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4일, 친한 후배 기자와 술잔을 기울였다. 평소 실력과 배짱을 두루 갖춘, 거기에다 이 시대 기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좋은 기자라고 내심 생각하던 후배였다. 그 자리엔 우리 둘이 동시에 알고 지내는 후배 둘(한 놈은 나와 같이 일하고 있다)도 함께 있었고, 부끄럽게도 내 생일을 늦게나마(생일 하루 뒤였다) 축하한다며 무려 선술집에서 케잌을 꺼내 점화하는, 심히 부끄러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어쩔 수 없는 직업병으로(통일운동 활동가 둘, 남북문제 전문기자 하나, 통일 전공 대학원생 하나) 자연스럽게 남북문제가 화제로 올랐고, 그러다 별안간 기자 후배가 은밀히 ‘위대한’ 특종을 누설해 버리고 말았다. 바로 6월 30일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나는 역사적 이벤트가 있을 것이라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물론 당시 트럼프와 김정은이 아주 오랜만에 연애편지를 주고받으며 애정을 과시하고 있었고, G20 정상회의와 트럼프의 방한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게다가 후배 기자는 중국의 취재원을 통해 입수한 정보라는, 신빙성을 매우 높일 수 있는 근거까지 들이밀었기에 순간 술자리는 묘한 흥분으로 달아올랐다.

상상을 해봤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과연 트럼프는 어떤 퍼포먼스를 준비했을까. 지금까지 판문점을 찾았던 미 대통령들은 적지 않았다. 트럼프의 정신적 멘토라 할 수 있는 레이건 대통령부터, 사생활은 클린하지 않았던 클린턴 대통령, 그리고 북을 ‘악의 축’이라 규정하고 끊임없이 괴롭혔던 ‘화가’ 부시와 당최 왜 어떻게 노벨평화상을 당겨 받았는지 여전히 알 수 없는 ‘전략적 인내’의 화신 오바마까지 판문점을 찾아 군용 점퍼를 입고 쌍안경으로 북측을 바라보며 삿대질을 했다.

그들이 판문점을 찾아 북측을 쳐다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절거린 것은 결코 심심했거나 시간이 남아서였거나 관광차원이 아니었다. 물론 자국의 이익을 위해 머나먼 ‘속국’에 와서 열심히 복무하고 있는 서민 계급 출신이 대부분인 ‘아미’(BTS 팬들은 오해마시라)를 격려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속국인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 그리고 적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메시지의 핵심은 냉전시기였거나 아니었거나 큰 틀에선 거의 같았다. “감히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말라(이는 남북 모두 해당되었다)”, “좋은 말로 할 때 항복해라(핵을 포기해라)”, 그 뿐이었다. 자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큰 차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는 북측에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우리 정부는 침묵했거나 황송해했다. 누추하고 게다가 극도로 위험하기도 한(!) 최전방까지 친히 주군이 행차하셨으니 오죽했을까.

그렇다면 2019년 6월 30일은 어떠한 이벤트가 만들어질까. 상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승천했다. 그런데 역시나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북측은 24일 이후 미 정부의 행태를 비난하며 우리 정부까지 돌려까는 신공을 시전했고, 결코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점점 기대는 사라져갔고, 내가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멘토마저 판문점 3자 회동에 회의감을 나타내면서, 비관은 짙어져 갔다.

멘토의 이야기는 단순명료했다. 기존 북의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실익도 없는데 구태여 트럼프와 문재인의 지지도 상승을 위해 ‘쇼’에 동참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설명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해석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북은 하노이 이후 지금까지 그 어떤 성의 있는 행동도 양국(미국과 우리)으로부터 전달받은 적이 없었다. 우리가 식량지원을 위해 국제기구에 800만 달러를 공여한 것을 성의 있는 행동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북이 보기에 그것은 ‘불순한’ 행동일 뿐이었다. 북은 식량지원이 아닌 북미관계 진전을 위한 지원을 바라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가 또 한 번 돌발발언을 했다. 방한기간 중 판문점을 방문하게 된다면 김정은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황당했다. 그리고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심하게 말하면 호출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일국의 정상을 하루 전에 호출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김정은이 판문점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별 수 없이 들었다. 비록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나와서 3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비참하지만 현실적인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복잡하면서도 씁쓸한, 바라면서도 그렇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그리고 결과는 여러분이 보시는 대로다. 제일 먼저 특종을 터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후배 기자는 꽤 괜찮은 취재원을 두었다는 것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은 2019년 6월 30일의 초대형 이벤트를 꽤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오늘을 특별한 날로 기억할 것이다.

오늘(6월 30일) 남북·미 세 정상은 어떤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을까. 트럼프는 무엇보다 재선을 위해 오늘 쇼가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 계산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관심 순위에서 한참 뒤에 있을 것이고, 북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도록, 아니 김정은이 얼마나 더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할 수 있을지 고민했을 것이다. 그것을 통해 민주당(미국의)이 빅엿을 먹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심정은 차마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는 오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역량이 닿는 한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자국의 땅에 타국의 군대가 반세기가 훨씬 넘도록 주둔하고 있는 것에 대해 대다수 국민들이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자국의 영토를 자국의 국민들이 선출한 대통령이 마음대로 찾아갈 수 없는 그런 한심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그는 오늘 최선을 다했다.

그럼, 김정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는 30일 아침 일어나 판문점으로 향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트럼프와 헤어진 뒤 어떤 마음으로 평양으로 돌아갔을까. 어떤 마음으로 잠을 청했을까. 만약 지금의 나처럼 이 시간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이는 오늘 사건에 대한 가슴 벅차오름도 물론 있겠지만 남북 정상들이 오늘 느꼈을 심정에 대한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 슬픔이다.

