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

정부는 「반공법」보다 선정으로 국민을 이끌라

모든 것이 후진성을 면하지 못한 이 나라 국민의 생활조건으로는 목숨을 이어가기엔 정말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가난과 생활고에서 오는 공포는 조그마한 의욕마저 앗아가 버린다. 이러한 반면 위정자들은 한결같이 감투싸움에 나날을 보낸다. 마치 이조 오백년의 사색당쟁의 재판인 듯 불안하기 짝이 없다.

남들은 달나라 별나라로 이십세기의 문명을 자랑하건만 우리는 왜 원시적인 생활에서 의식주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지?

4.19는 젊은이의 귀한 피로 이루어진 것을 적어도 통일이 될 때까지는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으로 잊어버리려는 경향이 없지 않다.

초근목피로 목숨을 이어가는 절량농민들과 정처 없고 목적 없이 거리를 헤매는 실업자들의 아우성이 위정자들의 귓전으로는 도무지 들리지 않는다는 말인가? 정치를 잘한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잘살게 하는 것』이외에 다른 목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굶주림이 심한 사회의 제반 범죄는 나날이 늘어만 가고 이제는 신문 3면기사(사회면)를 읽기엔 흥미조차 없는 일이 아닌가. 너무나 비참하고 신경이 무딘 탓이다.

『반공』은 이 나라 국시이다. 법치엔 입법도 중하지만 질서유지엔 준법정신이 더욱 중요하다. 『열사람의 범인을 놓칠망정 한사람의 범인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 있다. 위정자는 
말하자면 요리인이며 요리는 손님인 국민의 구미에 맞게 조리되어야 한다.

독재의 패망수법을 모방한 『반공법』이란 미명으로 민주주의를 꺾지 말고 국민을 선정으로 이끄는 것이 『승공』의 길임을 알라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2가 2=이승순)

▲ 민성/정부는 「반공법」보다 선정으로 국민을 이끌라[민족일보 이미지]

民聲

政府는 「反共法」보다 善政으로 國民을 이끌라

모든 것이 후진성을 면하지 못한 이 나라 국민의 生活條件으로는 목숨을 이어가기엔 정말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가난과 생활고에서 오는 공포는 조그마한 의욕마저 앗아가버린다. 이러한 반면 위정자들은 한결같이 감투싸움에 나날을 보낸다. 마치 李朝五百年의 四色黨爭의 재판(再版)인듯 不安하기 짝이 없다.

남들은 달나라 별나라로 二十세기의 문명을 자랑하건만 우리는 왜 원시적인 생활에서 衣食住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지?

四・一九는 젊은이의 귀한 피로 이루어진 것을 적어도 통일이 될때까지는 잊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의식적으로 잊어버리려는 경향이 없지않다.

草根木皮로 목숨을 이어가는 絶糧農民들과 정처없고 목적없이 거리를 헤매는 失業者들의 아우성이 위정자들의 귓전으로는 도무지 들리지 않는다는 말인가? 정치를 잘한다
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잘살게 하는 것』이외에 다른 목적이 있어서는 안된다.

오늘날 굶주림이 심한 사회의 제반 범죄는 나날이 늘어만가고 이제는 신문 三面記事를 읽기엔 흥미조차 없는 일이 아닌가 너무나 비참하고 신경이 무딘 탓이다.

『反共』은 이 나라 國是이다. 法治엔 立法도 重하지만 秩序維持엔 遵法精神이 더욱 重要하다. 『열사람의 犯人을 놓칠망정 한사람의 犯人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 있다. 위정자는 말하자면 料理人이며 料理는 손님인 國民의 口味에 맞게 調理되어야 한다.

獨裁의 敗亡手法을 모방한 『反共法』이란 미명으로 民主主義를 꺾지 말고 國民을 善政으로 이끄는 것이 『勝共』의 길임을 알라

(서울特別市 中區 會賢洞二가二=李承淳)

<민족일보> 1961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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