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2019년은 연말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지난해 순항하는 듯한 북미관계가 올해 2월 말 하노이 정상회담에서의 결렬로 갸우뚱거리더니 그 여파로 한반도 정세가 일 년 내내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한마디로 북미관계가 막히자 남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가 모두 경색된 해였습니다. 

북한이 ‘연말 시한’으로 미국에게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하며 여의치 않을 경우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천명한 상황에서 이 며칠 안 남은 연말까지 한반도의 진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불허인 가운데, 통일뉴스는 <2019년 송년특집>으로 ①남북관계 ②북한 내부 ③북미관계 ④문재인 정부의 대북·대외정책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올 연말이면 1953년 이래로 남북의 삶을 옥죄이던 정전체제가 종언을 고하고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항구적인 평화체제로의 이행 문제가 당면의 구체적인 과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지난해 초부터 한반도 정세에 극적 반전이 일어나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역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올해 초만해도 2019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소기의 결론을 향해 나아가리라는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한해의 끝자락에서 목도하게되는 현실은 '성탄절에 하늘에서 떨어질 선물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일 것이다', '그렇진 않을 것이다'라는 험악하기 그지 없는 실정이다.

나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시정연설에서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미국의 입장전환을 촉구하면서 직접 언급하고 여러 차례 확인한 '연말 시한'이 다가오면서 '새로운 관계'에 대한 미국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북한이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천명한 '새로운 길'이 드디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어두운 전망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새로운 길', 준비하고 있던 계획 중 하나

상호 전략적 이해를 충족하기 위해 사상 초유의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된 북한과 미국은 어떻게 하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까? 북한이 말하는 '새로운 길'이란 무엇이며, 북미협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길일까? 앞으로 북미협상은 계속 이어지고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28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작별 악수를 하는 모습. [자료사진-통일뉴스]

북미협상이 꼬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지난 2월 27~28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합의없이 노딜(no deal)로 끝난데서 찾을 수 있다.

북한은 영변핵시설을 포기하는 대신 2016년 이후 채택된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5개 가운데 일부인 민생·민수 분야 제재해제를 요구하는 안을 제시했고, 이에 미국은 합의서 채택의 조건으로 추가적인  비핵화 즉 '하나 더'를 추가해 협상이 결렬된 것. 

포괄적 비핵화 합의, 선 비핵화 후 보상을 제시하는 미국의 주장과 단계적 비핵화, 단계적·등가적 교환을 요구하는 북한의 입장이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하게 된 셈이다. 

하노이 노딜에 대한 북한의 충격은 회담에 배석했던 당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기자회견 발언에서 그대로 전해져 온다.

"지난 시기 있어보지 못한, 영변 핵 단지를 통째로 폐기할 데 대한 제안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민수용 제재 결의, 부분적인 제재 결의까지 해제하기 어렵다는 미국측 반응을 보며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앞으로 조미 거래에 대해 의욕 잃지 않으시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이런 기회 다시 미국 측에 차려지겠는지 여기 대해선 장담 힘들다.”

급격히 냉랭해진 북미관계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통해 3차 북미정상회담을 이어갈 용의가 있다고 밝히면서 전기를 맞게 된다.

하노이 결렬 후 北의 최대관심은 '안전보장'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3차 북미정상회담을 이어갈 용의가 있다고 하면서 올해 말까지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보겠다고 밝혔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 위원장은 이 연설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을 재확인하고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북)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에서 제3차 조미수뇌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우리로서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하면서 '연말 기한', '미국의 새로운 셈법', '자력부흥', '대북적대시정책 중단', '남측 당사자론' 등 주요 개념을 두루 밝혔다.

특히 “장기간의 핵위협을 핵으로 종식시킨 것처럼 적대세력들의 제재돌풍은 자립, 자력의 열풍으로 쓸어버려야 한다”고 말해 제재해제를 기다리기 보다 자력으로 제재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미국이 세계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수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새로운 길’을 언급한 대목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북미협상은 이후 6월 30일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을 거쳐 10월 5일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으로 이어졌으나 하노이 결렬 이후 북의 달라진 입장, 탄핵과 대선 레이스에 돌입한 트럼프 대통령의 상황으로 인해 협상은 다시 난항에 빠져들었다.

스톡홀름 실무협상에서 북한은 하노이에서 제시한 제재해제 조건이 아니라 지금까지 북이 선제적으로 취한 △핵·미사일 시험중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미군유해 송환 등에 대한 미국의 신뢰조치를 요구했다. 

미국은 영변핵시설 폐쇄와 우라늄농축 종료에 대한 상응조치로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개소 외에 석탄과 섬유류 수출 36개월 유예 등의 조치를 제시했으나 북은 △한미군사연습 중단 △전쟁장비 반입중지 △싱가포르 회담 이후 취해진 15개 제재 해제 등 안전보장 조치를 요구했다.

한마디로 대북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고 체제안전을 보장하라는 것. 또 비핵화 수준에 맞게 단계적으로 이행 가능한 상응조치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실무협상 결렬 직후 북한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장애물들을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제거될 때" 완전한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혀, 미국을 향해 말한 '새로운 셈법'이 '안전보장'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북미정상이 합의한 실무협상이 또 다시 결렬되자 북한은 대선을 앞둔 트럼프 행정부가 '새로운 셈법'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해 자력갱생과 군사력 강화를 재차 강조했다.

