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주재로 지난 연말 28~31일 나흘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가 개최돼 결정서를 채택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은 지난 연말 이례적으로 나흘 간이나 진행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을 결의하고 경제적 자력갱생과 군사적 전략무기개발을 양대 축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당규약 개정이나 전략노선 수정, ‘새로운 길’을 명명하지 않았고, 북미협상 종결을 선언하지도 않았다. 남북관계는 언급조차 나오지 않았다. 북미협상의 판을 깨지는 않되 자력갱생의 길을 가며 ‘조건부 핵무기보유국’의 길을 걷겠다는 천명인 셈이다.

우리 정부는 1일 통일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미국과의 대화중단을 선언하지 않은 것을 평가”했다. 아울러 “북한이 “곧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을 주목하고, 북한이 이를 행동으로 옮길 경우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자력갱생과 제재와의 대결’, 북한의 선택 ‘정면 돌파’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보고에서 “조미간의 교착상태는 불가피하게 장기성을 띠게 되었다”고 진단하고 “세기를 이어온 조미(북미)대결은 오늘에 와서 자력갱생과 제재와의 대결로 압축되여 명백한 대결그림을 그리고있다”고 전제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연말시한을 제시했던 북미협상이 미국의 ‘시간벌이’로 해를 넘기게 된데 따른 결론인 셈이다. 나아가 “핵문제가 아니고라도 미국은 우리에게 또 다른 그 무엇을 표적으로 정하고 접어들것이고 미국의 군사정치적위협은 끝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대미 불신론을 펴기도 했다.

결론은 “적대세력들의 제재압박을 무력화시키고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활기를 열기 위한 정면돌파전을 강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제출한 투쟁구호가 “우리의 전진을 저애하는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으로 뚫고나가자!”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외부환경이 병진의 길을 걸을 때에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한 투쟁을 벌리고있는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으로의 복귀를 선언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제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전략노선 수정 없이 “충격적인 실제행동에로 넘어갈 것”을 선언한 것이다.

정창현 북한경제연구소 소장은 “북한이 경제건설 총력노선에서 과거 병진노선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며 “전원회의 결정서의 순서도 경제 분야부터 제시돼 있다”고 짚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위원은 “북한이 굉장히 신중한 입장을 취한 것 같다”며 “‘레드 라인’을 철회하는 급격한 방향전환 보다는 기존의 입장을 좀더 강화하는 선에서 대미 경고를 하면서도 대화 여지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조건부 핵무기보유국’ 지위 천명

▲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열린 전원회의에는 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들이 참가했고, 관계자들이 방청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정은 위원장은 “적대세력들의 제재속에서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각 방면에서 내부적힘을 보다 강화할 것”을 제기했고, 경제력과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지를 폈지만 아무래도 관심은 군사분야로 쏠리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먼저 자신들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유예 등 중대조치를 취했지만 미국은 합동군사연습과 단독제재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하고 “지켜주는 (상)대방도 없는 공약에 우리가 더이상 일방적으로 매여있을 근거가 없어졌”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누구도 범접할수 없는 무적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계속 강화해나가는것은 우리 당의 드팀없는 국방건설목표”이라면서 “이제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것”이라고 확언했다.

조성렬 자문위원은 ‘전략무기’라는 표현에 대해 “핵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고 절제된 표현을 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언급한 새로운 전략무기는 지난 12월 동창리 엔진실험장에서 실시한 엔진 시험과 연관된 무기일 가능성이 높다. 고체엔진 ICBM, 다탄두 ICBM, 전략미사일 탑재 신형잠수함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관측하고 “새로운 전략무기의 등장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명시적으로는 밝히지 않았으나 지난 2018년 4월 20일 3차전원회의 에서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중단하겠다고 한 모라토리엄 선언 중 ICBM 시험발사는 파기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조선반도비핵화는 영원히 없을것이라는 것, 미국의 대조선적대시가 철회되고 조선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국가안전을 위한 필수적이고 선결적인 전략무기개발을 중단없이 계속 줄기차게 진행해나갈 것”을 단호히 선언했다.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와 지난해 6.12싱가포르 북미정상공동성명에 따라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평화체제 구축 등이 진전되지 않을 경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역시 불가능하다는 선언이다. 즉 북한은 그때까지 핵무기보유국 지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달리 표현하면 ‘조건부(가역적) 핵무기보유국’ 선언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핵 억제력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조선립장에 따라 상향조정될 것”이라고 언급해 수위를 조절하고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국문에는 ‘상향조정’으로 언급되어 있으나, 영문에는 ‘적절히 조정’(properly coordinate)으로 표기”됐다며, 대미 메시지로 판단했다.

