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중국의 접경 지역, 강 하나를 건너면 우리의 아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 강 하나를 건널 수 없어 사진사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중국 쪽에서 망원렌즈의 초점을 맞춰야 했다. 카메라 앵글 안에는 손에 잡힐 듯 가득 들어오는 저 우리의 아이들과 정겨운 민족의 삶을 먼발치에서만 지켜보아야 했다.

그래서 사진집을 여는 순간 가슴에 물결쳐 오는 감흥은 사진을 보는 즐거움이 아니라, 쉽사리 접하기 어려운 사진이라는 점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그리고 사진으로밖에 접할 수 없는 이질적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우리가 지나온 익숙한 풍경에 대한 동질감이다.

사진을 찍은 조천현 작가는 1997년부터 북한과 중국의 접경 지역인 압록강, 두만강 일대를 다니며 영상과 사진을 촬영했다. 이를 담은 사진집 <압록강 건너 사람들>을 출간했고, 아이들 사진만을 따로 모아 이 사진집 <압록강 아이들>을 출간했다.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을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다녀야 했을 것이고, 그의 작업에 대한 주변의 오해나 의심도 견뎌 내야 했을 것이다. 많은 위험을 감수했어야 했을 테고, 촬영 대상인 북쪽의 경계와 불신도 있었을 것이다. 사진집은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삶에 카메라를 들이대 온 작가의 오랜 노력의 산물이다.

▲ 조천현, 『압록강 아이들』, 252쪽, 보리, 2019.6. [사진제공- 보리]

“압록강은 남녘 사람은 가볼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중국 접경 지역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압록강 건너에는 우리와 얼굴이 꼭 닮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눈을 마주치면 손 인사를 하고 말을 나눌 수 있습니다. 쓰는 언어가 같아 말이 통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작가의 말 중에서)”

이는 작가의 카메라가 굳이 압록강 건너를 향한 이유이자, 우리가 이 사진집을 가볍게 흘려볼 수 없는 이유이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문득 작년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당시 도보다리 회동을 떠올렸다. 같은 언어를 쓰는 같은 민족의 정상은 나무와 바람과 햇빛만 배석시킨 채 통역 없이 마주앉아 새소리를 들으며 환담을 나누었다. 친밀하다 한들 세계 어느 정상이 이렇게 마주 보고 주거니 받거니 즉각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 

작가의 말처럼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어린 시절의 나와 닮은 사람들’을 향한 그리움은 작가로 하여금 압록강변을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고, 우리로 하여금 이 사진집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사진집을 소개하고자 하니 난감하다. 사진을 어찌 말로 소개할 수 있을까. 사진으로 접하는 압록강변의 풍경은 아름답다. 그 풍경을 채우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더 아름답고 해맑다. 그 모습이 압록강의 사계절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압록강의 봄은 아직 흰 눈이 쌓인 산천과 얼음이 풀리지 않은 강에서 시린 손을 불며 빨래를 하는 엄마 곁을 지키는 아이들의 발간 볼에서 움튼다. 낮게 웅크린 지붕 위에는 봄기운을 머금은 햇살 한 조각이 나른하게 몸을 풀고, 강변에는 진달래가 망울을 터뜨리고 수양버들 가지가 초록으로 물들어 간다. 

아이들은 나무처럼 자라며, 들판에 초록이 짙어질 때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동무들과 함께 들길을 걷는다. 어른들의 눈을 피해 강가 돌담 밑에 웅크린 소년들이 몰래 담뱃불을 붙이는 장면을 보노라면 저 아이들 몸속에도 봄이 싹트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웃음이 절로 난다.

압록강의 여름은 초록으로 눈이 부시다. 열을 지어 들어선 마을의 집들은 온통 초록으로 포위를 당했고, 마을 사람들은 수양버드나무 그늘에 모여 돗자리를 펴다가 낯선 카메라의 시선에 고개를 돌려 환하게 웃는다. 여름은 아이들의 계절이다. 

