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정치학(북한정치) 박사/‘수령국가’ 저자/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트럼프의 발언(“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에 이어 역설적으로 주한 미대사의 발언이 이토록 고마울 때가 있을까싶다. 이제까지 잠만 자고 있던 대한민국의 숭미사대의식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을 해주게 했으니 어찌 고맙지 않다하겠는가. 해서 사족을 좀 달아 더 나아가보자면 대한민국이 과연 주권 국가인가부터 시작하여 집권여당 송영길 의원이 말한 것처럼 주한미대사가 ‘조선 총독’이라는 사실, 등등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해줬다. 

그리고 그 결론에 이제까지 한미동맹체제와 주한미군철수 문제가 성역이었으나, 이 발언과 방위비 ‘먹튀 인상’ 등으로 인해 이제는 대중들 스스로가 ‘미국은 과연 우리 대한민국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런 본질문제를 따질 수 있게 되었고, 비례해 ‘미국 벗어나기’ 운동이 대중자신의 운동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는 사실이다.  

기·승·전·한미동맹체제이다. 모든 근원에 한미동맹체제가 있으니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기도 하고, 마침 국민들도 대체적으로 미국이 주권국가 대한민국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여기에는 넘어야할 엄청난 산이 하나 있다. 빗대 설명하자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그 한 예가 될 텐데, 분명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한 것은 너무나도 기쁘고 축하할 일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하여 대한민국 영화가 세계영화 산업계의 주류(문화)가 된 것도 아니고, 또 동양의 오리엔탈리즘이 극복되었다고 할 수 있지도 않다. 

같은 논리로 해리스의 발언과 방위비 먹튀 인상 등으로 인해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체제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다하여 이것이 본질적인 의미에서 숭미사대의식과 미국해바라기 관점이 극복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는 뜻이다.

즉, 기쁘다는 감정과 지배질서구조의 현실이 그렇게 일치하지 않는다는데 대해 착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고, 이를 다시 말하면 한 사회나 질서를 지배하는 구조가 극복되었느냐하는 그 질문이 수상의 기쁨과 환희와는 분명 다른 차원의 문제로 우릴 매우 불편하게하기도 하고, 또 본질적으로, 혹은 좀 더 아프게 지적하자면 아카데미에서 인정받아야만 대한민국 영화가 세계적이 되었다고 믿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질문으로까지 그 맥이 닿아야만 아카데미 수상 4관왕의 의미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이는 백인들이 미합중국이라는 국가를 세우기 위해 토착 인디언들을 피바다(학살)로 만들었고, 지금도 계속하여 세계유일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 어떤 나라들보다 많은 침략과 전쟁을 일으키지만 그 이면 모두는 면죄부로 착시되는 것과 똑같다.  

본질로 문제를 보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절대로 데이(THEY)의 영역이 위(WE)의 문제로 되지도 못할뿐더러 실천적으로는 이성의 영역을 절대 못 넘어오는 감정의 영역문제로만 머무르게 된다. 이름하여 주체의 문제, 실천의 영역문제로 되지 못한다는 말이고, 그러면 (봉준호 감독의 수상이) 기쁘기는 하되 (영미중심의 영화산업) 구조는 그대로이고, (해리스 대사의 발언 등에) 분노는 하되 한미동맹체제는 계속 지속되는 것이다.  

이렇듯 한미동맹체제와 주한미군문제가 고스란히 우리(국민들 개개인의) 문제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이 관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THEY에서 WE로, 감정에서 이성으로 교집합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통일평화운동세력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포착된 계기를 절대 놓치지 않고, 논리개발과 대중투쟁 그 자체에 힘 있게 조직 전개해 들어가야 한다. 

그 전제로 좀 더 줌 인(zoom in)하여 해리스의 발언을 살펴보면 해리스의 발언은 개인일탈의 문제로 바라보기보다는 구조의 문제로 인식해야지만 미국의 본질이 제대로 드려난다 할 수 있겠고, 그럴 때만이 카스라-태프트 밀약으로부터 시작된 미국의 한반도 인식이 1945년 인천부두의 미국만행으로, 급기야 1980년에는 워컴 사령관의 ‘들쥐’ 발언, 지금 현재의 해리스까지 아니, 앞으로도 계속하여 제2의 해리스가 양산될 수밖에 없음을 착목하게 된다. 

어떻게? 접근으로는 역사적이고, 구조적 이해(혹은, 인식)를 통해 본질로 접근해나가야 하고, 그러면 내용적으로는 미국이 조미수호조약을 깨뜨리고 카스라-태프트 밀약으로 일제와 분할 지배를 약속하며 조선반도를 식민지화시킨 나라였다는 것, 이후 미국은 분단선인 38선을 그은 주범이자 한반도의 분단을 획책하고 38선 이남의 단독선거를 실행하도록 사주함으로써 남북이 갈라지게 만들었고, 한국전쟁 이전에도 휴전선을 중심으로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교란작전과 전투가 이뤄져 이것이 결국 전쟁의 불씨로 작용했고 이 확전이 한국전쟁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원인과 책임을 오로지 북(北)에게만 넘겨 북을 ‘악마화’하는데 성공, 분단 고착화의 일등공신(?)인 나라가 미국이고, 그런 미국이 그 대가로 대한민국 안보를 빙자하며 군사작전권을 가져 대한민국을 사실상 군대 없는(반어적으로 이해해 주시라.) 시체국가로 만들어놓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국 28곳에는 무상 미군 기지를 강제로 세워 60년이 넘게 이 땅을 무상 점유하고, 또 온갖 명목의 이름으로 무기팔이 전쟁연습을 하며 한반도에 항시적인 전쟁의 먹구름을 깔아 놓는다. 여기에다 최근의 사드문제는 미국의 본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말도 되지 않는 강도논리로 방위비 먹튀 인상마저 요구한다. 하다못해 우리의 안보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호르무즈 파병까지 강제한다. 

