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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연방연합제 1단계에 우리는 이미 들어와 있다”

기사승인 2019.08.27  14: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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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뉴스 기획강좌②>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북 ‘남북 연방연합제 통일방안’, 2007년께 개념화 2014년 공식화

   
▲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은 지난 8일 오후 광화문 조영래홀에서 열린 '2019 통일뉴스 기획강좌'에서 '공존단계를 거친 통일 -북측 연방연합제를 중심으로'를 제목으로 강연했다. [사진 - 조천현]

“북한의 남북연방연합제 개념은 2000년도부터 북측 내부에서 논의되기 시작해서 2007년도에 개념화가 됐다. 그리고 20014년 7월에 공화국 성명으로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연방연합제라고 하는 단어가 나온다.”

‘2019 통일뉴스 기획강좌’ 제2강을 맡은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은 ‘공존단계를 거친 통일 -북측의 연방연합제 통일방안’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북측의 공식 통일방안인 남북연방연합제가 2007년께 개념화 돼 2014년 발표됐다고 밝혔다. 나아가 판문점선언으로 남북은 사실상 연합제 1단계에 진입했다고 평가해 주목된다.

정창현 소장은 21세기민족주의포럼과 통일뉴스가 지난 8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개최한 ‘통일방안을 논하다’ 기획강좌에서 북한의 통일방안 변천사와 연방연합제로의 정립, 연방연합제의 단계와 내용 등에 대해 분석했다.

먼저, 잘 알려진 대로 북측의 연방연합제는 직접적으로는 2000년 6.15공동선언 2항에서부터 출발했다고 짚었다.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합의한 대목이다.

정창현 소장은 "북측은 6.15공동선언 2항이 나오고 나서, 외무성, 대남사업부문, 선전선동부문, 이 부분들이 다 모여서 TF팀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며 ”여기서 남측의 연합제와 연방제의 공통점이 도대체 뭐냐? 그제서야 굉장히 깊이 있는 연구를 시작했다고 본다“고 관측했다.

이어 “그 결과 2007년 10.4선언이 나올 때는 북에서는 내부적으로 연방연합제라는 말을 벌써 쓰기 시작했다”며 “2007년부터 2014년까지 7년 동안 그것을 수면으로 내세우기 위해서 내부적으로 굉장히 많은 토론을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2014년 7월 7일자 공화국 정부 성명은 6.15공동선언 2항을 언급한 뒤 “북과 남은 련방련합제방식의 통일방안을 구체화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공존, 공영, 공리를 적극 도모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 연방연합제 방식 통일방안’을 공식 천명한 셈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도 “우리는 북남관계문제, 나라의 통일문제를 민족의 지향과 념원에 맞게 풀어나가려는 립장에 선다면 남조선당국을 포함한 그 누구와도 손잡고 나갈 것이다”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2016년에 36년만에 열린 제7차 당대회에서는 통일방안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고 김정은 위원장이 “북과 남은 상대방에 존재하는 서로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우에서 온 민족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련방국가를 창립하는 길”을 언급했을 뿐이다.

정 소장은 “연방연합제라는 말을 쓰지 않고 1단계는 통일의 동반자로서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단계, 이게 우리가 이야기하는 남북화해협력 단계”이며 “서로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용납하는 단계, 이게 연방으로 넘어가는 두 번째 단계. 그리고 그 단계에서 전 민족적인 높은 단계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방안’ 식의 연방제 방식으로 통일하자는 게 2016년도 7차 당대회 북측 기본입장”이라고 해설했다.

북의 완성된 통일방안,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방안

   
▲ 정창현 소장은 북측은 2014년 남북연방연합제 통일방안을 천명했지만 1980년 발표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방안'을 지금까지도 기조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 - 조천현]

이같은 연방연합제 통일방안은 어느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적 맥락에서 배태되었다는 것이 정 소장의 고찰이다.

그는 “남북이 분단된 이후에 상당히 오랜 기간 남과 북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통일방안도 기본적으로는 흡수통일 방안이었다”며 “과도적인 대책으로 잠시 남북간의 연방제를 실시할 수도 있다는, 과도적 형태의 연방제를 1960년 8월 14일, 광복절 하루전날 기념대회에서 김일성 수상이 당시 제기했다”고 되짚었다.

