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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빨리 낫고 광화문 투쟁현장 나가고 싶어”

기사승인 2020.02.24  03: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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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암 4기 판정받은 ‘멋쟁이’ 장기수 강담 선생

   
▲ 장기수 강담 선생(우측)이 김지영내과에 입원해 김지영 원장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암 빨리 낫고 광화문 투쟁현장에 나가고 싶어.”

병상에 누워있는 ‘멋쟁이’ 장기수가 지난 21일 오후 기자를 보자마자 꺼낸 일성이다. 2차 송환 희망자 강담 선생. 1933년생이니 올해 88세다. 선생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회든 투쟁 현장이든 휠체어에 몸을 싣고 시내를 누볐다. 그런데 최근 청천벽력 같은 폐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선생은 금년 1월1일에도 시내에 나와 미군철수투쟁 집회에 참석했고, 다음날엔 평택에 갔는데 그날따라 숨이 차고 몸이 안 좋았다. 그래도 그때는 별일 없겠지 했는데 3일 동네병원에 가니까, 6개월 전에 이 병원에서 건강검진 받았을 때도 이상 없었는데 의사가 “이상 있다”고 하면서 발산동 이대병원에 가란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입원했다. 엑스레이를 찍자 왼쪽 가슴에 물이 꽉 찼단다. 물을 이틀에 걸쳐 3리터 이상 뽑았다. 이후 정밀검진 하니까 폐암 4기 말기라 했다. 8일 동안 입원해 모든 걸 다했다. 새벽에 화장실 가면 토할 때 피가 나왔다. 각혈이다. 결국 의사가 몸이 너무 안 좋으니 집에 가서 통근 치료하란다. 그래서 집에 와서 누워만 있었다.

선생이 지금 누워있는 병상은 신촌 소재 김지영내과. 병원에 온 이유에 대해 영양제 주사를 맞으러 왔다고 한다.

“몸이 너무 아파 집에 누워만 있었어요, 잠도 못 자요. 밥도 못 먹고 먹으면 토하고 해서... 우리 장기수들의 주치의인 김지영 원장께 전화를 했더니 빨리 오라고 해요. 영양제 주사라도 맞아야 한다면서. 그래서 왔어요. 양심수후원회에 모성용 선생이 날 태워갖고 왔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목소리에 힘이 붙는다.

“원장님이 밥을 먹어야 사는데, 우선 영양제 주사 맞자고 해서 맞는데 이거 맞으면 곧 나을 것 같아. 곧 낫지 않을까 희망과 기대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건강 회복되면 현장에 돌아가고 싶어요. 광화문에도 나가서 투쟁하고 싶어요. 통일운동 하다 죽으면 좋을 텐데 아무것도 못하고 죽으니 억울해요.”

그러자 옆에 있던, 이날 선생을 병원에 모셔온 모성용 양심수후원회 감사가 “이제까지 통일운동 많이 해 오셨잖아요” 하고는 “건강하셔야 애들도 만날 수 있잖아요” 한다.

   
▲ 2017년 8월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열린 ‘비전향 장기수 2차 송환, 조건없이 실행하라’ 기자회견에 참석한 강담 선생(우측에서 두 번째). [통일뉴스 자료사진]

선생은 2차 송환 희망자다. 고향은 함경남도 흥원. 북한에서 수산사업소 근무 중 대남연락책으로 남파됐다가 1965년 검거,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4년을 복역해 1988년 12월에 출소했다. 북쪽엔 아내와 아이 셋이 있다. 아이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1965년 북에서 세 번째 남파하기 직전 일이 생각난다. 중앙당 과장이 아내와 함께 만찬을 제공하고 영화구경도 시켜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해 모스크바에서 대치 중, 소련의 여성노동자가 트랙터를 몰고 독일군 탱크에 올라타 사격하며 탱크를 부수는 내용이었다. 그 영화를 보고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내가 없을 것을 각오하고 애들 잘 키워라”고 했더니 아내가 “3일 있다가 보게 되는데 무슨 그런 걱정하냐?”고 핀잔을 준다. 그런데 어느새 55년이 됐다. 그때 아내는 당원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신 내가 잠시 없더라도 당원이 돼서 열심히 일하라”고 말한 게 그나마 지금 큰 위안이다.

