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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전 지도부에서 중간에 포기한 이 하나도 없었다”

기사승인 2020.05.18  19: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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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관기> 5.18광주민주화운동 제40주년을 맞아 광주 순례를 마치고

이인숙 / 연세민주동문회 부회장

 

   
▲ 옛 전남도청 전경. 도청 앞에 분수대가 있다. [사진제공-연세민주동문회]

광주 번개를 공고하고 열흘 정도 아침부터 확진자 수 체크하듯 16일 광주 일기예보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번개일 열흘 전 광주 날씨는 맑음 예보였는데 일주일 전부터는 계속 오전 비, 오후 흐림 예보여서 걱정이 좀 됐었지요. 그러다가 바로 전날 일기가 바뀌더니 오전 흐림, 오후 갬으로 돌아섰습니다. 개표방송 뒤집기에는 비길 바가 아니겠지만 한시름 놓으며 16일 아침을 맞았지요. (이 와중에 한 분께선 “우산을 가져가야 할까요?”라고 공개적인 질문을 던져서 우리 번개를 초등학교 현장체험으로 잠시 둔갑시키는 회춘 신공을 발휘하기도 하셨습니다. 한 명 아니고 한 분이요!)

다들 시간을 잘 지키셔서(고속버스터미널역에서 5분 늦는다고 공지하신 한 분도 계셨는데, 그냥 조용히 오셨으면 될 일을 굳이 단톡방에 공지하셔서 지각의 증거를 남기고 마셨네요. 부슬부슬한 날씨 속에 광주로 가뿐히 출발했습니다.

고속도로에 오르니 여기는 바로 간식의 만찬장이었습니다. 성우가 무겁게 배달한 대대손손 연민동 아침 메뉴 연희김밥에 정희가 깨끗이 씻어 담아온 과일, 거기다 동행한 통일뉴스 세토(세 번째 토요일의 줄임말입니다) 산책팀에서 마련한 맛있는 알록달록 떡까지. 미정 언니가 남편분과 열심히 포장했다는 과자 초콜릿 젤리 모듬봉지는 화룡점정을 찍고요. 차에서 주무신 분들은 아마 식곤증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 국립5.18민주묘지 입구 ‘민주의 문’. [사진제공-연세민주동문회]

버스는 달리고 기다가 달려서 약속시간보다 40분 늦게 5.18민주묘역에 도착했습니다. ‘민주의 문’ 앞에서 오늘 안내를 맡으신 김상집 선생님과 거창에서 어렵게 오신 이산 님과 합류했지요. 윤평호 형이 오랜만이야 웃으며 기다리고 계셨고요. 이틀 전이어선지 묘역은 한산해서 기다리지 않고 참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공식 참배를 하겠냐고 묘역 안내자 분이 물으셔서 네~했더니 단체명과 대표자 이름을 적으라네요. 제가 그 타이밍에 평생을 음지에서만 헌신해오신 우리 한민호 형을 양지로 이끌어내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참배의식에 한 걸음 앞장서 순례단을 이끌고 공식적으로 호명까지 되는 뜻밖의 순간을 만들어 드렸지요.

   
▲ 연세민주동문회 광주순례단 망월동 참배. [사진제공-연세민주동문회]
   
통일뉴스 세토 산책 모임 망월동 참배. [사진제공-연세민주동문회]

저는 함께하지 않고 민주의 문 앞에서 김순흥, 김진만 선배님들을 기다렸는데 만나자마자,

놀부 김순흥 선배 : 아따 먼저 안가고 우리를 기다렸는감?

저 : 아니 뭐 저 그냥 인사드리려고요.

놀부 김순흥 선배 : 보고잡아 여로 먼저 나왔는감?

남도의 기분 좋은 인연이, 하루가 예감됩니다.

   
▲ 제40주년 5.18민중항쟁 기념배지. [사진제공-연세민주동문회]

통일뉴스 세토 산책팀도 참배를 마치고 묘역 윤상원 열사 묘 앞에 모이자 김상집 선생께서 그날의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시민군이 무장과 항쟁을 결의한 내용과 여기 누워계신 분의 마지막, 함께 산화한 친구 분의 마지막 모습 등등. 광주의 의미와 분석이 아니라 우리를 40년 전 5월로 이동시키는 증언입니다.

