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2019년은 연말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지난해 순항하는 듯한 북미관계가 올해 2월 말 하노이 정상회담에서의 결렬로 갸우뚱거리더니 그 여파로 한반도 정세가 일 년 내내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한마디로 북미관계가 막히자 남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가 모두 경색된 해였습니다. 

북한이 ‘연말 시한’으로 미국에게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며 여의치 않을 경우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천명한 상황에서 이 며칠 안 남은 연말까지 한반도의 진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불허인 가운데, 통일뉴스는 <2019년 송년특집>으로 ①남북관계 ②북한 내부 ③북미관계 ④문재인 정부의 대북·대외정책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 문재인 대통령은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신한반도체제’는 우리가 주도하는 100년의 질서”라며 “한반도에서 ‘평화경제’의 시대를 열어나가겠다”고 천명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연거푸 열렸던 2018년과 달리 문재인 정부 3년차인 2019년은 현 정부의 대외정책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한 해였다고 평가된다. 한마디로 ‘운전자’에서 ‘구경꾼’ 내지는 ‘투명인간’으로 전락한 것.

한반도 정세의 기본축인 북미협상이 ‘하노이 노딜(no deal)’로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남북관계는 아예 꽉 막혔고, 일본, 중국과의 관계 역시 여러 난관에 부딪쳐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한국전쟁 이후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남북 분단 체제, 즉 ‘53년 정전체제’의 민낯이 가감없이 드러난 해이자, 문재인 정부의 대북, 대외정책의 한계 역시 여실히 드러난 한해였다.

‘하노이 노딜’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실종

▲ 6.30 판문점 회동은 북미 정상 간에만 이루어졌고, 제대로 된 남북미 정상의 기념사진조차 남기지 못했다.[자료사진 - 통일뉴스]

올 한해 한반도 정세는 한 마디로 ‘하노이 노딜’에 따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실종으로 요약된다.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큰틀의 합의에 도달한 북미협상은 올해 2월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결렬되고 말았다.

북미협상 프로세스가 멈춰서자 지난해 남북 정상 간의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선언의 이행에도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2차 북미협상의 진전에 따라 추진될 예정이었던 ‘평화경제 프로세스’가 작동도 되지 못한 채 좌초된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며 적극적 입장을 밝혔고, 문재인 대통령도 “돌이킬 수 없는 평화로 만들겠다”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청와대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2.27-28)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토대로 2월 28일 국가안보실 1,2차장을 바꿨고, 특히 2차장에 경제협상 전문가인 김현종을 임명해 남북 간 ‘평화경제 프로세스’ 가동에 대비했지만 전망은 빗나갔다.

대통령은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신한반도체제’를 제시하며 ‘우리가 주도하는 100년의 질서’를 언급했지만, 구체적 내용은 긴급하게 수정해야 했고, 이후 남북 정상간 합의사항인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와 철도‧도로 연결사업 등은 한발도 내딛지 못했다.

더구나 그간 진척을 보였던 9.19군사분야 합의에 따른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 사업 등도 한미합동 군사훈련 재개 등으로 인해 멈춰서면서 남북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빠져들었다.

한반도 분단구조, 즉 ‘53년 정전체제’의 본질이 ‘북-미 간 대결구도’임이 명백하게 드러난 셈이다. ‘하노이 노딜’과 이후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 정부를 불신하게 된 북한은 대놓고 문재인 정부를 조롱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재인 대통령의 8.15경축사에 대해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광복절과는 인연이 없는 망발을 늘어놓은 것”이라고 비난하며 “우리는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을 그었다.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는 조롱까지 덧붙였다.

한 발짝도 못 내디딘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

▲ 올해 남북관계의 가장 상징적인 이슈로 등장한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관광 재개는 한걸음도 진전되지 못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0월 금강산관광지구 현지지도를 하면서 남측 시설물 철거를 지시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올해 남북관계의 특징은 북한의 ‘한국 패싱’이 어느 때보다 두드러졌다는 점일 것이다. 북한은 북미협상에 올인했고, 한국 정부를 지렛대로 삼는 대신 철저히 무시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북미 정상의 6.30 판문점 회동에서 드러났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과 3자회동을 강력하게 요청했지만 북측은 철저히 북미 양자 정상회담 모양새를 원했고, 제대로 된 남북미 정상의 기념사진조차 남기지 못했다.