남쪽에서 예기치 못한 4.19혁명이 발발했고, 북측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북측이 ‘자신감’ 속에서 당장 남북총선거가 어렵다면 과도기적 대책으로 연방제를 제안했다는 평가다. 당시 북측은 연방제 영문표기를 ‘confederation(연합)’으로 했고, 그는 당시 동독의 ‘국가연합제’안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70년대 초반 미-중 간 데탕트 분위기 속에서 1972년 7.4남북공성명이 채택됐고,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고 하는 북측이 생각하는 통일의 3대 원칙을 남측과 같이 합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됐다”고 평가했다.

7.4공동성명이 무산된 이후 북측은 1973년 고려연방제를 제안했고, “고려연방제의 가장 큰 특징은 남쪽 정부를 배제하고 남북의 정당사회단체 각계각층의 인민들로 구성되는 대민족회의를 소집해서 그것에 기초해서 고려연방제를 건설하자고 하는 안으로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병행해 북측은 1974년 유엔에서 남쪽을 배제하고 북측과 미국 양자 간에 평화협정을 맺자는 수정제안을 내놓았다.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남북에서 북미로 바뀐 것이다.

   
▲ 북한이 1980년 6차 당대회에서 채택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방안을 도표화 했다. [자료제공 - 정창현]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마침내 1980년 6차 당대회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방안이 채택됐다. 그는 “39년이 지났지만 북한의 공식 통일방안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방안”이라며 “지금도 북쪽 사람들을 만나면 기본 골격은 이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방안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이 동수로 참여하는 대표에 해외대표단이 들어와서 최고민족연방회의를 구성하고 일상적으로 그 회의를 대체할 수 있는 연방상설위원회를 만들고 그 밑에 남측 정부와 북측 정부가 지역자치정부로서 기능을 하고 그리고 주요한 정치‧경제‧국방‧외교 문제는 최고민족연방회의, 최고연방상설위원회에서 논의한다. 그리고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이라는 단일 국호로 유엔에 다시 가입하자고 하는 안이 기본적으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구성안이다”라고 설명했다.

북측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방안의 4대 선결조건으로 △반공법·국가보안법 폐지, △모든 정당, 단체 합법화, △군사파쇼정권의 교체 등 군사파쇼정치 청산과 사회민주화 실현,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 등을 내세웠다.

그는 “1983년 이후 전두환 정권과 정상회담 논의를 진행함으로써 스스로 선결조건을 무력화시켰다”며 “4대 선결조건은 당시로서는 남측 정부가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들이었지만 39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보면 어쨌든 80년대 선결조건을 우리가 상당히 많이 충족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북측 내부에 두 가지 기류가 있었던 것 같다”며 하나는, 과도적 연방제, 고려연방제안,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방안으로 이어지는 기본 흐름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아니, 어떻게 전두환 정권하고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을 만들 수 있느냐.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흐름이 있어 결국 4대 선결조건이 따라 붙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또한 4대 선결조건 다음에 10대 시정방침을 발표했지만 이 역시 1993년 ‘민족대단결 10대 강령’으로 교체됐고, “민족대단결 10대강령이 훨씬 온건하고 훨씬 계급포용적”이라고 평가했다.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1993년 4월 6일)
 

근 반세기에 걸치는 분단과 대결의 력사를 끝장내고 조국을 통일하는 것은 온 민족의 한결같은 요구이며 의지이다.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전민족이 대단결하여야 한다. 민족의 운명을 우려는 사람이라면 북에 있건 남에 있건 해외에 있건, 공산주의자이건 민족주의자이건, 무산자이건 유산자이건, 무신론자이건 유신론자이건 모든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 단결하여야 하며 조국통일의 길을 함께 열어나가야 한다.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식 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고 돈 있는 사람은 돈을 내여 모두다 나라의 통일과 통일 된 조국의 륭성 번영을 위하여 특색 있는 기여를 함으로써 민족 분렬을 끝장내고 통일된 7천만 겨레의 존엄과 영예를 세계에 떨쳐야 한다.

1. 전민족의 대단결로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국가를 창립하여야 한다.

북과 남은 현존하는 두 제도, 두 정부를 그대로 두고 각 당, 각파, 각계각층의 모든 민족성원들을 대표할 수 있는 범민족통일국가를 창립하여야 한다. 범민족통일국가는 북과 남의 두 지역정부가 동등하게 참가하는 련방국가로 되여야 하며 어느 대국에도 기울지 않는 자주적이고 평화적이며 쁠릭불가담적인 중립국가로 되어야 한다.

