해 그런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친구가 완강히 거부했다. 자기가 충분히 모실 수 있으니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기를 또 몇 달. 그가 조금 늦게 들어왔는데 어머니가 혼자 움직이려고 하다가 넘어졌다. 집에 가서 바닥에서 기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는 119를 불러서 응급실로 갔다.

결국 어머니는 요양병원으로 갔다. 여기까지는 고모와 비슷하였다. 문제는 다음부터 일어났다. 어머니가 곡기를 끊으셨다. 콧줄로 넣는 것도 완강히 거부하였다. 아마도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 곡기를 끊고 가야겠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친구는 자기가 죄인이라면서 무척 괴로워하였다. 그러다가 링겔 등을 맞으면서 어느 정도는 회복된 듯하다. 친구는 자기야말로 고려장을 한 사람 아니냐고 자조 섞인 말을 하곤 한다.

“형이야 일찍 돌아가셨으니 모르시겠지만 사실 치매 걸리신 부모님을 집에서 모시는 것은 요즘 세태 같으면 학대라고 봐야 돼요. 고려장 같지만 차라리 요양원에 계시게 하는 게 낫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현철이가 꺼낸 말이었다. 학대라. 부모님 두 분 다 일찍 돌아가신 신돌석씨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어도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다고 보아야 한다. 돌아가실 때의 그 장면이 지금까지도 신돌석씨에게는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 상황이 길어졌다면 어머니를 학대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자신이 없다.

“엄마가 치매이신 게 어쩌면 다행인지도 몰라요. 요양원에서 치매 걸리지 않은 사람은 견디기가 무척 힘들 거예요.”

치매가 오히려 다행이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나. 언젠가 두 달 동안 암 투병하다 돌아가신 어르신 장례식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그 분 친구들이 둘러앉아 말씀을 나누는데 어떤 분이 암 걸리는 것이 좋다고 해서 다들 어리둥절했었다. 그 분 말씀은 심혈관계 질병이나 치매 등에 걸려서 후손들 괴롭게 하느니 암 걸려서 빨리 세상 떠나는 게 낫다는 이야기였다. 그 분들 연세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삽화-백소(白笑)]

요즘 세태의 특징 중 하나는 노인이 노인을 봉양한다는 것이다. 신돌석씨가 공장에서 알게 된 사람 하나는 70이 넘었는데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어머니가 일찍 과부가 되고 수절하면서 자식을 키워 왔는데 그런 어머니를 모시지 않을 수 없었다. 부인도 70이 넘더니 힘들다고 하면서 어머니 속옷 빨래 등을 모두 그 사람에게 맡겼다. 어머니가 100세 다 되어 돌아가셨는데 그리고 한 달 만에 이 사람도 따라서 세상을 떴다. 어머니 모시다 노년을 힘겹게 살다 돌아가셨다면서 장례식장에서 그 부인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가 하면 늙어도, 치매에 걸려도, 거동을 못 해도 빈부의 차이는 여전하다. 늙으면 돈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하는데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늙을수록 돈이 있어야 대접받는다고 저기 벽에 ‘노년의 지혜’라고 떡 붙여 놓은 것일까? 본인이 돈을 쓰거나 할 수는 없지만 돈 때문에 대접받고, 돈이 없는 사람은 온갖 구박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치매에 걸리면 그것조차 모르니 차라리 낫다고 현철이는 말하는 것일까?

신돌석씨에게는 사돈뻘이 되는 외삼촌의 처남이 있다. 장군 출신이다. 우리나라 장군들이란 사람이 으레 그렇듯 상당히 부유하게 살았다. 그러다가 마누라가 80대에 치매에 걸렸다. 이 사람은 마누라 돌보다가 넘어져서 거동하기가 힘들어졌다. 자식들이 부모를 양로원에 넣었는데, 완전히 호텔 같은 곳이란다. 외숙모 장례식에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외사촌들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신돌석씨야 그런 곳을 알지도 못하지만 동창들 모임에서 한두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치매 걸린 사람들을 요양원에서 막 대하지 않을까? 몇 년 전에 어느 요양병원에서는 화재가 났는데 묶어 놨더라고 하잖아. 아까 나가겠다고 한 그 분도 사실 요양원이 과잉 대응을 하는지도 모르잖아. 가족들 오지 않을 때나 밤 같은 때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 그에 대응하기도 힘들고, 기억해서 말도 잘 못할 테니까...”

신돌석씨는 이런 말을 하다가 현철이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괜한 말을 꺼냈다고 후회했다. 그 이야기는 고모도 요양원에서 학대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될 수 있기 때문에 상상만 해도 아들로서는 기분이 안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현철이가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형은 노동운동하셨다는 분이 어찌 그렇게 생각하세요?”

갑자기 여기서 노동운동이 왜 나오나? 신돌석씨는 어리둥절해졌다. 현철이가 소주를 입에 털어 넣더니 말을 이어갔다.

“힘들고 거칠게 살았어도 저 사람들 사람 그렇게 막하지 않아요. 그런 심성이면 저런 일 못해요.”