허리띠 졸라매고 자력부강‧자력번영 성공할까?

▲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들이 주석단에 자리잡았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정은 위원장이 7시간에 걸쳐 ‘역사적인 보고’를 통해 각 분야에 걸친 평가와 방향제시를 했지만 “정면돌파전에서 기본전선은 경제전선”임을 분명히 했고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에 필요한 수요을 충분히 보장하는 것을 현시기 경제부문앞에 나서는 당면과업”으로 제시했다.

“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지도와 전략적관리”를 위해 “내각책임제‧내각중심제를 강화”할 것과 “국가상업체계‧사회주의상업을 시급히 복원”할 것, “농업전선은 정면돌파전의 주타격방향” 등이 주요한 내용이다. 또한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현상”을 쓸어버리고 “전사회적으로 도덕기강을 강하게”세우는 문제도 제기됐다.

특히 김 위원장은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자력번영하여 나라의 존엄을 지키고 제국주의를 타승하겠다는것이 우리의 억센 혁명신념”이라고 천명했다. 김 위원장은 취임 초반인 2012년 태양절(4.15) 100주년 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하겠다고 언명한 바 있다. 그만큼 상황이 엄중하다는 뜻이다.

조성렬 자문위원은 “재작년부터 지난해 하노이까지 ‘탑 다운’ 방식으로 끌어온 상황이 어려움에 봉착한 것을 전원회의 형식을 통해서 결의를 다지는 형태”라며 “일방적 신년사가 아니라 전원회의에 참석한 간부들의 지지를 토대로 인민들을 동원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 민간 전문가는 “국제적 대북제재에 중국까지 동참하고 있어 북한 내부 사정이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안다”며 “결국 자력갱생이 북한경제에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에 따라 시간은 누구편이었는지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성렬 자문위원은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재선이 불명확한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도 놓여 있어 당분간 교착상태가 예상된다”며 “미국 대선 이전까지는 ‘현상동결 합의’(stand still agreement)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김동엽 교수는 “2020년 북한이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제시한 경제발전 등 내부적인 고민을 해소하고 조선로동당창건 75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해 2021년 어느 봄날 제8차 당대회를 개최한다면 미국 대선이 끝나고 2021년 전반기 새 정부의 진용이 갖추어진 이후 북미협상의 2라운드 시작이 가능할 수도 있다”며 “문제는 영변과 동창리가 살아 있는 북한의 핵 몸값은 지금과 다를 것이란 점”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북한은 ‘본의 아니게’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력부강의 길을 걸어야 하고, 이와 병행해 ‘조건부 핵무기보유국’ 지위를 강화하는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병진노선으로 복귀라는 평가가 나올법한 상황이다.

다만, 이전에 비해 미국의 무성의한 ‘노딜(no deal)’ 협상태도로 인해 핵무기보유국 지위 강화의 명분을 얻었고, 그간 더욱 강화된 국가핵무력을 구축을 통해 ‘몸값’을 계속 높여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2018년 ‘53년 정전체제’가 흔들릴 정도로 남북, 북미관계가 진전되다가 2019년 ‘하노이 노딜’이후 정체에 빠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2020년 북한의 ‘정면돌파전’으로 인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중앙과 지방의 핵심 간부들을 평양에 모아놓고 무려 4일간 북한의 안보 및 생존전략에 대해 설명했다”며 “만약 한국의 외교․안보․대북 라인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능력이 없다면 너무 늦기 전에 전면적으로 쇄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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