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보수진영에 돌려준다 3 

 

박윤희

 

=통일의 집원을 부정적인 태도로 묵살하지 말라=

 

(6)보수주의자들의 통일반대안

자칭 민족주의자들의 반민족적행위 즉 통일에 대한 부정적이고도 소극적인 태도는 제2공화국에 들어와서도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이것은 현 집권당인 민주당이 자유당과 그 본질에 있어서 조금도 날 것이 없다는 사실에 비추어 하나도 괴이할 것이 못된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반독재투쟁을 통해서 가 아니라 「4.19」혁명이라는 정치적 무풍지대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일반근로대중이 혁명의 성격과 방향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틈에 이신동질이었던 자유당의 관권과 조직과 금력을 그대로 새치기 하여 정권의 왕좌에 오를 수 있었던 민주당 정부에 대하여 다소라고 참신하여 성의 있는 통일노력을 기대했다는 것부터가 큰 잘못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우기 현 집권당과 명목적으로만 야당인체 하는 신민당 바로 「8.15」이후에 「가능한 지역에서의 독립」이라는 기만적 「독립노선」 주창했던 사람들과, 그 추종자들의 집단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착하기만 한 우리 백성들은 벌써 두 번씩이나 이들 자칭민족주의자들에게 속았고 아직도 속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아직도 「유엔 감시와 대한민국 헌법절차에 입각한 통일선거」 이외의 어떠한 통일방안도 거부한다는 독선적이고도 우물 안의 개구리 식인 통일방안이 아닌 통일반대안을 고집하고 있다. 이들은 이승만정권이 부르짖던 「북진통일론」을 포기했다하여 통일에 비상한 노력이라도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일반 백성을 현혹시키고 있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자유당 때보다도 더 교활할 뿐이다.

통일선거의 절차라는 것은 결코 문제의 핵심이 될 수 없는 것이며 이 나라의 보수민족주의자들이 「유엔감시」니 「중립국감시」니 또는 「국제감시」니 하는 따위의 누구구의 감시를 받는 것이 좋겠느냐하는 지극히 굴욕적인 지엽문제를 가지고 시일을 끈다는 것은 멀리 이조 때에 왕이 죽은 뒤 의복입는 절차 문제를 가지고 시비 끝에 사색당쟁이라는 망국싸움을 벌이던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명분」을 좋아하는 괴벽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또 남북교류나 남북협상에 대해 한결 같이 부정적일 뿐만 아니라 이것을 찬성하는 사람이나 단체를 무조건 용공시하기가 일쑤다 이들은 말하기기를 이북은 공산당이니까 그리고 공산당과 교섭하거나 협상하면 그 인정하는 결과가 되고 또 반드시 그들에게만 유리하게 될 것이 뻔 하니까 남북교섭과 남북협상을 반대한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미・소간의 교역 문화교섭이나 영국과 중공간의 각종교섭을 이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가 교류나 협상을 하는 것은 반드시 그들의 경제체제나 정치철학을 시인하기 때문이거나 그들의 요구조건에 무조건 굴복하기 위해서가 아님은 두말할 것도 없다. 군사적 통일이나 정치적통일이 단시일 내에 이루어지기 어려울진대 우선 손쉬운 서신교환 인사교류 스포츠 교류 정도라도 실시하여 통일을 갈망하는 인민들의 정당한 울분을 조금이라고 풀어주자는 것뿐이다.

 

(7) 협상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

이들은 또 말하기를 남북협상은 이미 1948년에 한번 시험해 보아서 실패했으니까 다시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동서냉전이 바야흐로 본 고비에 들어서려던 1948년 당시의 국내외정세와 동서간의 긴장이 완화되어가고 있으며 양진영사의 「평화적 공존」과 「선의의 기년」이 불가피하게 된 1961년 현재의 국내외정세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은 그만두고라도 한번 실패했다고 해서 다시는 협상을 하지말자는 것보다 더 심한 패배주의는 없다고 본다.

