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하 우리민족)과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이하 지원본부)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1718위원회)로부터 각각 '개풍양묘장 현대화사업'과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등에 대한 의료기자재원료의약품 지원'에 대한 제재면제 승인을 받았다.

2018년 8월 제재면제 절차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나온 후 지난해 12월까지 1년 6개월동안 국내외 38개 단체가 1718위원회의 제재면제 승인을 받았으나 국내단체는 이 두 곳뿐이다.

우리민족은 지난해 10월 20일께 1718위원회에 제재면제 승인신청을 하고 11월 초 미국에서 열린 국제회의를 계기로 직접 1718위원회 관계자들을 설득해 12월 2일 제재면제 승인을 받았다.

이에 앞서 지원본부는 지난해 4월 통일부 반출시스템에 물자반출 신청을 한 후 7개월이나 걸려 11월 26일 국내단체로는 처음으로 제재면제 승인을 받았다. 다만 북측과의 사업에 장애를 초래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에 따라 지금까지 그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우리민족은 제재면제 승인 이후 "개풍까지 물자를 육로 수송할 수 있고 실제 양묘장을 운영해서 묘목을 생산할 수 있는 여러가지 기구, 자재, 장비들을 전달해서 협력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으니 이제 중단된 사업을 재개하자"고 북측에 제안했다.

지원본부 역시 제재면제 승인 사실이 1718위원회 홈페이지에 공지되지 않도록 하는 등 주의를 기울이면서 북측의 호응을 기다렸다. 그러나 두곳 모두 아직 뚜렷한 진척은 없다.

▲ 지난해 11월 26일 국내단체로는 처음으로 유엔안보리 제재위원회로부터 의료기자재와 원료의약품 지원에 대한 제재면제 승인을 받은 엄주현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사무처장은 이같은 노력에 북측의 호응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해 11월 1718위원회를 직접 찾아가 관계자들을 설득한 끝에 '개풍양묘장현대화사업' 재개를 위한 제재면제 승인을 받아낸 홍상영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어떤 식으로든 길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21일 서울 마포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실에서 만난 엄주현 지원본부 사무처장과 홍상영 우리민족 사무총장은 "지금은 북측의 여러가지 입장 정리 등을 기다려야 할 시기"라고 하면서도 "실천적 방식으로 당면한 여러가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있기를 바란다"며 북측의 호응을 기대했다.

북이 제재의 장기화를 현실로 인정하면서 자력갱생으로 극복해 나가겠다는 정세인식을 보인만큼, 어려움을 해결하는 다양한 수준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에 서로 동의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

홍 총장은 "대북제제가 현실로 존재하는 조건에서 제재면제를 신청하는 과정을 통해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을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본다"고 하면서 "남북관계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민간차원의 교류협력도 독립적인 중요 영역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완곡하게 민간교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엄 처장도 "북은 제재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북에 필요한 물자가 들어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제재면제 승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하면서 "북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우리의 노력에 호응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실제로 제재면제 승인을 추진해 가시적 성과를 내다보니 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이 붙은 것도 한몫했다.

국내단체들이 1718위원회에 제재면제 신청을 하려면 먼저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지원협회)에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협회는 통일부와, 통일부는 외교부와 협의하는 절차를 거치면서 많은 수정·보완을 거쳐 정식화되면 그 뒤에는 외교부를 통해 유엔대표부로 전달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아직 충분히 매뉴얼화된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건별로 겪게 되는 상황이 다르다.

핵심적으로 제재면제 승인을 받고자하는 물자의 HS코드와 각 수량 등을 정리하는 일이 중요한데, 그러자면 먼저 매우 구체적인 사업계획서가 수립되어야 한다. 막연한 사업계획으로는 작성이 어려울 수 있다. 여기까지 단체에서 서류를 준비하면 지원협회는 자료 구성과 영문작업 등에 대한 지원을 하게 된다.