2. 민족애와 민족자주정신에 기초하여 단결하여야 한다.

전민족은 각자의 운명을 민족의 운명과 하나로 련결시켜 민족을 열렬히 사랑하고 민족의 자주성을 생명으로 지키려는 하나의 뜻으로 단결하여야 한다. 우리 민족의 존엄과 긍지를 가지고 민족의 주체의식을 좀먹는 사대주의와 민족허무주의를 배격하여야 한다.

3. 공존, 공영, 공리를 도모하고 조국통일위업에 모든 것을 복종시키는 원칙에서 단결하여야 한다.

북과 남은 서로 다른 사상과 리념, 제도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 침해하지 말고 함께 진보와 번영을 누려가야 한다. 지역적, 계급적 리익에 앞서 전민족 리익을 도모하여야 하며 모든 노력을 조국통일위업을 이룩하는데 기울여야 한다.

4. 동족사이에 분렬과 대결을 조장시키는 일체정쟁을 중지하고 단결하여야 한다.

남과 남은 대결을 추구하거나 조장하지 말아야 하며 모든 형태의 정쟁을 중지하고 비방중상을 그만두어야 한다. 동족끼리 적대시하지 말고 민족의 힘을 합쳐 외세의 침략과 간섭에 공동으로 대처하여야 한다.

5. 북침과 남침, 승공과 적화의 위구를 다같이 가시고 서로 신뢰하고 단합하여야 한다.

북과 남은 서로 상대방을 위협하지 말아야 하며 침략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 상대방에 자기의 제도를 강요하지 말아야 하며 상대방을 흡수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6. 민주주의를 귀중히 여기며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하여 배척하지 말고 조국통일의 길에서 함께 손잡고 나가야 한다.

통일 론의와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여야 하며 정치적 반대파라고 하여 탄압, 보복, 박해,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 친북, 친남을 시비하지 말아야 하며 모든 정치범을 석방, 복권시켜 조국통일위업에 함께 이바지하게 하여야 한다.

7. 개인과 단체가 소유한 물질적, 정신적 재부를 보호하여야 하며 그것을 민족대단결을 도모하는데 리롭게 리용하는 것을 장려하여야 한다.

통일되기 전에는 물론 통일된 후에도 국가적 소유, 협동적 소유, 사적 소유를 인정하고 개인 또는 단체의 자본과 재산, 외국자본과의 공동리권을 보호하여야 한다. 과학, 교육, 문학, 예술, 언론, 출판, 보건, 체육을 비롯한 모든 부문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명예와 자격을 인정하며 공로자가 받고 있는 혜택을 계속 보장하여야 한다.

8. 접촉, 래왕, 대화를 통하여 전민족이 서로 리해하고 신뢰하며 단합하여야 한다.

접촉과 래왕을 가로막는 온갖 장애물을 제거하고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래왕의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 각당, 각파, 각계각층에게 동등한 대화의 기회를 주어야 하며 쌍무적, 다무적 대화를 발전시켜야한다.

9.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북과 납, 해외의 전민족이 서로 련대성을 강화하여야 한다.

북과 남, 해외에서 조국통일에 유익한 것은 편견 없이 지지성원하고 해로운 것은 함께 배격하여야 하며 각자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서로 보조를 같이하고 협조하여야 한다.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사업에서 북과 남, 해외의 모든 정당, 단체와 각계각층의 동포들이 조직적으로 련합하여야 한다.

10.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위업에 공헌한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여야 한다.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공을 세운 사람들, 애국 렬사들과 그 후대들에게 특혜를 베풀어야 한다. 지난날 민족을 배반하였던 사람들도 과거를 뉘우치고 애국의 길에 나서면 관용으로 대하며 조국통일에 이바지 한 공로에 따라 공정하게 평가하여야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 회의에 제출한 김일성 주석의 로작)

문익환‧임동원, ‘낮은 단계 연방제’로의 진화에 기여

   
▲ 정창현 소장의 강연 후 참석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사진 - 조천현]

실제로 그 사이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됐고, 무엇보다도 그는 “객관적으로 보면 90년을 전후해서 남북간의 힘의 역관계가 변화된 측면이 강하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남북 간에 경제적인 추세에서 남쪽이 상당히 변화되고. 특히 전두환시절 1983년도부터 3저호황에 기초해서 굉장히 한국 경제가 양적 성장을 하지 않았느냐”는 것.

