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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 김현희 유엔 안보리 증인 출석?

기사승인 2019.07.12  09: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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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외교부 KAL858 문서 공개 (4) - 박강성주

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한국 정부는 KAL858기 사건 관련해 대북규탄 활동을 국내외에서 적극 펼쳤다. 국제무대를 기준으로 정부가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논의다.

1987년 12월 외무부의 국제연합과가 작성한 “KAL 858기 폭파사건의 유엔 제기 문제” 문건에서 이에 대한 계획과 고민을 엿볼 수 있다.

기본적인 문제는 당시 한국이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남북/북남은 1991년 9월 17일 유엔에 동시 가입한다). 다시 말해 ‘비회원국’으로서 유엔에 KAL기 사건을 가져갈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정부는 유엔 헌장 35조에서 근거를 찾게 된다. “유엔 비회원국이 분쟁의 당사자일 경우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수락할 경우” 비회원국도 이 분쟁에 대해 “안보리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KAL기 폭파 사건도 동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할 경우 안보리 토의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2017060056, 19쪽). 곧, 이 사건이 북쪽의 테러로 밝혀져야만 유엔 안보리 논의가 가능했다.

자백이 있기 전에 밝혀진 북의 테러범

   
▲ 당시 한국 정부는 유엔 안보리에 KAL858기 사건을 회부할 경우 마유미의 증언이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추진했던 것으로 확인된다(2017060056, 20쪽).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러면 어떻게 밝힐 것인가? 열쇠는 김현희에게 있었다. 외무부는 “북한에 의한 테러가 있었음을 증명하여야 하는 문제가 토의의 쟁점이 될 것인 바 마유미[김현희] 여인의 안보리에서의 증언문제가 대두될 것”이라고 봤다(20쪽). 이는 당시 정부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가 김현희였다고 일러준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문서의 작성 시기가 주목된다. 앞뒤 문서들을 봤을 때 이 문건은 1987년 12월 9-15일 사이 쓰여졌다고 추정되는데, 당시 김현희는 음독자살을 시도한 뒤 바레인에 있었거나 서울에 막 압송된 때였다.

아울러 “마유미”라는 용어를 본다면, 문건은 김현희라는 이름으로 자백이 시작됐다던 1987년 12월 23일 이전에 쓰여졌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문건은 김현희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 작성됐다. 유일한 증거라고 할 수 있는 김현희마저 자백을 안 하고 있던 때, 정부는 그가 북의 테러범이라고 확신했다.

이러한 믿음 아래 외무부는 “마유미 여인이 안보리에서 “북한의 지령에 따른 공작”이었음을 폭로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경우에만 안보리 제기의 실익이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안보리 토의와 관련 민간인이 증언을” 했던 예로서 198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문제로 데스몬드 투투 당시 주교가 증인으로 나왔다고 덧붙였다. 그만큼 김현희 출석을 진지하게 검토했다는 뜻이다.

또한 외무부는 “미국과 협조, 동 여인이 북한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defect) 미국에 영주할 수 있도록 하면서 자발적인 발언을 하도록” 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곧, KAL858기 사건의 유엔 안보리 논의는 김현희 출석을 전제로 계획되었고, 이는 김현희의 미국 이주까지 고려할 정도로 구체적 수준에서 추진되었다. 특히 미국 영주 문제는 정부가 안보리 논의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익 없을 것을 알고도 추진한 유엔 논의?

그런데 결과적으로 1988년 2월 KAL858기 관련 논의가 유엔에서 있었지만 김현희는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살펴본 문서를 통해서는 알기 어렵다. 증인 출석 문제는 위에서 말한 문건 하나에서만 언급되어 있을 뿐, 다른 수많은 문서에서 그 내용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혹시 정부로서는 김현희가 수사발표 당시 텔레비전 생중계로 증언을 했기 때문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논의가 열렸던 미국 현지로 가는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김현희가 증인으로 나가라는 정부의 요청을 거부했던 것은 아닐까?

어찌됐든 김현희는 유엔 안보리에서 증언을 하지 않았고, 이는 외무부가 세웠던 계획과 크게 어긋나는 것이었다. 해당 문건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부는 ‘실익이 없을’ 것을 알면서도 유엔 안보리 논의를 추진한 것이 된다.

일본에서 체포된 공작원과 김현희 속옷에 대한 의문

   
▲ 일본으로부터 전해진 보고에는 김현희 일행의 소지품에 대한 판단이 포함돼 있다(2017060056, 16쪽).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한편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가 1987년 12월 9일에 낸 소식지가 주목된다. KAL기 사건 용의자들이 북 공작원이라는 내용인데, 정보의 출처는 일본으로부터 전해진 보고다(Reports reaching Seoul from Japan).

이에 따르면 김현희 일행의 소지품들 가운데 일부가 일본에서 체포된 북 공작원의 물품들과 같다는 것을 일본 경찰이 알아냈다.

예컨대 자살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독극물 담배 필터 부분이 1973년 “미즈야마 사건(Mizuyama incident)”으로 체포된 공작원 김동일(Kim Dong Il)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준비되었다고 한다(2017060056, 16쪽). 그리고 김현희의 아래 속옷에 있던 비밀주머니가(a secret pocket was attached to the underpants) 김동일의 외투에 있던 비밀주머니와 아주 똑같은 방식으로 부착되었다고 한다.

이 부분들은 (적어도 내가 알기로)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것들이다. 일본에서 체포된 ‘북 공작원 김동일’이 그렇거니와 김현희 속옷(팬티)에 비밀주머니가 딸려 있었다는 것은 이 사건 관련해 비교적 새로운 이야기라고 하겠다. 정부 입장에서는 북과 사건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이었을 텐데 수사결과에 반영이 안 된 점이 의문으로 남는다.

박강성주 tongil@tongilnews.com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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