전세계 인류가 다 그렇겠지만 특히 우리 한국 사람들로서는 지금 죽느냐 사느냐 하는 갈림길위에서 서있다. 이 숨 막히는 상태에서 벗어나 살길을 찾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열 번 아니라 몇 백번이라도 협상을 계속할 용기와 인내력과 배짱을 가지고 있어야 할 줄로 안다.

「오스트리아」가 중립국으로서 미소영불 4대국의 보장 하에 독립, 통일되기 위해 170여차의 국제회의가 열렸으며, 100여차의 실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소 양국을 비롯한 동서 양진영이 「쥬네브」에서 핵실험금지회담을 다시 열었고 여기에 중립국가들과 중공까지도 참가하게 되리라는 소식이 이 땅의 보수정객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는 말인가? 미국이 그렇게도 인정하기를 싫어해오던 중공을 군축회담에 참가시킬 용의를 가지게끔 된 것은 결코 미국이 중공의 국내외정책을 받아들인다거나 중공의 국제적 위신을 높여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바로 미국자체의 이익을 위해서 인 것이다.

남북교류나 협상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성공여부에 구애될 필요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 그것이 다소라도 국토와 백성들의 통일을 재촉할 수 있는 길이라면 열 번 백번의 실패를 각오하고서라도 우선 시도라도 해봐야 될 줄, 나는 믿는다. 

설사 패배주의자들의 말대로 교류나 협상이 끝내 실패에 돌아간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우리는 최소한 선전적인 면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며 보수주의자들의 말대로 「남북분단의 책임과 그 재통일을 방해하는 책임」이 바로 이북의 공산 측에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 아니겠는가?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는 결코 「교류나 협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논단/보수진영에 돌려준다 3 [민족일보 이미지]

論壇/保守陣營에 돌려준다 3

 

朴允熙

 

=統一의 慹願을 否定的인 態度로 묵살하지말라=

 

(六)保守主義者들의 統一反對案

自稱 民族主義者들의 反民族的行爲 즉 統一에 對한 否定的이고도 消極的인 態度는 第二共和國에 들어와서도 아무런 變化를 가져오지 못했다. 

이것은 現執權黨인 民主黨이 自由黨과 그 本質에 있어서 조금도 날 것이 없다는 事實에 비추어 하나도 괴이할 것이 못된다. 뿐만아니라 스스로의 反獨裁鬪爭을 通해서 가 아니라 「四.一九」革命이라는 政治的 無風地帶를 교모하게 利用하여 一般勤勞大衆이 革命의 性格과 方向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틈에 異身同質이었던 自由黨의 官權과 組織과 金力을 그대로 새치기 하여 政權의 王座에 오를 수 있었던 民主黨 政府에 對하여 多少라고 참신하여 誠意있는 統一努力을 期待했다는 것부터가 큰 잘못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우기 現執權黨과 名目的으로만 野黨인체 하는 新民黨 바로 「八.一五」이후에 「可能한 地域에서의 獨立」이라는 기만的 「獨立路線」 主唱했던 사람들과, 그 追從者들의 集團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착하기만 한 우리 백성들은 벌써 두번씩이나 이들 自稱民族主義者들에게 속았고 아직도 속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아직도 「유엔 監視와 大韓民國 憲法節次에 立脚한 統一選擧」 以外의 어떠한 統一方案도 拒否한다는 獨善的이고도 우물안의 개구리 식인 統一方案이 아닌 統一反對案을 고집하고 있다. 이들은 李承晩政權이 부르짖던 「北進統一論」을 포기했다하여 統一에 비상한 努力이라도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一般 백성을 현혹시키고 있지만 그 本質에 있어서는 自由黨때보다도 더 교활할뿐이다.