그 과정에서 1989년 3월 문익환 목사가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만나 허담 비서와 ‘4.2공동성명’을 채택함으로써 “쌍방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가 누구에게 먹히지 않고 일방이 타방을 압도하거나 타방에게 압도당하지 않는 공존의 원칙에서 연방제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 선택해야 할 필연적이고 합리적인 통일방도가 되며 그 구체적인 실현방도로서는 단꺼번에 할 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 수도 있다는 점에 견해의 일치를 보았다”는 합의가 나왔다.

그는 “연방제 통일을 하는데 실현 경로에 대해서 사실은 89년도에 문익환 목사와 김일성 주석의 대화가 굉장히 중요한 결정이 된다”며 “거기에 기초해서 1991년 1월 신년사에 김일성 주석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을 공식적으로 제안하게 되는 거다”라고 말했다.

   
▲ 북측의 통일방안 변화 과정을 도표화 했다. [자료제공 - 정창현]

김주석은 91년 신년사에서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 방안에 대한 민족적 합의를 보다 쉽게 이루기 위하여 잠정적으로는 련방공화국의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장차로는 중앙정부의 기능을 더욱 더 높여 나가는 방향에서 련방제통일을 점차적으로 완성하여야 한다”라며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를 제시했다.

이에 근거해 1991년 남북 총리회담에 기초한 남북기본합의서가 만들어졌고, 기본합의서 협상 당시 남북의 두 주역 임동원-림동욱 라인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다시 만나 6.15공동선언 2항에 합의하게 됐다는 것.

그는 “북쪽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를 기본적으로 북측이 생각하는 조국통일 3대헌장에 넣지 않고 있다”며 “남북기본합의서를 북측에서는 연방제 문서가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 연합제 문서지 연방제 문서가 아니라는 거다”라고 짚었다. 조국통일 3대헌장은 △조국통일 3대원칙,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이다.

아울러 “남북회담에 나가는 대표단에게 김일성 주석이 어떻게든지 합의를 타결하고 오라는 훈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훈령을 우리가 알았다”며 “그래서 우리가 굉장히 세게 밀어붙였던 거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연합제 방식에서 봤을 때 굉장히 잘 만들어진 남북기본합의서가 만들어졌다”고 뒷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4단계 연방연합제와 DMZ 평화지대화‧철도도로 연결

   
▲ 북측의 연방연합제 통일방안을 연합제와 연방제를 각각 두 단계로 나누어 모형화 했다. [자료제공 - 정창현]

결국 2000년 6.15공동선언 2항을 거쳐 2007년 10.4선언과 지난해 4.27판문점선언, 9.19공동선언 및 군사분야합의서 등 남북 정상간 합의들이 이어졌고, 북측은 연방연합제 통일방안을 공식 입장으로 굳히게 됐다.

먼저, 그는 연방제와 연합제의 공통점에 대해 △통일의 형태가 아니라 통일의 준비과정을 규정하고 있고, △평화공존하는 과도적 단계와 느슨한 결합을 상정하고 있고, △남북 정부 간에 상설 협의체를 상정하고 있는 점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그는 “공통점이 사실 평화공존 단계를 거친다는 것 외에 없다”며 “차이점은 굉장히 크다”고 평가했다. 특히 △연방기구의 유무 △연방기구의 권한(외교권, 군사권), △상설합의체의 권한 유무를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는 남북 연합단계와 연방단계를 각각 2단계로 나누어 ① 남북연합 1단계 ② 남북연합 2단계 ③ 낮은 단계 연방제 ④ 높은 단계 연방제로 4단계에 걸친 남북연방연합제 모형을 제시했다.

