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月이 오네 (2)

영령들은 새 공화국을 날카롭게 주시
= 부패하는 정치에 어린 넋은 울고 있다 =
의혈의 댓가는 언제나 찾나?

<사월혁명유족회>

○... 「四月革命遺族會(사월혁명유족회)」라는 커다란 간판이 걸린 왼편 대문기둥에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 1가 36의 1」이라고 번지를 알리는 패짝이 붙어있다. 이것마저 미웠던지 누구인가 쇠꼬챙이로 찍다만 흔적이 있다.

그 옆에 지금은 없지만 작년 이즈음에는 흰 돌에 「李起鵬(이기붕)」이라고 새까맣게 새긴 문패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독재정권의 말기에는 이승만 박사의 세력을 능가했다는 주인공이 천하를 쥐고 흔들던 본영이었다. 온갖 흉계가 그를 싸고도는 무리들에 의해 이곳에서 움터 나왔었다. 

그러나 노한 「데모」대에 의해 작년 4월 25일 밤 그는 부인 박마리아와 함께 맨발로 뒷담을 넘어 경무대에 은신했다가 그곳 별관에서 일가족 네 명이 자결하고 말았던 것이다.

○... 그 당시 「데모」대가 가장 집기를 길가에 날라다가 불사르고 집은 온통 뚜들겨 부숴졌었으나 새 공화국이 탄생하자 이 집은 「사월혁명유족회」가 임시로 관리하게 되었다.

현관을 들어서서 왼쪽으로 꾸부러든 곳에 유족회 사무실이 있다. 응접실로 쓰던 곳으로 당대의 아첨배들이 허리가 빠지도록 굽신거리던 자리다. 그러던 곳이 지금은 이 자리서 4.19희생자를 봉안할 「사월공원」을 용산공원에 건립할 것을 서두르고 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김세중 교수가 설계한 이 공원은 1억8천만환의 예산으로 5월경에 착공할 예정으로 있다. 이 사무실 바로 머리 위 2층에는 181주의 4.19 희생자의 위패와 사진이 봉안되어 있다. 이십평 남짓한 이 방은 과거의 비밀 회의실이었다. 

자유당 원흉들만이 모여들어 악정(惡政)을 꾸며내던 곳. 바로 그 자리에 지금은 꽃다운 젊은 넋들이 독재자들을 몰아내고 새공화국의 앞날을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 보안대 한복판에는 고 김주열군의 사진이 그 친구들과 나란히 놓였다. 그 오른쪽에 며칠전 경기전기공업고등학교에서 어머니가 졸업장을 받아 왔다는 최기태(崔基泰)군 사진이 기자와 함께 숙연히 머리 숙이고 있는 그의 생모 이춘남(李春南)여사를 정답게 내려다보고 있다. 최군은 동양극장 앞에서 데모를 하다가 경관에게 숱하(게) 매를 맞고 머리가 박살되어 죽어 갔다고 어머니는 눈물을 지으며 말한다.

「이기붕의 집에 영령을 모시니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빨리 사월공원이라도 세워져서 옮겼으면 좋으련만, 정부는 하나도 관심없고 정치는 점점 그릇되어 갈 뿐입니다. 부패는 늘고 이 어린 넋들은 조금도 위로를 못 받고 있습니다. 피의 댓가는커녕 넋은 울고 있을 것입니다.... 」 외딸을 잃고 지금 유족회 부녀부장으로 있는 그의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을 채 맺지 못하는 것이었다.

[사진= 공화국 앞날을 주시하고 있는 듯한 4.19희생자들의 영령(위)과 사월혁명유족회의 정문]

▲ 4월이 오네 (2) [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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