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출신 장기수 정관호(96) 선생이 열 번째 시집 『가고파』 출판을 준비 중에 있다. 시집 출간에 앞서 20여 편을 골라 격일(월 수 금)로 연재한다. 정 선생은 <통일뉴스>에 2008년 8월부터 2012년 5월까지 200회에 걸쳐 시와 사진으로 된 ‘정관호의 풀 친구 나무 친구’를 연재한 바 있다. / 편집자 주

 

 

 

          말 없는 증언

 

 

          가을이면 우수수 지는 이파리들

          그 쌓이는 낙엽에 샘은 다 묻히고

          뻗어가는 시누대는 무성히 자라

          그나마 희미하던 두멧길을 메운다

 

 

          분명 사람의 손이 간 돌무지는

          이끼가 덮인 돌팡구가 되어가고

          무슨 표지로 박아놓은 돌이건만

          그 혼자 말없는 증언을 하고 있을 뿐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이 내려 쌓이고 얼어붙고

          세월에 묻혀 잊혀져가는 것들

          지나간 햇수를 세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재 말랭이를 넘는 바람의 동과 서

          홀로 잣송이를 따는 청설모 야산

          한때는 반달가슴곰이 벗하던 큰 산

          겹으로 뻗어내린 우내 낀 산등성이

 

 

          그 사이로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들

          올망졸망 들어앉은 집과 마을들

          산천은 거기 모두 옛날과 같건만

          마냥 덧없기는 사람 자취 뿐이다.

 

 

 

저자 소개

1925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남. 원산교원대학 교원으로 재직하던 중 6.25전쟁으로 전라남도 강진에 내려왔다가 후퇴하지 못하고 빨치산 대열에 가담. 재산기관지 ‘전남 로동신문’ 주필 역임. 1954년 4월 전남 백운산에서 생포되어 형을 삶.

저서로는 음악 오디오 에세이집 『영원의 소리 하늘의 소리』,『소리의 고향』이 있고, 시집들 『꽃 되고 바람 되어』,『남대천 연어』,『풀친구 나무친구』,『한재』,『아구사리 연가』, 역사서『전남유격투쟁사』, 장편소설 『남도빨치산』 등이 있다. 이외에도 역편저가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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