남북연합 1단계는 ‘남북연합기구 추진’ 단계로 △남북정상회담 정례화 △분야별 장관급회담 △남북 의회 교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를 꼽았다. 남북연합 2단계는 △남북정상회의 △남북각료회의(실행위원회) △남북평의회 △서울,평양 공동연락사무소 설치를 들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그는 판문점선언에 대해 “단어상으로 보면, ‘평화’라고 하는 개념을 북쪽에서 다 수용을 해서 판문점선언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 안에 조항들을 보면 사실은 남북연합제에 해당되는 통일로 가는, 북측이 생각하는 연방연합제의 1단계에 해당되는 제도적인 장치들이 대부분 들어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평화와 번영이라는 형태로 강조가 돼 있지만 곳곳에 통일이라고 하는 아이콘이 숨어있는 게 판문점선언”이며 “판문점선언을 통해서 남북관계는 이제 남북연합단계에 진입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기적인 정상회담, 직통전화 연결, △고위급회담, 국방장관회담 등 개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등이 남측 표현으로 ‘남북관계의 제도화’에 해당되지만 사실상 남북연합 1단계의 제도적 장치들에 해당된다는 해석이다.

그는 “우리는 연합제 1단계에 이미 들어와 있다”며 “안 된 게 남북 의회교류”라고 짚었다. 아울러 서울‧평양 연락사무소 대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를 현실적 대안으로 평가했다.

그는 “연합기구 구성은 생각보다는 빨리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남북연합 단계가 시기적으로 굉장히 길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연합에서 연방으로 넘어가려면 우리가 이제 연방제로 넘어갈 때가 됐다는 것을 국민들한테 보여줘야 한다”며 “나는 연합단계의 가장 상징적인 사업이 DMZ 평화지대화 하는 문제와 철도‧도로 연결이라고 생각한다”고 제시했다.

이어 “지금 공동경비구역에 실질적인 비무장화는 진행됐고, 남북 간을 연결하는 통로가 개성 가는 길과 금강산 가는 길 두 개에서 철원 쪽에 하나 더 열렸다”며 “거기에다 철도‧도로를 연결해서 사람이 오고가고 물자가 오고가는 이게 사실은 제도적인 형태들 보다는 가장 핵심적인,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업”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는 연합제 1단계에 이미 들어와 있다”

   
▲ 정창현 소장은 북한의 연방연합제 통일방안 역시 가변적일 수 있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 조천현]

나아가 “연합제 2단계로 넘어가는 징표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으로 본다”는 점과 “연합에서 연방제로 넘어갈 때는 평화협정과 비핵화가 전체 단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공정이 마무리되는 단계까지 진전이 될 때”라고 점쳤다.

그는 “노래에도 나오는 ‘사회주의 조선’과 ‘자본주의 한국’이 그냥 평화공존하면서 그럭저럭 잘 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간격을 좁히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면서 평화공존이 ‘과정’이 아닌 ‘목표’로 될 수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의 ‘통일지향적 평화공존’ 의미를 되새겼다.

그러면서 “우리세대는 힘들겠지만 IT와 스마트폰으로 또는 4차혁명과 인공지능 이런 세대에 적응이 된 남과 북의 젊은 세대들, 20대 30대들이 남과 북의 주역이 됐을 때는 사회문화적인 게 아니라 그야말로 IT나 정보기술로 자연스럽게 통합이 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내놓았다.

그는 “우리가 그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현실이 더 드라마틱하게 돌아가고 있다”며 “지금 북이 이야기하는 연방연합제라고 하는 것도 과정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변화는 안 되겠지만 언제든지 가변적이라고 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남북연합의 2단계의 기간을 얼마큼 볼 것이냐가 사실 쟁점이 될 것 같다. 나는 굉장이 오래될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참석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과거‧현재‧미래 핵은 통일과 병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며 “과거‧현재‧미래의 핵도 다 협상 대상, ‘완전한 비핵화’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 배경으로 “북의 미래 청사진을 각 분야에서 만들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40대인 것 같다”며 “지금 현재 북을 움직이고 있는 신‧구세대가 있다면, 신세대들은 완전한 비핵화 부분에서 과거‧현재‧미래 핵에 대해서 미국과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거기서 문제가 되는 게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 중에 'I', 불가역적이라는 부분은 북에서 받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종적 전 통일부 장관의 ‘과정으로서의 통일 -남측 통일방안을 중심으로’ 강연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날 강좌에서 정해랑 21세기민족주의포럼 대표가 여는 말을 했으며, 세 번째 강좌는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이 ‘한반도 평화체제 로드맵과 통일방안’을 주제로 9월 5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강연할 예정이다.

‘2019 통일방안 기획강좌’는 평화3000과 6.15남측위원회가 후원하고 있으며, 무료 공개강좌로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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