선생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며 “그때 아내에게 그 말 잘 한 것 같다. 아마 아내가 애들에게 말했을 것이다”며 안도한다. 그런데 선생은 첫째는 딸, 둘째는 아들인데 막내는 아들인지 딸인지 모른다. 아내가 막내를 임신했을 때 남파됐다가 잡혔으니까.

그래서 선생은 꼭 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북에 있는 자식들에게 오해를 풀고 싶다는 것.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평양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2차 송환 문제가 제기되고 가능성도 있어, ‘내일 모레면 공화국에 갈 텐데 지금 평양에 갈 필요가 있느냐’ 하면서 그때 안간 게 후회된다.

그래도 그건 괜찮다. 2차 송환 문제가 본격화될 당시 인천 맥아더동상 철거투쟁이 대규모로 전개됐는데 그때 보수들이 들고 일어나 노무현 정부가 밀렸다. 그래서 2차 송환이 무산됐다. 그때 못간 게 가장 마음 아프다. 북에 있는 애들이 아버지를 원망할 것 같다. 1차 송환 때 다른 사람은 다 왔는데 우리 아빤 왜 안 올라 왔냐고 하면서... 그때 못간 게 한이고 만나면 그 오해를 풀고 싶다.

   
▲ 2012년 4월 현충원에서 장기수 및 양심수후원회 회원들과 함께 한 강담 선생(아래줄 우측). [통일뉴스 자료사진]

선생은 모임이나 집회 때마다 늘 멋진 양복에 색깔 있는 셔츠 그리고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등장한다. 그리고 한번 말을 꺼내면 몇 시간이고 손짓을 섞어 유머를 발휘하며 말한다. 그래서 ‘멋쟁이 장기수’로 통한다. 선생은 젊었을 때도 항상 멋진 옷을 입고 다녔다고 회고한다.

그런데 지금은 환자다. 그것도 폐암 4기 환자다. 3년 전인 2017년에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도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지금 강담 선생과 비슷하다. 그런데 권 명예회장은 암과 공생(?)하면서 집회에도 나가고 6.15산악회 산행도 가끔 나간다.

선생은 “권오헌 선생은 모든 투쟁에서 선봉에 선 훌륭한 분이다. 우린 후원도 많이 받았다. 존경한다. 같은 폐암이라도 나는 죽어도 되지만 권 선생은 꼭 살아야 할 분이다. 그분은 남쪽에 꼭 있어야 할 분이다”고 말한다.

나중에 확인한 바로, 김지영 원장은 권오헌 선생과 강담 선생 모두 폐암 4기인데 차이가 있다고 한다. “권 선생님은 암 치료에 표적 치료가 되는데, 강 선생님은 안 된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선생은 아픈 중에도 정세에 관심이 많다. 특히 북측 소식은 꼭 챙긴다. 그런데 마음은 편치 않다. 남북 관계가 경색돼 있어 고향에 가는 길이 자꾸 멀어지는 것 같고 또 병에도 걸리고 해서. 하지만 희망은 여전하다.

“이번 전원회의를 보니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미 노선이 그전과 바뀌었다.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미국은 승냥이다. 영원한 승냥이이다 승냥이와 협상은 있을 수 없다. 전원회의에서 나온 정면돌파전. 그게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러면서 선생은 앞으로 항암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항암 치료를 한 번 받았는데 너무 힘들다. 항암주사 맞으니까 까무러치겠더라구. 3월 2일에 병원에 가야 하는데 항암주사 안 맞겠다. 식사로 건강 챙기고 광화문에 투쟁하러 나가겠다. 금년 말까지는 살 것 같으니 그때까지만이라도 열심히 투쟁하겠다.”

   
▲ 모성용 양심수후원회 감사가 강담 선생을 간호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그러자 모성용 감사가 “선생님 평소 건강 보면 오래 사실 거예요. 100살도 넘겨 통일된 날에 북에 가실 거예요. 북에 가서 애들 보고 이렇게 컸냐 해서 놀라 그때 돌아가시면 가셨지 지금은 건강해서 괜찮아요” 한다.

그러자 선생의 얼굴에 병색이 걷히면서 특유의 찡그러진 웃음과 함께 낯빛이 환해졌다.

 

 

이계환 기자 khlee@tongilnews.com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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