아이들은 소를 치고 강에서 멱을 감고 낚시를 하고 물수제비를 뜨고 모래밭에 엎드려 햇볕을 쬔다. 무리를 지어 천렵을 가고 물가에서 돌 위에 가마솥을 걸어 놓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어죽을 끓여 먹는 모습은 우리의 70년대 풍경을 떠올리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예상을 깨고 구명조끼까지 갖춰 입고 튜브를 들고 물놀이에 나선 아이들도 있다.

압록강의 가을은 노란 색이다. 나란히 이어진 너와집들 지붕마다 옥수수를 말리느라 널어 놓고 집 곳곳에 옥수수가 가득 쌓여 마을은 노란 색, 추수를 앞둔 들판도 노란 색이다. 동무들과 놀고 돌아오는 길, 집 앞 길목에 나와 선 엄마는 두 팔을 활짝 벌려 아이를 맞이하고 아이는 엄마를 향해 달려간다. 

강 건너 사진 찍는 낯선 이에게 돌은 던져 알은 체를 하던 아이들은 낯선 이가 돌에 맞아 쓰러지는 시늉을 하자 허리가 휘도록 깔깔댄다. “어디서 왔슴까?”“남조선!”“에이…….”믿어지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개구쟁이들의 환한 웃음은 시선을 붙잡는다. 추석날 자전거 타고 오토바이 타고 성묘 가는 가족들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친근하다.

압록강의 겨울은 하얀 산과 집집마다 굴뚝에서 솟는 하얀 연기와 하얗게 언 강과 추위도 아랑곳없이 썰매 타는 아이들의 하얀 입김 사이로 온다. 얼마나 춥고 긴 겨울일까마는, 엄마가 끌어 주는 썰매 위에서 아이는 즐겁기만 하고, 밥 짓는 굴뚝 연기가 피어오르는 동네 언덕길에서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 곁에선 멍멍이도 덩달아 신이 나서 꼬리를 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살림집 굴뚝에서 퐁퐁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자전거 페달을 밟는 마음은 벌써 뜨끈한 아랫목에 가 있을 것이다.

거대 도시 서울과 지방의 격차만큼은 아니겠지만, 북한도 도시와 벽지 마을의 격차는 클 수밖에 없다. 남북의 왕래가 재개되면서 혹독한 경제 제재 속에서 여느 나라 대도시 못지않은 위용을 건설한 평양의 최근 모습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강가의 빨래터가 보여주듯 수도 평양과 멀리 떨어진 압록강 벽지 마을의 삶은 우리의 7, 80년대 시골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공동체가 살아 숨쉬고 순박한 인심이 남아 있는 저들의 삶은 아름답지만, 그래도 북을 옥죄고 있는 경제 제재가 풀려 저 압록강변에도 좀 더 넉넉한 물질 생활의 혜택이 파급되었으면 좋겠다. 사진집 속 티없이 맑은 우리의 아이들이 불러일으키는 생각을 따라 마음은 이미 분단의 경계를 넘는다.

“강은 경계가 아닙니다. 강은 단절이 아닙니다. 강은 흐르면서 만나라고 하고, 꽁꽁 얼면 어서 건너가라 합니다. 강은 이편과 저편을 나누지 않고 하나로 흐릅니다. 나는 또 압록강 강가에서 서성거립니다. 언젠가 강 건너편에서 사람들과 함께 놀고 싶습니다. <압록강 아이들>의 사진을 통해 북한을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작가의 말)”

얼어 있던 강 같던 남북 관계가 조금씩 풀릴 기미를 보이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강은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아니라, 흐르면서 만나는 것이고 꽁꽁 얼면 오히려 건너가야 하는 것이다. 사진집은 읽는이에게 강을 건너는 다리가 되어 준다. 그리고 언젠가는 강 건너편에서 이 사진집을 함께 보며 웃을 날이 올 것이다.

(수정-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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