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노 / 재미동포, 워싱턴 시민학교 이사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로 실망을 금치 못했던 우리는 이번 스톡홀름(10/5) 북미 실무협상에 큰 기대와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스톡홀름에서도 하노이 회담 결렬 복사판이 재연됐다. 다른 게 있다면 하노이는 미국이, 스톡홀름은 북한이 각각 결렬시켰다고 볼 수 있다. 희망과 좌절을 너무도 자주 넘나들다 보니 불신 밖에 남는 게 없다고들 한다.

이번 결렬을 놓고 북미 양국의 논평은 매우 대조적이다. 북한 측 회담 대표 김명길 순회대사는 회담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 측이 빈손으로 협상에 나왔다”고 먼저 운을 뗐다. 그리고는 새로운 계산법은커녕 빈손으로 나왔다고 비난 수위를 높였다. 그는 이번 결렬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는 걸 강조했다.

한편, 미국 측의 반응은 김 대사의 발언 3시간이 지나서야 나왔다. 그것도 현장이 아닌 워싱턴에서 국무성 대변인을 통해 논평이 나왔다. 오테이거 대변인은 “미국 측은 창의적 아이디어들을 가져갔으며 북측 대방과 좋은 논의를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김 대사의 발언에는 무려 8시간 반에 걸친 논의나 분위기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양측 실무진이 온종일 논의했다는 내용이 별로 알려진 게 없고, 미국 측의 해명도 부족해 제대로 평가하긴 어렵다. 그러나 북한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미국 측이 내민 ‘창의적 아이디어’란 북한이 원하는 생존권과 발전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그래서 북한 측이 구태의연한 낡은 셈법이라고 표현했을 것 같다. 하노이 2차 붉미 정상회담 선언문 준비작업에 남북미 실무진과 같이 참여해 훌륭한 선언문을 만든 경험까지 가진 미 실무팀이 겨우 새로운 제안도 아닌 ‘아이디어’를 내놨다는 건 대화의 자세가 아니고 이번 판을 깨자는 걸로 보인다. 대화를 빙자한 무슨 불순한 의도를 노린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

한미일 언론매체나 전문가들의 회담 결렬에 대한 논평은 거의 비슷하다. 북한 측의 결렬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술책이다, 트럼프의 약점을 노린 의도적 결렬이다, 북미 간 불신의 골이 너무 깊다, 또는 북미 주장에 간격이 너무 커 기싸움을 벌인다는 등의 평가들이 있다. 모두 일리가 있고 가치가 있는 평가다. 그러나 나는 위의 논평들과 좀 달리 미국 측이 ‘지연작전’으로 회담을 의도적으로 연기했다는 진단을 내리고 싶다. ‘때’ (Timing)가 아니라 판단한 것 같다. 조금만 더 연기해서 적당한 ‘때’에 일을 쳐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회담은 실패가 아니라 연기된 걸로 봐야 맞다는 말이다.

그럼 뭘 노린 ‘지연작전’일까? 미국으로선 아직 미해결, 미수금 등 못다한 일들이 산적해 있다. 방위비 분담금을 올려 받아야 하고, 무기를 더 팔아야 하고, 한반도에 전략자산도 들여와야 하고, 아베의 무역전쟁에도 힘을 더 실어줘야 하고, 지소미아 복구도 해야 하는 등 허다하다. 3차 정상회담이 성공하면 위에 열거한 제반 과제들을 완성하는 게 미국으로선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 비핵 평화로 가장 재미를 볼 나라가 한중이고, 이걸 가장 싫어할 나라는 미일이다. 남북은 교류 협력으로 단숨에 통제불능의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고 중국도 큰 경제적 이권을 누리게 된다. 이건 미국으로선 괴로운 일이다. 이미 미일은 남북 관계 조절 착수에 들어갔다. 한중보다 북녘 땅에 먼저 발을 들여놓고 군사적 경제적 이권을 챙기자는 데엔 의견 접근을 봤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사실, 미국이 맘만 먹으면 ‘싱가포르 성명’을 이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모든 물적 인적 자원을 갖추고 있어서다. 뭘 북한이 원하고, 어느 선에서 합의가 가능하다는 걸 미국이 훤히 알고 있다. 자고로 북미 간 모든 미해결 문제는 의견 충돌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원치 않아서다. 좋은 예로, 과거 미국은 북핵 해결에 결정적 기회가 3번이나 있었다. 관심이 있는 것 같이 흉내를 내면서 마지막 순간에 걷어차곤 했다. 북핵 구실로 온갖 재미를 보는 데 도취돼서다. 웬걸, 그러다가 2017년 ‘핵무력완성 선언’이 공표되자 기절해 까무러쳤다.

누가 미국 지도자가 돼도 북핵 해결은 1순위 과제다. 차기로 북핵 문제를 넘기면 또 시간을 많이 허비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민족으로선 현 트럼프 행정부가 해결하기를 학수고대하는 것이다. 이번 유엔총회가 비핵 평화 성과의 홍보장이 될 걸로 많은 기대를 했으나 그만 헛꿈으로 끝난 건 참으로 아쉽다. 명년 초,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 전당대회가 현재로선 비핵 평화 업적 홍보 흥행을 위한 절호의 기회다. 북미 실무협상이 연말까지는 열려서 3차 북미 정상회담 날짜를 잡아야 한다. 1차로 핵 미사일 동결과 동시에 안보가 보장되는 선에서 미국이 상응조치를 과감하게 하면 된다. 미국 측이 통큰 상응조치에 난색을 표하는 꼴은 현상유지 향수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미국은 절대 손해 볼 게 없다. 북한이 약속을 어기면 언제고 되돌릴 수 있는 스넵백(Snap Back) 카드가 있기 때문에서다.

홍보와 효력 극대화를 위해 3차 북미 정상회담은 공화당전당대회 직전인 명년 1월이 좋다. 회담 장소로 평양이 최적지다. 평화를 위해서라면 적지의 수도 평양도 마다않고 달려가는 모습을 전 세계에 과시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재선에 성공할 뿐만 아니라 노벨 평화상을 목에 건 평화 대통령으로 세기의 지도자 대열에 올라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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