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역대급이다. ‘이전 10년’의 정부를 무색케 하는 증가율이다. 지난 2년 반 동안 무려 10조 이상이 증가했다. 2020년에는 50조를 넘어서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게 된다. 무엇이냐고? 바로 국방비를 말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방비는 숨 가쁘게 증가했다. ‘이전 10년’의 정권이 증대시킨 국방비와 비교해도 과연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말하는 정권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이 정도이면 지난 해 남북이 합의한 한반도의 평화, 군사충돌의 방지 등을 무색케 할 정도이다. 군사적 신뢰를 넘어서 군비통제와 군비축소 등을 전망했던 지난해의 합의는 아예 안중에 없어 보인다.

과거에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이라는 명분도 있었지만, 지금의 국방비 증대의 명분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과거의 군비증강의 명분이 주로 북한의 위협에 있었다면, 지금 문재인 정부의 국방비 증강의 명분은 주변 정세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 코르나이라는 학자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한 눈으로는 계획 당국을 쳐다보고, 다른 한 눈으로는 시장을 바라보는 이상한 현상을 지적했다. 이를 약간 비틀어보면 지금의 정부는 한 눈으로는 ‘평화’를 바라보지만, 다른 한 눈으로는 ‘힘에 의한 평화’라는 고전적 등식에 매달려 군비증강에 매달리는 이상한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할 것이다. 결과는 세상을 똑바로 보지 못할 뿐이다.

이 대목에서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과연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놓고 실망은 누구의 몫일까? 일전에 평양에서 치러졌던 남북의 월드컵 예선 경기를 놓고, 무관중 경기에 중계진도 응원단없이 진행된 모습을 보고 ‘실망스럽다’고 한 인사들이 과연 위의 문제를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지난해 우리는 3번에 걸친 정상회담과 군사분야 합의서를 통해 그토록 원했던 한반도의 평화, 비핵화 등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품었다. 해마다 한반도를 긴장으로 몰아넣었던 한미군사훈련도 중지되고, 남북이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비무장지대의 말 그대로의 ‘비무장화’(혹은 평화지대화)를 약속했건만, 그 이면에는 역대급 국방비 증대로 오히려 상대방을 자극하고 있으며, 한미군사훈련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또한 한편에서는 주한미군을 비롯한 역대급 방위비분담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이래서는 평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실천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눈에는 북의 연이은 방사포 발사와 로켓 발사만이 눈에 들어오지만, 북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1년 국가예산을 훨씬 상회하는 국방비를 지출하고도, 이것이 부족해 향후 5년간 300조에 가까운 군비증강을 계획하고, 이를 공공연하게 밝히는 남의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미국산 무기를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구입하면서도, 정작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제재 조치에 대해서는 미국에 한 마디도 못하는 우리의 처지를 북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미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 결과는 ‘금강산 관광 시설’을 싹 들어내라는 것으로 돌아왔다. 말 그대로 ‘종속의 대가’로 받아든 것 치고는 너무나 실망스럽지 않은가?

일부의 사람은 이 정권이 북에 대해서는 관대하다고들 한다. 이러한 평가는 현 정권을 ‘종북’의 프레임으로 몰아가려는 이데올로기적 편견이 다분하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한다면, 현 정권은 북에 대해서 관대한 것이 아니라 ‘아주 강경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지는 현 정권의 모습은 연 50조원이 넘는 국방비를 통해 여전한 힘의 논리를 앞세우고 있으며, 이를 더욱 강화할 것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탈냉전의 한반도 평화를 말하지만, 실상은 냉전의 시대에 횡행했던 전형적인 힘의 논리를 앞세워 상대방을 압박하는 결과밖에는 가져올 것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는 이미 역사적 경험을 통해 한반도에서 오히려 갈등과 적대의 결과만을 가져왔다. 과거 냉전의 시절이 그랬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선비핵화’와 ‘힘에 의한 굴복’ 정책이 전쟁의 위기를 부채질해왔음을 불과 10여 년전에 경험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현 정권의 모습도 적어도 국방비 측면에서 보자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물론, 현 정권이 힘에 의한 북의 굴복을 추진한다거나 한반도의 갈등과 대결 구조를 강화시키고자 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구조,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간의 불신의 구조, 동북아시아의 정세 등에 따라 이를 압도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적 여건이 크게 작용하고 있고, 그런 만큼 현 정권의 고민도 깊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말 그렇다면 실망은 북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실력 부족’으로 향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담대하고도 창의적인 셈법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선제적인 대응은 커녕, 일을 터졌을 때 이를 수습하기 바쁜 모습만이 보여진다. 이래서는 ‘실천의 행동’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변명’의 실력만이 늘어날 뿐이다. 그리고 그 실망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되고 말 것이다.

현 정권이 처한 고민과 어려움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러한 고민과 어려움이 상황에 대한 정당성을 저절로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고민과 어려움을 해결하라고 촛불을 들었고, 권력을 손에 쥐어 준 것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평화를 말했다면 평화의 행동을 보여야 하고, 신뢰를 말했다면 신뢰의 행동을 보이는 것이 정상이 아니겠는가?

더 이상 ‘밖을 향해’ 실망스럽다고는 하지 말아야 하겠다.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문학박사, 2001)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방문연구원(2002-2003)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위원(2004-2006)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원(2007)
현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주요저서로 북한의 개혁·개방: 이중전략과 실리사회주의(2004), 김정일 리더십 연구(2005), 서울과 도쿄에서 평양을 말하다(2008), 북한과 미국: 대결의 역사(번역서, 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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