개풍 양묘장의 경우, 파이프·비닐·포트 등 각 품목에 대한 HS코드와 재질, 지름, 두께, 넓이, 필요 수량 등을 일일이 기록해야 한다. 홍 총장은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넉달정도 서류준비를 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엄 처장은 "지원본부는 4월 통일부 반출시스템에 반출승인을 올리면서 시작이 된 것인데 최종 승인이 난 시점까지 7개월이 걸린 셈"이라며 "미국에서 열린 국제회의를 계기로 직접 현장에 가서 문제를 해결한 우리민족이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고 우리도 좀 빠른 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자료준비에만 적지 않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만큼 제재면제 신청 자체도 어느 정도 활동 경험이 있는 저력을 갖춘 단체가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구체적으로 제재면제 승인이 떨어지니까 많은 꽤 많은 국내 단체들이 관심을 갖고 신청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제재면제를 받는 과정에서 정작 어려운 일은 대북제재 규정을 만들고 이행을 감시하는역할, 그리고 제재면제 승인을 하는 1718위원회가 자신들의 업무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민족은 2010년 5.24조치로 지원 중단되었던 개풍양묘장 사업 재개를 위해 양묘온실, 용기, 트랙터, 태양광발전기, 작업공구 등 80%가 제재에 해당하는 총 152개 품목에 대한 제재면제 승인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20일경 1718위원회에 신청을 했는데, 그들은 이틀정도 지난 후 몇 가지 문제에 대한 우리민족의 의견을 물으면서 한국정부를 통해 답을 주면 자기들은 바로 승인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지원본부는 평양에 있는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에 지원할 휴대용 초음파와 치아 치료를 위한 파노라마 CT, 공기청정기 4대 등을 신청해 승인받았다. 5월 23일 제재면제 신청서를 내고 6월과 9월 두차례에 걸쳐 의견을 받았는데, 내용인 즉 왜 인도적 지원이 더 필요한 지방이 아니라 평양(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현대화사업)이냐는 문제와 평양에 상주하지 않고 있는데 지원하는 의료기자재가 전용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라는 것이었다. 

평양에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 지방으로 확산까지 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며, 수시 방북을 통해 상주 모니터링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등의 설득을 거쳐 승인을 받긴 했지만 몇번이고 때려치고 싶었다는 것이 엄 처장의 후일담이다.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지난해 12월 2일 유엔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부터 받은 제재면제 승인 문서. [사진제공-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아무튼 두 사람의 결론은 시도해볼만 하고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홍 총장은 "1718위원회에서는 그동안 평양에 상주하면서 북측과 꾸준히 사업을 해 온 국제기구와 협의를 통해 지방 중심, 모니터링 방식 등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었던 반면 10년 이상 단절을 겪었던 국내 단체들에 대해서는 이해가 많이 부족했었다. 그렇다고 정부관계자들이 충분히 대변해 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며 "우리민족이 미국에 가서 그간의 과정을 직접 설명하면서 설득한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718위원회가 국제기구의 활동에 대해서는 맥락에 대한 이해까지 하고 있었지만, 국내 단체와는 제재면제 신청서류로만 접했기 때문에 이해가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

"1718위원회에서 지원본부와 우리민족 등 국내단체의 제재면제 신청을 승인한 배경에는 10월 중순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이 예견된 결렬 코스를 밟으면서 미국이 북에 대한 유화적 제스쳐를 취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상황이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잘 모르는 관계자들과 직접 부딪쳐서 어떤 식으로든 길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국제기구에서도 1718위원회의 제재면제 승인 절차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다고 한다.

대북제재 결의안에 인도 지원을 어렵게 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718위원회가 제재면제 승인을 요구하는 국제기구에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불만이 쌓였고, 지난해 3월 1718위원회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서 '제재의 부작용'에 대한 내용이 발표되었던 것도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엄 처장은 "우리가 승인받은 것은 북측에서도 달가워하지 않는 긴급구호성 물자가 아니라 개발협력성 물자이다. 이번 대북제재 면제 승인으로 실제로 해볼만하다는게 증명됐다고 생각한다. 이 일을 계기로 남북 민간교류가 활성화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