김상집 선생은 광주에서 활동하신 76학번 선배로 마침 80년 1월에 군제대를 하셨답니다. 그래서 항쟁에서 시민군을 훈련시키는 일을 하셨고요. 항쟁과 살육의 현장을 뚫고 살아남은 고통과 부채와 사명감은 저의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겠네요. 설명하시는 내내 할 말이 너무 많아 길을 잃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직 알려지고 해결되지 못한 광주의 진실이 너무 많기 때문이겠지요. 선생님을 안내자로 광주를 돌아보아 감사했습니다.

   
▲ 1982년 영혼결혼식을 올린 윤상원, 박기순 열사의 묘.  [사진제공-연세민주동문회]
   
▲ 안내와 해설을 맡아주신,5.18 당시 시민군이셨던 김상집 선생. [사진제공-연세민주동문회]

신묘역을 한 바퀴 둘러보고 이한열, 노수석 열사께 인사하러 구묘역으로 접어들다가 거기서 뜻밖에도 그늘에 앉아계신 이한열 열사 어머니와 노수석 열사 아버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를 보면 항상 "여긴 뭣하러 왔어~ 어?" 하시지만 오늘은 왠지 특별나고 눈가가 붉어지시는 것 같습니다. "아휴 어머니, 그냥 왔어요." 저도 덩달아 눈이 붉어집니다.

정말 그낭 와서 그낭 우연히 뵙는데 왜 이리 짠한지요. 수석 아버님은 연민동 고맙다고 하십니다. 두 분 손을 잡아드린 것만으로도 광주에 잘 왔구나 생각이 들었지요. 어른들을 뵐 때마다 저는 조심스럽고 걱정이 되는데 앞서 모범처럼 진심을 보여드리는 영옥 언니(연민동 전임 회장)가 옆에 계셔서 항상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당연했고요.

   
▲ 왼쪽부터 우영옥 연민동 전임 회장, 노수석 열사 아버님, 이인숙 부회장. [사진제공-연세민주동문회]
   
▲ 이한열 열사 배은심 어머님(가운데)과 통일뉴스 세토 산책 회원들. [사진제공-연세민주동문회]
   
▲ 이한열 열사의 묘. [사진제공-연세민주동문회]
   
▲ 노수석 열사의 묘. [사진제공-연세민주동문회]

묘역 참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남도 시골 백반에 김진만 선배의 산소막걸리, 거창에서 이산 님이 가져오신 신원막걸리가 어우러진 소박하고 정이 넘치는 자리였습니다. 밥과 술과 동무가 있으니 예상했던 시간보다 길어진 것은 굳이 쓸 필요도 없겠지요.

점심 후 일정이 재미있었는데요. 원래는 광주공원에 들러 친일인사 단죄비를 보고 커피를 한 잔 하거나 산책한 후 오월횃불길을 함께 걸을 예정이었으나, 오전 시간이 늦어지니 아예 항쟁출발지인 전남대로 먼저 가서 교문 앞에서 그날의 증언을 들은 후 차로 시위대의 동선을 따라 광주 시내로 이동하기로 하였습니다. 참… 올해 코드는 아무래도 드라이브 쓰루인 것 같습니다.

전남대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압권인 넓은 교정이 있었으나 우리는 그 길을 걸어보지도 못한 채 교문 앞에서 40년 전 5월 17일 공수부대와 대치했다가 시내로 밀려들어온 항쟁의 현장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생생히 듣는 그날의 항쟁은 새롭고 울컥했지만 하루 종일 참 시간이 원수였지요. 선생님이 온몸으로 재현하는 전남대 앞 대치상황과 스크럼을 짠 학생대열을 새기며 다시 버스를 타고 그분들이 어깨 걸고 내달렸던 광주역과 시외버스 터미널을 지나 금남로를 살짝 비껴 광주천을 건너 광주공원에 도착했습니다.

가는 길에 광주학생운동 기념비를 지나쳤습니다. 김순흥 선배님 말로는, 광주 중고등학생들이 수업 땡땡이치고 이 비 옆에서 모여 놀고 다녔다고. 여기를 거치며 오래 전 학생들의 항일 역사에 알게 모르게 젖으며 4.19도 5월도 나서게 되었다 하십니다. 이 또한 온전히 광주를 만들었던 한 축이었겠지요.

   
▲ 광주공원 안에 있는 단죄비. [사진제공-연세민주동문회]

광주공원은 일제침략기 시절 자리를 차지하던 신사를 허물고 6.25, 4.19 등 기념비를 세워 조성한 도시 시민공원입니다. 공원을 만들며 시내에 흩어져 있던 많은 송덕비를 한곳에 모아 비군을 조성했는데, 그 중 구한말 친일인사 송덕비를 가려내 거꾸러뜨리고 바로 앞에 죄행을 밝힌 동판을 세워놓은 이름하여 ‘단죄비’가 세 곳 있습니다.