하긴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무슨 말인지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 진석이 엄마가 하기 시작하면서 알게 됐어요.”

진석이는 현철의 아들이었다. 그랬구나. 고종사촌인데도 자주 보지 않으니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현철 처가 고모를 일으킬 때 익숙하게 하는 것이 고모를 자주 문병 와서 그런 줄 알았더니 요양보호사를 하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었다.

“봉급은 최저임금을 간신히 주어요. 24시간 일하고 이틀 쉬는데 공휴일이나 명절 연휴도 없어요. 방문 요양사를 하는 사람들은 월 100만 원 정도를 받아요. 그것도 일이 계속된다는 것 아래서 그렇죠. 다양한 직종을 가졌던 사람들, 전업주부였던 사람들이 일하는데 최소한 50은 넘고 60이 넘은 사람까지 일해요. 그런데 인원을 항상 적게 채용해서 노동강도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요양보호사 궐기대회를 한다고 하는 현수막이 붙은 것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데도 1년이 되면 으레 잘라 버려요. 퇴직금 안 주려고 하는 거지요. 부당해고 아니냐고요? 얼마든지 그럴 구실을 만들고, 으레 당연한 걸로 알고 당하지요.”

그런 현실을 개선하려고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워 나가는 것 같은데 신돌석씨로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돈도 돈이지만 근로조건도 문제이고, 사회적 인식도 문제이지요. 남자들이란 건 할 수 없는 인간들인지, 90이 넘고 거동도 제대로 못하는데도 요양보호사들한테 성추행을 한대요. 방문요양사 중에는 그것 때문에 그만두는 사람도 적지 않아요. 게다가 운영자가 자기 집안 일까지 가져 와서 시키는 경우도 허다하다지요.”

현철이는 처가 겪은 일이라서 그런지 분개하면서 말을 줄줄 이어갔다.

“국회의원이라는 게 요양보호사가 가장 하찮은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학교급식노동자를 천대하는 발언을 하면서 간호조무사보다 못하고, 요양보호사와 같은 급이라고... 어이가 없어서. 내 생각에는 역대급 망언인데 사람들은 이젠 잊은 것 같더라구요. 아니 그런 걸 당장 잡아끌어내지 못해서야 말이 되나요. 그 인간 텔레비전에만 나오면 부글부글 끓는데 그 많은 학교급식노동자,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들과 그 가족들은 밥이 그냥 넘어가나 보죠. 이번 선거에서 떨어뜨려서 그나마 사람들 자존심이 살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현철이의 일장 연설을 들으면서 신돌석씨는 부끄러움에 몸 두기가 어려워졌다. 자꾸 죄없는 술잔만 들이켰다.

“형, 그래도 난 형이라면 내 말을 이해하리라고 생각해요. 다른 데 가서 이야기하면요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냐는 식이에요. 어쨌든 내 마누라가 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남을 위해 산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없으면 그 일 못 해요. 그 냄새 나는 곳에서, 온갖 더러운 것 다 만져 가면서 누가 하겠어요? 그런데 대우는 가장 밑바닥 대우를 받잖아요? 이거 바뀌어야 하지 않아요?”

그렇다. 현철이 말이 옳다. 언젠가 강의 들을 때 강사가 했던 마지막 말이 생각난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삶답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말이었다. 러시아의 유명한 소설가가 했다는 말이었다. 그때 강사는 대학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파업의 정당성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때는 바로 받아들였는데 왜 요양보호사 문제에서는 전혀 연결을 시키지 못했을까?

둘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소주가 다섯 병이나 비워진 상태였다. 현철이가 세 병, 신돌석씨가 두 병 정도 마신 것 같았다. 신돌석씨가 계산하려고 하니 현철이가 밀치면서 한사코 자기가 내겠다고 했다. 도저히 말릴 기세가 아니었다. 현철이에게 계산을 맡기고 먼저 밖으로 나왔다.

아침까지도 빗발이 내릴 듯한데 남쪽 지방만 비가 내린다던 일기예보가 맞아서 하늘이 맑았다. 해가 지면서 만들어내는 노을이 벌겋게 번져 있었다. 맑은 날씨의 황혼 무렵은 아름답다. 인생도 황혼이 아름다워야 하는데, 결국 그것도 사회가 해결할 문제이다. 그리고 그것 역시 노동이 해방되어 가는 과정과 밀접하다는 것을 신돌석씨는 오늘 현철이와 대화를 통해 깨달았다. 어른에 대한 예의 차원만이 아니라도 고모를 자주 찾아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요양보호사노동조합에 대해 공부하고 지지 지원을 아끼지 않으리라.

계산을 마치고 나온 현철의 얼굴이 불콰하였다. 함께 전철역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 올 때보다는 가볍다는 것을 느꼈다.

 

필자 정해랑(鄭海郞)

서울에서 태어나 여의도 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노동정책연구소 정책실장, 경희총민주동문회 회장, 이수병선생기념사업회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재생의 담론 21세기 민족주의>(2010년, 공저), <공주와 도둑들>(2017) 등이 있다

 

 

정해랑 jhr137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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