4월 시정연설에서 이미 장기전 태세를 천명한 김 위원장은 그 뒤 20차례 이상 군사분야 공개 활동을 강화하고 10여 차례 이상 발사체 시험을 실시하는가 하면, 실무협상 이후에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비롯해 김계관 외무성 고문, 김영철·리수용 당부위원장,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박정천 군 총참모장 등 인사들이 19차례 이상 대미 메시지를 발표하는 등 지리한 답보상태에서 '한미합동군사연습 중단'과 공격형 무기 도입 반대 등 '안전보장' 요구를 집요하게 제기했다.

美 '새로운 셈법' 없는 한, 北 '새로운 길'은 불가피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1월 28일 국방과학원에서 진행한 초대형방사포시험사격을 참관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이에 따라 북한은 12월 하순 소집될 제7기 제5차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새로운 길'에 대한 결정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

핵보유국 지위를 재확인하고 북미 비핵화협상을 잠정 중단하며, '자위적 국방력 강화 차원의 전술·전략무기 개발'을 지속하고, 중국·러시아 등 국제연대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자력으로 경제건설에 집중하여 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완수하는 것 등이 '새로운 길'의 골자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해 4월 제7기 제3차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ICBM 시험발사 중지를 결정했을 뿐이기 때문에 영변 핵시설의 핵물질 생산과 동창리 발사장 엔진시험 등을 통해 핵무력의 질량적 증대를 과시할 수 있으나 당장 ICBM 발사 등 이른바 레드라인을 넘는 결정은 생각하기 힘들다는 것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사항이다. 

미국과 적대적이지 않은 새로운 관계를 목표로 하는 북으로서는 적절한 수준의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최소한 현상유지는 되어야 하는 범위안에 '새로운 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말 제5차 전원회의에서 핵·ICBM 시험발사 중지 결정을 되돌리고 김정은 위원장이 내년 신년사에서 이에 입각해 '새로운 길'을 천명할 경우 ICBM 발사 카드도 테이블 위에 올려질 수 있다.

다만, 6차까지 진행한 핵실험은 기존 데이터를 근거로한 시뮬레이션 만으로도 기술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어쩌면 북의 '새로운 길'은 연초 신년사에서부터 계획이 다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다만 남측 당국에 대해 북미협상의 중재자나 촉진자가 아니라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4.27, 9.19합의 이행에 나설 것을 줄곧 요구했던 북으로서는 북미에 앞서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나설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점은 아쉬울 뿐이다.

내년 '국가경제발전5개년전략' 성공 선포할 것

▲ 지난 4월 1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 모습. 12월 하순 제5차 전원회의 소집을 예고했지만 아직 일정은 공지되지 않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렇다면 북한 내부 사정은 어떨까?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회의에서 사회주의 헌법 수정 보충을 통해 국무위원장의 권능을 확대·강화하여 김 위원장을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영도자로 부각한 북한은 내년 당 창건 75돌을 맞이한다.

최근 북한은 국기, 국장 등 국가 상징을 강조하고 있고, 국화, 국조, 국수는 물론 국견, 국주에 이르기까지 국가 상징을 확장하고 있다. '우리 민족 제일주의'에 이어 '우리 국가 제일주의'를 내세우며 국제사회에서의 '보통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급한 국정 지표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마지막 해인 내년에 가시적 경제성과를 내놓는 것이다. 

북한은 내년에 자력갱생 기조 아래 과학기술 중심의 경제발전 전략을 추구하면서, 제재와 무관하게 추진할 수 있는 관광사업 확대와 대규모 건설을 통한 경제부흥 효과를 과시하고 이같은 가시적 성과를 기초로 질적 지표와는 상관없이 어쨌든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목표 달성을 대내·외에 선포할 것이다. 최근들어 북한에서 자력갱생을 넘어 자력부흥과 자력번영의 구호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북한 경제는 제재 장기화에 대응하는 과정에 축적된 내부의 인적 및 물적 자원과 금융, 과학기술역량에 기반한 자력갱생 체제 구축, 공장·기업소와 농장의 자율성을 높이는 개혁 조치를 비롯해 제재 극복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며, 제재로 인한 외화수입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시장물가와 환율 등 거시경제의 안정세는 지속되고 있다는 평가이다.

앞으로 삼지연지구,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양덕온천문화휴양지 등이 모두 열리게 되면, 북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국가적 차원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또 제재 영향에서 벗어나 인위적 경기부양을 위해 생산·소비·투자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일련의 조치를 취할 뿐만 아니라 경제활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기업의 자율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조치를 발전시켜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 지난 12월 2일 2단계 공사를 마치고 완공한 삼지연군 삼지연읍지구 전경. [통일뉴스 자료사진]

여기에 북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지역 정세의 안정을 희구하는 중국·러시아와 교역을 꾸준히 늘려나가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되고 있다. 내년에도 북한은 제재외 품목을 중심으로 중·러와 교역 확대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특히 올해 30만명에 이르는 중국 관광객이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원료와 연료, 생필품 등의 원활한 공급이 어느때보다 절실한 상황에서 중국과의 교역은 당분간 북한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최근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북한 해외근로자 송환 규정 폐지 등 안보리 대북제재 일부 완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한 것도 북에는 우호적인 환경으로 꼽힌다.

▲ 2019년 북한 주요 일지[편집-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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