비 앞에서 행사를 주관하셨던 김순흥 선배님으로부터 설명을 들으며 아~ 광주구나 숙연해졌습니다. 공원에서 서둘러 다시 도심 현장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습니다. 드라이브 쓰루의 위력이란! 워낙은 휴식과 커피와 산책을 생각한 일정이었는데 돌아보니 야무지다 못해 암팡진 환상이었네요.

도심에서는 먼저 오월미술관에 들러 오월특별전을 감상했습니다. 거리 장면과 총격 현장, 쓰러진 동지를 안고 절망하는 시민군 등 무언으로 전하는 오월이 또 있었습니다. 김상집 선생께서 그리신 항쟁지도부의 회의 장면 역사화도 접했는데, 분수대 앞 인파의 요구를 수렴해 무장항쟁을 결의하고 지도부를 재편하는 장면이라는 설명에 그림 속 지도부 한 분 한 분의 표정이 생생히 전달되더군요.

   
▲ 항쟁지도부의 회의 장면, 기록화, 김상집.  [사진제공-연세민주동문회]
   
▲ 윤상원 열사 동상.  [사진제공-연세민주동문회]

그리고 걸어서 드디어 시계탑과 분수대가 있는 도청 앞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여기지요. 우리 모두가 서보리라 다짐했던 그날 함성이 메아리치는 이곳에 왔습니다. 분수대 광장은 18일 행사를 위한 여러 준비로 분주하고 방송차량도 와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거의 모든 40주년 행사가 취소된 마당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공식행사가 바로 현장에서 개최된다는 것은 광주분들께 많은 위안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몇 십 년 만에 찾은 도청 앞인데 오늘의 행사는 분수대에 불꽃을 밝히는 등 밤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서둘러 올라와야 하는데 말이지요.

여러 상념과 함께 우리는 시민군들이 최후의 순간을 맞았던 도청 식당으로 올라가 다시 선생님으로부터 마지막 순간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식당 바닥에 둘러앉아 도청 건물에서 식당으로 토끼몰이식으로 몰린 과정, 어둠 속에서 빗발치던 총탄과 유탄, 생사가 갈린 사람들. 서늘함이 몸으로 흘러옵니다. 선생님께서는 “항전을 결의하고 이끈 지도부 중에서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선 이가 하나도 없다”고 강조하십니다. 오월 광주는 그랬습니다.

먹먹한 증언과 침묵의 흐름은 5시18분!에 대한 자각으로 현실로 돌아옵니다. 매일 저녁 5시18분, 광장 시계탑에서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집니다. 우리는 원래 함께 노래를 부르려 했는데 애절하게 퍼지는 노래에 맞춰 작은 퍼포먼스가 펼쳐져 묵묵히 지켜보았습니다. 선선한 저녁 바람을 타고 노래도 마음도 공간을 헤맵니다.

이어서 당시 사진으로 봤던, 관을 임시로 안치해두었던 상무관에 잠깐 들렀습니다. 넓지 않은 실내에 추념의 부조벽과 깔끔한 제단이 소박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국화꽃 한 송이를 드리며, 관 앞에 망연자실 넋 나가 있던 또는 울부짖던 가족들의 얼굴들을 다시 떠올립니다.

우리 순례는 전일빌딩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40년 전 광주일보가 있던 건물로 헬기사격으로 건물 곳곳이 상처투성이인 말없는 또 하나의 증인입니다. 건물은 내부가 완전히 리모델링되어 아카이브와 교육시설, 단체들을 위한 공간 등으로 쓰이고 있으며, 헬기 사격을 재현한 영상모형실에는 아이를 동반한 가족관람객이 꽤 있었습니다. 옥상은 전일마루라 하여 시내를 훤히 둘러볼 수 있도록 안전하게 개방해 두었고요. 여기 또한 찬찬히 둘러보면 좋겠지만... 광주가 멀긴 먼 곳이네요. 항상 시간의 압박을 받습니다.

