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우표가 태어난 지 130여년. 북한은 우리 민족의 우표역사를 어떻게 볼까? 재일 <조선신보>가 지난 11일 우리 민족의 우표역사를 소개해 주목을 끈다.

신문에 따르면, 우리 민족의 우표가 발행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인 19세기 80년대부터.

당시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들은 부르주아혁명의 개척자들로서 나라를 근대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벌렸는데, 우편제도의 근대화도 그들이 내놓은 목표의 하나였다.

이들 개화파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하여 1884년 4월 22일(음력 3월 27일) 조선에서 처음으로 근대적인 통신기관인 우정총국이 설립되게 되었으며 그 총관으로 개화파의 중요 인물이며 조선우표의 첫 창시자인 홍영식(1855~1884년)이 임명되었다.

홍영식은 우정총국 신설과 관련하여 ‘개략장정(규정)’을 작성하였으며 1884년 7월 22일(음력 9월 11일)에는 우정사업을 개시하기 위한 준비로서 체신사업과 관련한 각종 규정과 세칙들을 작성하고 우표를 발행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 추진하였다.

▲ 조선의 첫 우표 '문위[사진-조선신보]

그리하여 1884년 11월 18일(음력 10월 1일)에는 첫 우표인 ‘문위’우표 2종이 발행됨으로써 근대적인 우편활동이 개시된 것.'

여기서 ‘문위(文位)’우표라는 것은 당시 화폐단위가 ‘문(文)’이라는 데로부터 붙은 이름이었다.

이렇게 첫 우표가 나온 후 명성황후 세력의 재집권 10년 동안에는 우표가 발행되지 않았으나, 1894년에 갑오개혁이 단행되어 김홍집 내각이 들어서 그 다음해인 1895년 7월 22일에는 푼단위의 태극보통우표 4종이 발행되고 2차에 걸쳐 인쇄되었다.

1897년에는 나라의 국호가 달라진 것과 관련하여 태극보통우표에 ‘대한’이라는 글을 첨쇄한 우표가 4종 만들어졌으며, 이 시기에 만국우편동맹에도 가입하였다.

1899년 5월 1일에는 신문우편에 사용하는 1푼짜리 우표 2종이 태극보통우표에 1자를 첨쇄하는 방법으로 발행되었다.

1900년 1월부터 1901년 5월까지는 화가 지창한이 도안한 14종의 이화보통우표가 농상공부 인쇄국과 전환국의 인쇄로 발행되었으며 국제우편이 실시되었다.

▲ 고종황제 즉위 40년 기념우표. [사진-조선신보]

특히, 1902년 10월 18일에는 조선 26대 왕인 고종황제 즉위 40년 기념우표 1종이 발행되었는데, 왕관이 그려져 있는 이 우표는 최초의 기념우표로 널리 알려져 있다.

1884년부터 1903년까지 발행된 우표는 모두 37종이며 여기에 덧인쇄한 우표 10종을 포함하여 47종이 발행되었다.

▲ 갑오개혁 후 발행된 우표와 엽서들. [사진-조선신보]

이후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책동으로 조선우표들은 1909년 8월 31일까지 잠정적으로 사용되다가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해방과 분단 이후 북측 지역의 경우, 우표는 1946년 2월 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창립돼 그 안에 체신국이 우표발행사업을 맡으면서 발행하게 되었다.

▲ 북한 최초의 우표 '삼선암'과 '무궁화' [사진-조선신보]

그리하여 북한에서는 1946년 3월 12일에 ‘무궁화’와 ‘삼선암’을 주제로 한 2종의 첫 우표가 태어나게 된 것.

이어, 신문은 “1946년 8월 15일 조국해방 1돌을 맞으며 처음으로 김일성 주석님의 영상을 모신 기념우표가 발행되었다”면서 “이때부터 모든 조선우표들이 수령의 혁명사상을 구현하고 수령의 권위를 옹호하며 빛내어나가는 주체형의 우표로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고 알렸다.

▲ 김일성 주석의 모습이 들어간 기념우표. [사진-조선신보]

아울러, 신문은 “해방 후 새 조국건설시기에 모두 30종의 우표가 발행되었는데 ‘땅의 주인’, ‘로동법령실시 2주년기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정부수립기념’ 등 우표들은 공화국북반부에서 이룩된 거대한 사회경제적 변혁과정을 기념비적으로 펼쳐보였다”고 평했다.

한편, 북한의 조선우표박물관 연구사는 “식민지로부터 갓 독립된 나라들에서는 대체로 발전된 나라들에 의존하여 우표를 발행한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 우표들은 첫 우표로부터 자체의 힘과 기술, 자재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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