統一選擧의 節次라는 것은 決코 問題의 核心이 될 수 없는 것이며 이 나라의 保守民族主義者들이 「유엔監視」니 「中立國監視」니 또는 「國際監視」니 하는 따위의 누구구의 監視를 받는 것이 좋겠느냐하는 지극히 굴욕的인 枝葉問題를 가지고 時日을 끈다는 것은 멀리 李朝때에 王이 죽은 뒤 의服입는 節次問題를 가지고 시비끝에 四色黨爭이라는 亡國싸움을 벌이던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名分」을 좋아하는 괴벽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또 南北交流나 南北協商에 對해 한결 같이 否定的일 뿐만 아니라 이것을 贊成하는 사람이나 團體를 무조건 容共視하기가 일쑤다 이들은 말하기기를 以北은 共産黨이니까 그리고 共産黨과 交涉하거나 協商하면 그 認定하는 結果가 되고 또 반드시 그들에게만 有利하게 될 것이 뻔 하니까 南北交涉과 南北協商을 反對한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美・蘇間의 交易 文化交涉이나 英國과 中共間의 各種交涉을 이들은 어떻게 說明할 것인가? 우리가 交流나 協商을 하는 것은 반드시 그들의 經濟體制나 政治哲學을 是認하기 때문이거나 그들의 要求條件에 무조건 굴복하기 위해서가 아님은 두말할 것도 없다. 軍事的 統一이나 政治的統一이 短時日內에 이루어지기 어려울진대 우선 손쉬운 書信交換 人士交流 스포츠 交流 정도라도 실시하여 統一을 갈망하는 人民들의 正當한 울분을 조금이라고 풀어주자는 것뿐이다.


(七) 協商을 두려워할 必要없다.

이들은 또 말하기를 南北協商은 이미 一九四八年에 한번 시험해 보아서 失敗했으니까 다시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東西冷戰이 바야흐로 본 고비에 들어서려던 一九四八年 當時의 國內外情勢와 東西간의 緊張이 완화되어가고 있으며 兩陣營사의 「平和的共存」과 「善意의 記年」이 不可避하게 된 一九六一年 現在의 國內外情勢가 根本的으로 다르다는 事實은 그만두고라도 한번 失敗했다고 해서 다시는 協商을 하지말자는 것보다 더 심한 敗北主義는 없다고 본다.

全世界人類가 다 그렇겠지만 特히 우리 韓國사람들로서는 지금 죽느냐 사느냐 하는 갈림길위에서 서있다. 이 숨 막히는 상태에서 벗어나 살길을 찾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열 번 아니라 몇 百번이라도 協商을 계속할 용기와 인내력과 배짱을 가지고 있어야 할 줄로 안다. 

「오스트리아」가 中立國으로서 美蘇英佛 四大國의 保障下에 獨立, 統一되기 위해 百七十餘次의 國際會議가 열렸으며, 百餘次의 失敗가 있었음에도 不拘하고 美・蘇兩國을 비롯한 東西兩陣營이 「쥬네브」에서 核實驗禁止會談을 다시 열었고 여기에 中立國家들과 中共까지도 參加하게 되리라는 소식이 이 땅의 保守政客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는 말인가? 美國이 그렇게도 認定하기를 싫어해오던 中共을 軍縮會談에 參加시킬 用意를 가지게끔 된 것은 決코 美國이 中共의 國內外政策을 받아들인다거나 中共의 國際的威信을 높여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바로 美國自體의 利益을 위해서 인 것이다.

南北交流나 協商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成功與否에 구애될 必要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 그것이 多少라도 國土와 百姓들의 統一을 재촉할 수 있는 길이라면 열번 百번의 失敗를 각오하고서라도 우선 試圖라도 해봐야 될 줄, 나는 믿는다. 

설사 敗北主義者들의 말대로 交流나 協商이 끝내 失敗에 돌아간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우리는 最小限 宣傳的인 面에서 勝利를 거둘 수 있을 것이며 保守主義者들의 말대로 「南北分斷의 責任과 그 再統一을 妨害하는 責任」이 바로 以北의 共産側에 있다는 것을 全世界에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 아니겠는가?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는 決코 「交流나 協商을 두려워할」 必要가 없는 것이다.

<민족일보> 1961년 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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