   
▲ '5.18 최후 항쟁지! 옛 전남도청' [사진제공-연세민주동문회]
   
▲ 도청 광장 시계탑. 매일 저녁 5시18분, 이 시계탑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사진제공-연세민주동문회]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광주는 오리탕이 워낙 유명하다고 하여 오리탕으로 저녁을 하기로 했는데, 오늘 간 '황계산장'은 보성농민회 출신으로 40년 전 광주에서 택시운전사로 항쟁에 참여하셨던 분께서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이 분께서 특히 황칠나무를 심으셔서 황칠 오리를 하시는데 옛부터 '옻칠 천년 황칠 만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황칠은 항염, 항암 효과가 뛰어난 귀한 식물이라 합니다. 그래선지 오리탕과 함께 마셔도 끝이 없는 술도 푸짐하게 시간도 예산도 초과한 저녁을 즐겼습니다. (오리가 별로인 몇을 위해 진경원 후배가 깔끔한 채식 찬거리를 싸왔는데 정말이지 잘 먹었습니다!)

내내 일정을 같이했던 김 선생님과 평호 형, 저녁자리에 함께하신 광주 5.18본부 분과 긴 인사를 나누고 귀경버스에 올랐습니다. 오르기 전 우리를 위해 평호 형이 책 서른 권을 구매하여 선물로 나눠주셨는데요, 그 한 권이 바로 김 선생님이 쓰신 '녹두서점의 오월'이었습니다. 당연히 저자 싸인회 타임이 있었지요.

다시 버스에 오르고 모든 일이 끝났구나~ 하는 순간 다시 기나긴 간식 행렬이 이어집니다. 세토팀에서는 아침 떡, 점심 과일에 이어 저녁 도넛으로 대미를 장식하시고요. 어디 짱을 박아두었던 것인지 오렌지와 참외가 순회공연을 합니다. 거기에 오리집에서 챙겨온 황칠주까지!

우리 귀경은 늘 그렇듯 모자란 술에 대한 미련을 품고 잠드는 것으로 마무리되지요. 도로사정이 좋았는데도 11시40분이 되어 고속터미널에, 합정에는 12시 직전에 도착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전철 막차를 무사히 탔다는 최후의 승전보까지 챙겼고요. 집에 오니 1시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하루를 길고 알뜰하게 보낸 나른하고 만족스러운 느낌이 몸을 감싸 가라앉힙니다.

처음 조심스럽게 시작되었던 광주 번개는 시끌벅적하고 반가운 만남과 울컥하는 순간이 교차하고, 최신 트렌드를 따라 드라이브 쓰루의 위력까지 더해져 광주를 확 훑는 버라이어티한 행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우리 동문들은 늘 좋은 여행 동무였고요. 새벽에 상경해 참가하거나 장모님 생신에 구라치고 빠져 나온 분도, 일정 앞당겨 참여하느라 하룻밤 쪽잠 자야 하는 분도 다 좋은 동무이지요. 편의상 동행한 통일뉴스 세토 팀은 젊은 세대의 건강한 발랄함으로 훌륭한 동행이 되어 주셨습니다. 세토 산책팀 사회학과 84 홍인석 친구가 두 팀 중간에서 역할을 열심히 해주었어요. 에너지 넘치는 인석의 무한 봉사에 감사하지요.

따님과 함께 번개를 신청했다가 못 온 문규식 후배가 기존 회비에 더해 여행경비를 지원해 주셨어요. 진지하고 활동에 적극 참여해 주시는 규식님께 항상 고마워하고 있답니다. 김순흥 선배께서도 '멀리서 왔는디...' 하시며 슬쩍 주머니를 챙겨주셨고요. 윤평호 형이 사 주신 서른 권이나 되는 책은 예상치 못한 한 수였네요. 거창에서 이산 님께서 오셔서 함께해 무척 뜻깊었습니다. 또 묘역에서 잠깐 양지로 나오셨다가 마지막에 다시 시간이 늦어 집에 가기 어려운 후배들 챙기며 본연의 음지로 귀환하신 '한 분'(후기 맨 위 바로 그 한 분입니다)은 말할 것도 없고요. 넘치는 먹거리로 가는길 오는길 고단함을 덜어준 언니 동생들, 제 맘 아시죠? 특히 이번 답사는 사민연이 출사를 결정해서 장사부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참여하셨는데요. 무거운 장비를 종일 메고 사람과 장면과 현장을 기록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덕분에 풍성한 순례길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결정적으로는 모든 기행에서 최고의 동행임을 늘 입증하는 우리 선후배 동기들이 최고입니다. 꼭 가고 싶었던 오월 광주에 함께 해주셔서 정말 진짜 너무너무 고마웠습니다.

이 순례기행을 잊기 힘들 것 같네요.

 

 

이인숙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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