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수 서옥렬 선생이 추석 명절연휴를 하루 앞둔 11일 오전 9시 30분, 광주 북구의 으뜸요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징역 당시 고문 후유증으로 한쪽 눈이 멀고 탈장에다 심장질환, 관절질환에 시달려왔다.

▲ 2001년 8월 경북대 총학생회 주최로 경북대 전자계산소 세미나실에서 열린 ‘주체사상 대토론회’에서 주제토론에 나서 입장을 밝히고 있는 서옥렬 선생. [통일뉴스 자료사진]

고인은 1927년 전남 신안군 안좌면에서 아버지 서계술 씨와 어머니 이경심 씨의 5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이주하여 미동초등학교, 경기상고를 마치고 고려대 경제학과에서 수학했으며,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인민군에 편입된 뒤 북으로 가게 됐다.

고인은 북에서 김일성종합대학교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교원이 되었고, 같은 교원이었던 강순성 선생을 만나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두었다.

1961년 8월 공작원으로 남파해 고향집을 방문한 후 월북하다가 붙잡혔다. 사형을 언도받았지만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30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1990년 출소했다.

출소 후 고인은 주로 광주에 기거하면서 생업으로 뜸 치료를 했으며, 지역 통일운동에도 참여했다.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고인에 대해 “내 부친과 징역을 함께 살았기에 스스럼없이 지냈다”면서 “10일 전에도 광주에 내려가 생전의 고인을 만났다”고 밝혔다.

권 대표는 “고인은 머리가 아주 비상하고 이론적 소양이 깊어 광주지역의 통일인사들에게 통일운동의 방향제시를 해주었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2차 송환 희망자였으며. 양심수후원회와 통일광장 등에서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을 위해 힘써 왔다.

▲ [사진출처-통일애국열사 서옥렬 선생 민족통일장 장례위원회]

빈소는 광주역장례식장 특1호실이며, 발인은 14일(토) 오전 8시 30분 장례식장에서 치른다. 고인의 장례식 명칭은 '통일애국열사 서옥렬 선생 민족통일장'으로 정했으며, 영결식은 14일(토) 낮 12시 문빈정사에서 거행된다.

(추가-오후 1시58분)

(추가2-12일 오후 10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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