트럼프가 행차하신다고 그렇게도 버티고 버텼던 농성 천막을 몸소 이동해주신 태극기부대 및 ‘무개념 쓰레기’ 정치인들과, 끝끝내 오늘 사건을 폄하하고 싶어 환장하는(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환장할) 제1야당 무리들과 버러지 언론처럼, 애초 거론하기조차 시간 아까운 족속들은 결코 죽을 때까지 느낄 수 없는 감정, 그것은 바로 슬픔이다.

국내 최고의 북 전문가도 예상치 못한, 그야말로 파격을 보여준 것은 트럼프가 아니라 김정은이었다. 단기기억상실증이 아니라면 30일 만남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 것이다. 김정은이 다시 트럼프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사이 문재인 대통령은 끊임없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김정은과 트럼프에게 호소했다. 전 세계에 호소했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자신의 이해관계를 따져 호응한 것뿐이다. 핵을 만들어 신경 가렵게 하는 지지리 가난한 적국(게다가 중국과도 친한) 하나와 오랫동안 말 잘 들으며 충실히 신하의 노릇을 해온 속국 하나의 눈물겨운 모습에 감동한 것이 아니라, 제 이익을 따져 행동한 것뿐이다. 그 뿐이다.

때문에 나는 기쁘고도 서럽고, 희망을 가지면서도 분노를 놓을 수 없다. 그리고 평화를 누리면서도 그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얼마나 눈물겹고 치열한 것인지 모른 체하고 외면하는 이들이 야속하다.

노예는 자신이 노예인 것을 모를 때까지만 노예이다. 자신이 구속당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노예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닌 투사가 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힘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그냥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한다고 떠드는 전문가, 지식인들이 넘친다. 그 개자식들은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고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당연시한다. 아니, 그것들을 끝내 지키고 물려줘야 하기에 더더욱 게거품을 물으며 노예의 길을 걸어간다. 하지만 나는, 그리고 대다수의 우리는 그렇지 않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생겨난 이래,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생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에 나서고 있다. 대다수 북 전문가들이 오늘 사건을 예상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 북이었다면, 과거 북의 지도자라면 죽어도 하지 않았을 행동을 오늘 그는 한 것이다.

때문에 두렵다. 트럼프는 오늘도 아무런 선물을 김정은에게 주지 않았다. 립서비스는 이어지지만 행동은 여전히 없다. 더 이상 얼마나 ‘지지리 가난한’ 적국의 지도자가 일방적으로 양보해야만 하는지, 그리고 70년 동안 신하로 살아온 속국이 얼마나 더 굴종해야만 하는지 트럼프는 그 끝을 정하고 있을까. 그리고 북은 얼마나 더 인내할 수 있을까. 두렵다.

▲ 조병제,『북한, 생존의 길을 찾아서』, 늘품플러스, 2019. 3.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제 우리를 보자. 그리고 이 책을 이야기하자.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된다. 알고도 되풀이하는 우를 범하는데 하물며 제대로 모르고 덤비면 백전백패다. 책은 1989년부터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 이르는 동안 북 외교의 극적인 변화과정을 살펴본다. 그리고 역사상 최악의 위기에 처했던 북이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했는지, 하지만 그 후과가 어떻게 남았는지 평가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겠지만 1994년 한반도는 전쟁의 코앞까지 갔다. 사재기가 강남을 중심으로 미친 듯 퍼져갔고, 주한미군 및 주한 미 대사관 직원들의 가족들이 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카터의 중재가 아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분명 그 당시 북은 전쟁을 각오했다.

때문에 지금의 북을 우리는 제대로 봐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그야말로 과감한 행동은 자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용기의 발로다. 더 이상 전쟁과 가난의 두려움에서 살 수 없다는 절박함의 발로다. 우리는 이를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남북 모두의 평화와 번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자각해야 한다. 우리는 분명 속국이다. 아니라고 게거품을 무는 이들도 있겠지만, 현실을 부정한다 해서 바뀌진 않는다. 행동이 따라야 바뀔 수 있다. 그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천년만년 일본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친일파들과 마찬가지로 천년만년 미국이 우리를 영원히 보우하실 것으로 믿고 내지(미국)의 번영을 위해 복무하는 친미 사대주의 세력을, 이제는 더 이상 참아주지 말아야 한다.

미국은 우리를 우방이라 여기지 않는다. 동맹은 가당찮은 소리다. 우리는 그냥 그들의 수하, 졸개, 속국으로 여겨질 뿐이다. 김정은을 만난 뒤 트럼프는 오산 공군기지에 가서 자국의 아미들에게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우리 방송과 언론은 그것을 친절하게 소개했다. 오산 기지는 미국이었나 한국이었나.

북의 역사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북의 다음 행보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를 안다고 해서, 오늘 같은 파격까지 예측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오늘 자책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점칠 수 있다는 것은 변함없다.

북이 처음으로 미국과 동등하게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던 시기. 제네바 합의 체결 시기의 역동적인 외교사를 통해 우리는 다가올 미래를 조금은 더 세심히 예측할 수 있다. 책은 저자의 생각이나 주장을 담기 보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독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 분야 서적에서 보기 힘든 흔치 않은 미덕이다.

부디 전문가의 모든 예상이 틀리더라도, 나의 어설픈 예측이 다 틀리더라도, 이 땅의 평화가, 온전한 평화가 하루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 여한이 없겠다. 그래야 이 땅의 독립을 위해, 자주를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먼저 가신 분들에게 면목이 서지 않겠나.

적어도 한반도 평화와 민족화해 만큼은 ‘급할수록 돌아가’지 말자. 그동안 너무 많이 돌아왔다. 일독을 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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