북미협상 결렬의 여파로 한미합동 군사연습이 재개되고 대북제재도 더욱 강화되는 국면에서 문재인 정부는 상황을 돌파할 힘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남북관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이슈로 등장한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관광 재개는 대북제재 문턱에 걸려 한걸음도 진전시키지 못했다. 한미워킹그룹은 남북교류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로 인식될 지경에 이르렀고, 유엔사 역시 사사건건 남북교류에 브레이크를 거는 방해자로 등장했다. 심지어 올해 민간 차원의 새해맞이공동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금강산을 방문한 기자들은 노트북조차 가져가지 못했다.

지난 4월 김연철 통일부장관이 임명되면서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의지를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왔지만 김 장관 역시 원론적 의지 표명 이상 진전된 실천을 보여주지 못했고, 특히 북측의 호응을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민간 통일운동진영은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범국민운동본부’를 구성해 정부를 압박했지만 현실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미국 승인 없이 한국은 대북 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해 ‘승인’ 발언이 파문을 일으켰지만, 이것이 냉엄한 현실이라는 것이 올해 입증된 셈이다.

마침내 김정은 위원장은 금강산관광지구 현지지도를 통해 남측 시설의 철거를 지시하는데 이르렀고, 정부는 어떤 대응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일 외교의 한계, 지소미아 연장과 ‘문희상 안’까지

▲ 연말 중국에서 진행된 한중일 정상회담 계기에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핵심 쟁점들에 대해 뚜렷한 합의점을 내놓지 못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올해 한국 정부의 대외 정책에 있어서 가장 부각된 사안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보복조치와 이에 대응한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GSOMIA,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 유예조치였다.

일본 아베 정부는 과거사 문제를 이유로 경제보복조치를 꺼내 들었고, 한국 문재인 정부는 지소미아 카드로 강력히 대응했지만 미국의 중재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으로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시키자 8월 2일 “일본 정부의 조치가 우리 경제를 공격하고 우리 경제의 미래성장을 가로막아 타격을 가하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이라고 결연한 의지를 표명했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8월 22일 지소미아 종료 선언 다음날 우리측 고위급 특사 일본 파견 등을 공개하면서 “일본 측의 대응은 단순한 ‘거부’를 넘어 우리의 ‘국가적 자존심’까지 훼손할 정도의 무시로 일관했고,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정작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발표는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나서 “우리 정부는 언제든지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의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 2019년 8월23일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하였으며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이해를 표하였다”면서 “한일 간 수출관리정책 대화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일본 측의 3개 품목 수출 규제에 대한 WTO 제소 절차를 정지시키기로 하였다”고 발표했다.

‘조건부’라는 단서가 남아있긴 하지만 기존 강경대응 기조에 비하면 용두사미로 꼬리를 내린 셈이다.

더구나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에 대한 한일간 인식의 간극이 큰 가운데, 문희상 국회의장이 발의한 이른바 ‘문희상 안’이 추진되고 있어, 사실상 강제징용 피해자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에 대한 해법이 박근혜 정부 당시로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7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는 외교적 협의 과정에서의 정치적 합의이며 이에 대한 평가는 정치의 영역에 속한다. 이 합의가 피해자 법적지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에서 지난 2015년 12월 28일 체결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합의가 법적 효력이 없다는 판결이다.

사법부의 잇단 판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부가 이를 실현할 의지나 힘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 수 밖에 없는 형국이다.

후퇴한 북방정책, 틈 메운 남방정책

▲ 지난 11월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는 남방정책의 성과로 꼽히지만 김정은 위원장 초청은 성사되지 못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문재인 정부는 북방정책과 남방정책을 대외정책으로 두 축으로 삼아 임기 초반에는 주로 북방정책에 주력했으나 북미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결국 북방정책은 빈 구호가 되고 말았다. 올해 부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그나마 남방정책의 성과로 평가된다.

