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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수상(農民隨想)

기사승인 2020.02.07  14: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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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일보 다시읽기 <118>

농민수상(農民隨想)


봄의 예찬자마저

저주스러운 이 신세

 

성원경(成元慶)

 

봄이 오면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며 즐거운 새들이 우짖는다. 메마른 누리에 찬바람 몰아치고 백사장에 회오리바람 불어 모래알 자욱하게 안개같이 일어나던 겨울과는 얼마나 대조적인 계절인가!

산천의 초목 모든 대자연의 생물들은 희망적이 아닌 것이 없다는 그 봄이 올해도 또 이 강산에 찾아온다. 

그러나 헐벗고 굶주린 소농민과 소시민들의 가슴에는 무엇이 찾아들고 가고 있는지? 양반에게 종들이 부림을 당하듯이 예사로 굶주림을 당하는 처지의 백성들-부황증에 걸려 맥 못 추는 농민- 초근목피(草根木皮)로써 잔명을 유지하는 가련한 참을성 있는 인민대중-그들의 눈에는 봄의 예찬자가 원수처럼 보일는지 모른다. 

사실이다. 그들은 봄의 예찬자를 미워하지 않을 수 없다. 봄 하면 먼저 배고픔이 생각 키어지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나는 열세살때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부터 삼십이 된 오늘날까지 춘궁기의 곤란을 단 한 해도 면해 본적이 없었다. 남들이 좋아하는 봄철을 나는 왜 십칠년이나 긴 세월에 한 번도 좋아해 보지 못하고 살아왔는가? 

해마다 춘궁기 또 추궁기 나에게는 한 해 두번씩이나 곤란이 닥치는 것이다.

말이 살찌고 하늘이 높고 서늘한 계절-가을! 그 좋은 계절을 나는 들마당에서 풍로질도 채끝나기도 전에 장릿벼(長利稻)를 갚아야 했다. 여름철 피땀 흘려 농사지은 벼! 몇 섬 되지 않는 황금알들을 모조리 고리대금업자와 장릿벼 주인에게 갚고 나면 남은 것은 짚과 뒷목뿐이었다. 

가을이라면 거두어 들여야 하는데 집안 마당에는 벼 한 섬 짊어지고 들어올 수 없는 것이 곧 나의 형편이었다.

춘궁기는 추궁기부터 시작되며 추궁기는 또 춘궁기부터 시작되어 언제나 나를 지독하게 벌준다. 밤낮 자나 깨나 농사지어 보았댔자 남의 좋은 일시키는 것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나의 무능일까? 나는 정말 생목숨을 끊지 못해서 올해의 봄을 또 살아야만 되는가? 신이 어이하여 이다지도 세상살이를 불공정하게 만들어 놓았는지? 나는 원망할 곳이 없어서 때로 신을 저주해 보기도 한다. 확실히 어리석은 일이겠지만 어이하랴.

어제 나는 농업은행에 갔다. 나의 이웃집 김씨 집은 벼 백석이나 하는 촌(村)의 부자였는데 농업은행에 가서 대충자금이라는 것을 십만환을 얻어왔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농업은행에 가서 돈을 얻기는커녕 그들의 비웃음을 받고 돌아온 셈이다. 

나의 행색이 너무나 초라했기 때문이겠지. 나는 어제 일을 생각하고 신을 저주하기보다도 세상을 또 원망하게 되었다. 자기 돈은 고리대금으로 남을 주고 장릿벼를 놓는 부자들에게는 대충자금을 은행에서 대부해주면서 남의 고리대금을 써야하고 남의 장릿벼를 먹고 가을이면 꼭꼭 갚아야하는 나에게는 대충자금이고 무어고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으니 이 세상이 아무리해도 고르지 못한 세상이라고 나는 원망하지 않을 수 없으며 남들이 좋아하는 이 봄을 나는 싫어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밀양, 농군)

농민수상(農民隨想)

   
▲ 농민수상(農民隨想)[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3월 26일

이창훈 tongil@tongilnews.com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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