한미동맹체제의 실상이 이런 것이다. 그래서 악의 축은 북이 아니라, 한미동맹체제 그 자체여야 하고, 연동해 한반도에서의 리바이던(Leviathan)된 괴물은 북이 아니라, 한미동맹체제 그 자체여야 한다. 

그러면 해리스의 막말은? 내정간섭도 이런 내정간섭이 없게 된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의 인식이 대한민국을 속국이나 식민지로 바라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발언들이고, 이는 마치 일본이 지금도 대한민국 국민들을 자신들의 지배체제 하에 있었던 ‘조센징’으로 향수하는 것과 똑같이  취급한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조센징’은 과거형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재형이이다. 작동기제로는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정치적 (내정)간섭의 첨병역할을 하게하고, 주한미군 주둔이 대한민국을 영구적 지배하기 위한 물리적 수단으로 되게 하고, 미국과 사실상의 동심체를 유지하는 유엔사는 분단고착화를 위한 관리자기능에 충실 한다. 

다음으로는 한미동맹체제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하기 위해 
동맹체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설명하면 이렇다. 동맹의 이론적 원형이 동맹을 맺고자 하는 국가들은 자국의 필요에 따라 국가이익과 모든 부분에서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대전제하고 있다. 그럼으로 대한민국과 미국 사이에는 동맹은 동맹이고, 국가는 국가라는 분립의 관점이 성립한다. 또한 무조건적인 한미동맹체제에 포박되지 않아야할 이유로 분단국가에서 그 원인을 찾는 지혜도 꼭 필요하다. 

이는 대한민국이 분단국가로의 출범과 함께 운명적으로 맞닥뜨린 것이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와 남북 간 평화통일을 지향해 나가야 한다는 헌법상 책무이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은 군사적 긴장완화와 남북 간 교류·협력, 민족적 동질성 회복 등을 늘 그 중심에 놓아야 하는 정책적 책무가 발생했고, 태생적으로 외부의 적(=북)을 가상하는 동맹체제와는 절대 양립할 수 없게 하였다. 실효적으로도 이 정부의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번영, 통일정책이 한미동맹체제와는 양립되고 있지 않음이 증명된다. 

그 압권에 보수정권 김영삼 대통령의 발언에 있다. 1994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어떤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라고 했고, 의역해보자면 ‘어떤 동맹도, 그것이 비록 한미동맹이라 할지라도 민족의 이익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가 그것이다. 

그런데도 촛불정부인 문재인 정부가 이 보다도 더 못하다면... 

상념을 잠깐 뒤로 하고 한미동맹체제에 대한 본질적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나를 덧붙이자면 일반적인 의미에서 동맹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외부에 그 위협이 있고, 적이 있다는 걸 말한다. 그러니 질서적으로는 동맹 자체는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상태이고, 왜 이 지구상에 동맹을 맺지 않는 국가들이 훨씬 더 많은지가 설명되어진다. 

그래서 굳이 동맹을 맺어야만 한다면 우선 동맹의 목적이 안보 관련 공동 목표가 그 최종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 했을 때 동맹은 그 어떤 동맹이라 할지라도 참가국들의 공동이익과 목표를 추구하기 위하여 모든 수단과 자원을 투입하는 협력적 노력을 기반으로 이뤄져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미동맹체제는 여타의 다른 동맹들과는 많이 다르게 대한민국이 미국으로부터 안보를 지원받는 대신, 전형적인 자율성을 많이 양보해주는 구조에다 전형적인 ‘비대칭 동맹’ 정형에 다름 아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국력이 매우 미약하고, 자주적인 국방력을 스스로 가질 수 없었을 때는 이 동맹체제를 이용해 안보 공백을 메우려는 전략이 유용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선진국 클럽인 OECD가입국의 위상과 고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보면 세계 7위안의 국방예산을 쏟아 부으면서도 군통수권 하나 갖고 있지 못하다면 이는 국방부의 직무유기와 하등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지금의 한미동맹체제는 한반도에서의 전쟁방지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원래목적에서 이탈하여 주한미군 주둔 의미를 중국견제를 그 직접적 목표로 하면서도 동북아에서의 패권적 유지와 분단고착화의 정치군사적 기제로 작동하고 있어 동맹체제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시킨다.

결국 이 두 사실로부터 한미동맹은 동맹체제의 정상성을 아주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거기에다 한미동맹체제는 한반도의 통일지향성을 부정하고 분단체제를 더 고착화하는 것으로 그 체제의 성격을 갖고 있어 더더욱 왜곡된 동맹체제이자 심각한 동맹체제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린 이를 잊은 채 너무나도 오랫동안 오로지 한미동맹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모든 동맹들 가운데서도 가장 완벽한 동맹체제이고, 적의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주는 절대 수호신으로 신봉해온 것이다. 연장선상에서 미국을 무조건적인 맹방으로, 혹은 공산화를 막아준 혈맹이니 하면서 숭미사대가 자라날 수 있도록 양질의 토양까지 제공해줬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필리핀은 2020년 2월 11일, 아주 중대한 결정하나를 내렸다. 미군이 필리핀 내에서 훈련을 실시하고 연합훈련에 참가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됐던 ‘방문군 협정(VFA)’을 종료시켰다. 

다시 묻는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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