북미협상에 이어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미중 무역전쟁의 암운은 한반도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행렬에서 몸을 뺄 여력이 부족했고, 이에 따라 한반도 사안에서 중국의 역할 역시 미미했다. 북한이 드러내놓고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에 대한 실망감도 컸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에서 “한반도의 종단철도가 완성되면 지난해 광복절에 제안한 ‘동아시아 철도공동체’의 실현을 앞당기게 될 것”이라며 “그것은 에너지공동체와 경제공동체로 발전하고, 미국을 포함한 다자평화안보체제를 굳건히 하게 될 것”이라고 제시했지만 모두 구상에 머물렀다.

더구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문제로 중국이 한국에 취한 사실상의 제재 조치들도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중일 정상회담을 위한 연말 방중에서도 가시적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한미동맹에 발이 묶여 한미합동 군사연습 실시 등으로 중국의 한국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오히려 미국의 한국내 중거리미사일 배치 요구를 한국이 수용할 가능성마저 점쳐지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그나마 한-아세안 수교 30주년을 맞아 문 대통령은 중국에 이어 우리의 두 번째 교역상대가 된 아세안 10개국을 순방하며 남방정책 전도사로 나섰고, 부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11.25-26)와 한-메콩 정상회의(11.27)로 결실을 거뒀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채택된 공동 비전성명은 “사람, 상생번영, 평화의 3대 축에 기반하여 한-아세안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보다 강화하고 심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한민국의 신남방 정책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아세안 2025」 실현을 위한 아세안의 노력에 대한 지지 등 아세안 공동체 구축에 대한 대한민국의 기여를 인식”하고 있음을 명시했다.

문 대통령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했고, 정세가 여의치 않자 특사파견을 요청했지만 북측은 호응하지 않았다.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점 삼아 정세를 일거에 뒤집은 문 대통령의 ‘뒷심 외교’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은 셈이다.

통일외교안보라인의 무기력과 국정의 총체적 난국

▲ 문재인 대통령은 2월말 국가안보실 1,2차장 교체에 이어 4월 김연철 통일부 장관을 임명했지만 통일외교안보라인의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하노이 북미타결을 전제로 이루어진 국가안보실 1,2차장 인사는 하노이 노딜로 방향을 잃었고, 교체된 통일부 장관도 남북관계의 단절을 풀어내지 못했다. 교체설이 꾸준히 제기돼 온 정의용 국가안보실 실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자리를 지킨 가운데 통일외교안보라인에서 새로운 동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심지어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특보)의 미국 대사 지명이 미국측 반대로 무산된 것은 주권국가로서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미국측 기류를 전해 들은 문 특보가 고사했다는 후문이지만 미국의 준식민지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올 법한 심각한 사안임에 틀림없다.

공무원들은 복지부동하고 안보실과 관계부처 장차관급 고위인사들도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한 가운데 시간만 흐르면서 한국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당사자라는 말이 무색하게 됐고 북한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는 가혹한 평가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이같은 가혹한 평가가 통일외교안보 분야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온 나라가 휘청거린 ‘조국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난 문재인 정권의 무기력이나 올해 내내 광화문 광장이 태극기 세력에 뒤덮이더니 마침내 국회까지 난입한 사건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통일외교안보 분야가 어느 분야보다 국민의 지지를 얻고 총의를 결집해야 한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이 국내의 보-혁갈등에 의해 제약받고 있는 냉엄한 현실은 애써 무시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2019년은 이른바 ‘촛불 민심’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대외정책에서 총체적 난국을 면치 못한 해로 기록될 것이며, 현실을 직시하고 심각한 자기성찰을 거쳐 통일외교안보라인을 재정비하고 내부 결집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국제적 제재와 상관없는 영역부터 과감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는 한편 한미동맹이나 북미협상에 대해서도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내고 명실상부한 한반도 운명의 주인으로서 행동에 나서는 길만이 올해의 수모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수정, 30일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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