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노 / 재미동포, 워싱턴 시민학교 이사

                                                                                

민족의 경사인 해방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8월 14일, 탈북 어머니 (42)와 아들 (6)이 서울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경찰 발표에 의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나 타살 흔적이 없는 정황으로 봐서 굶어죽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게 사실로 믿어지는 이유로 냉장고에 고추가루 외에 아무것도 음식물이 없었다는 점과 은행통장에는 석달전에  잔액 3858원이 인출돼서 잔고 0원 소인이 찍혀있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수도요금 미납으로 수도가 끊어졌고, 9만원 월세도 몇 달째 밀렸다고 한다.

은행에서 마지막 돈을 찾은 게 석달됐으니 죽은지 몇 달 됐다고 볼 수 있다. 조선족과 이혼한 이 젊은 어머니는 병든 아들을 수발하느라 변변한 직장을 가질 수 조차 없었고 수입이라곤 양육수당 10만원이 전부였다고 한다. 이 돈으로 두 모자가 겨우 연명만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작년 4월에도 충북 증평의 한 아파트에 사는 40대 엄마와 딸의 시신이 몇 달째 방치돼 있었다. 이들 두 모녀도 양육비10만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편지통에는 고지서와 독촉장만 잔뜩 쌓여 있었고 넉 달이나 수도 사용량이 전혀 없었다.

 2014년에도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자살사건으로 온 나라가 슴픔에 잠긴 바 있다. 저승의 길로 떠나면서도 밀린 방세를 주인에게 남기고 떠난 어머니라 더 가슴이 미어진다. 2015년, 대구에서는 지적 장애 30대 언니를 돌보던 동생이 함께 자살을 하고 말았다. 기약없이 한평생 장애언니를 보살펴야 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극단적 선택을 같이 한 것이라고 한다. 당국의 부단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닌데도 매년 자살이 줄어들기는커녕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 죽은자는 말이 없다고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한국은 하루 평균 자살 40~50명으로 세계 자살률 1위를 차지한지 오래다. ‘자살천국’이라는 오명을 달게 됐고 ‘자살이 유행’이라는 새로운 단어 까지 유행되고 있다. 자살의 동기는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생활고가 원인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일반인들에 비해 탈북자들의 자살률이 높을 뿐 아니라 각종 범죄, 마약, 심지어 매춘행위에 연루되는 경향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탈북자들이 겪는 공통된 애로는 낯선 환경 적응과 동시에 사회의 싸늘하고 냉소적인 시선이라고 한다.

탈북자면 누구나 겪어야 되는 첫 단계가 받은 정착금에서 탈북 부로커가 ‘탈북경비’라는 명목으로 떼어가는 어처구니 없는 광경을 목격하는 일이다. 그러고 나면 제2인생 정착을 하는 데에 경제적 어려움이 뒤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탈북자에 대한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은 차별,무시, 멸시, 차별로 나타나 끝내 탈북자들이 절망하고 탈선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이건 굳이 탈북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북녘에서는 자살이나 창녀라는 말 자체도 들어보지 못했을 법한 탈북자가 자살을 하거나 매춘부가 된다는 건 너무도 끔찍한 비극 중 비극이다. 무엇 보다 탈북여성들이 몸을 파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수입이 일반적으로 낮은 탓에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라고 한다. 특히 박근혜 정권하에 탈북여성들의 매춘행위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더욱 가슴 아픈 건 탈북 창녀들의 단골 손님이 주로 외국인 출신 노동자라는 거다. 박근혜는 한 기념사 (2016)에서 북주민들에게 “희망과 자유가 보장된 자유 대한의 품으로 어서 오라!”라고  연설했다. 결국 창녀가 될 자유를 찾아 ‘자유의 땅’으로 오라는 꼴이 됐다.

이명박.박근혜 정권하에서 탈북자들은 ‘어버이연합’이나 ‘엄마부대’에 단골로 일당을 받고 동원돼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왔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을 비롯 몇 개 반북단체는 한미일 반북우익단체의 지원을 받아 반북 운동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 탈북출신인 태영호 전 주영공사는 이번 모자의 아사에 대해 “북 당국과 김씨 일가에 책임이 있다”며 이 사건을 대내선전에 써먹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태씨가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다면 어렵사리 살아가는 탈북자들에게 동정을 표하고 그간 무관심했다는 걸 먼저 사죄해야 옳다.

한편, 탈북자들 중에서도 개인 혹은 단체로 촛불혁명에 가담하고 촛불정권 창출에 지대한 공헌을 한 ‘한반도민주청년연합’과 ‘남북청년나눔운동’ 등 여러 탈북단체도 있다. 이들은 끊어진 혈맥을 잇자며 남북 화해협력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탈북자에 대한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됐다. 사람은 누구나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고 동시에 그 인권이 침해돼선 안된다. 불문율이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에서 죽은 사람 시체를 몇 달째 아무도 몰랐다니, 이게 사람사는 세상이 맞느냐고 물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짐승이 죽어도 몇 달씩 방치되진 않을 것이다. 죽어서도 죽은자의 인권이 철저하게 유린되고 있다. 자살자 대부분이 다세대 아파트에 산다. 옆집이 있고, 이웃도 있고, 동네도 있다. 버젓이 사회와 국가도 있다. 죽은 사람도 어였한 사회의 일원이다. 생활고로 신음하는 걸 몰랐다, 또 멀쩡한 사람이 죽어도 몰랐다는 건 변명이다. 정상 사회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황금만능 개인주의, 인정머리 없는 사회의 민낯이다. 더불어 함께 웃고 우는 사회, 서로 나누어 갖는 포근하고 따뜻한 사회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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