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비행기가 사라지고 얼마 되지 않아 정부는 사건이 북의 테러라고 거의 확신했고, 수사결과를 1988년 1월 15일 공개한다. 발표 하루 전, 최광수 당시 외무부 장관은 김현희가 1987년 “12.23. 17:00경 심경 변화를 일으켜 한국말로 범행을 인정하고 자백”했다는 내용을 재외공관장 모두에게 알린다.

이에 따르면 북의 범행 목적은 세 가지였다. “(가) 서울 올림픽 방해 (나) 대통령 선거등 정치 일정 방해 및 (다) (해외 취업 근로자들을 목표로 하여) 근로 계층의 대정부 불신을 선동”(2016070043, 57쪽).

여기에서 그동안 개인적으로 주목하지 않았던 부분을 고민하게 된다. 안기부에 따르면 김현희는 1987년 10월 7일, 올림픽 참가신청 방해를 위해 비행기를 폭파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다시 말해, 지령은 올림픽 하나만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 대선과 노동자 부분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해외진출 근로자들을 희생시킴으로써”

▲ 외교부는 KAL858기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한 1988년 1월 15일 한국노총위원장에게 공문을 보내 국제자유노조연맹(ICFTU) 등에 정부 입장을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대부분의 언론 보도 및 관련 기록은 수사발표일에 김현희가 세 가지 목적을 말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수사발표 전문은 다음과 같다. “개헌·대통령선거등 정치일정을 둘러싸고 극도록 복잡해진 국내정국을 더욱 혼란시키고… 해외진출 근로자들을 희생시킴으로써 국내 근로계층 서민의 대정부 불신을 더한층 충동시킬 수 있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마지막 표현(“나온 것이 분명하다고 하겠다”)에서도 알 수 있듯, 이는 김현희가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안기부가 해석을 한 부분이다. 그런데 언론 및 여러 자료들은 왜 이를 김현희가 말한 것이라고 했을까? 이러한 기록들은 안기부가 김현희 ‘자백’에 두 가지 목적을 부풀려 추가했다는 점을 놓치고 있진 않을까?(자백이 진실이냐 아니냐는 또 다른 문제다) 곧, 안기부의 광범위한 반북 선전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 부분의 경우, 중동 지역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분들이 한꺼번에 실종됐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미어질 일이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무엇보다 수색에 온 힘을 다하고 실종자 가족들 챙기는 일에 성의를 다했어야 했다. 하지만 알려진 것처럼, 그런 일은 없었다.

정부는 반북 선전에 거의 모든 것을 걸었다. 수사발표와 동시에 외무부는 “국제기구를 통한 북괴만행 규탄”에 적극 나선다. 당시 한국노총 위원장 앞으로 보낸 문서는 다음과 같다. “북괴는 금번 KAL 858기 탑승자의 대다수가 중동근무 아국 근로자인 점에 착안, 이들을 희생시킴으로써 아국 국내근로자 계층의 대정부 불만야기를 획책한 것으로 밝혀졌읍니다”(2016090592, 24쪽). 안기부의 부풀려진 해석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외무부는 한국노총이 국제자유노조연맹(ICFTU)을 비롯한 15개의 국제노동단체에 “대북한 규탄성명 발표등 제재조치를 요청하는 전문을” 빨리 보내고 그 결과를 알려주라고 했다.

각종 단체에 보내진 대북규탄 유도 문서

▲ 외교부는 한국방송공사 등에 국제 언론기관에 정부의 KAL858기 사건 수사 결과를 알려줄 것을 요청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와 비슷한 문서가 언론(한국방송공사(KBS) 등), 여성(한국여성단체협의회 등), 항공(한국관광공사 등), 종교(한국침례교회연맹 등) 관련 단체에 보내졌다(28-34쪽). 아울러 국제기구들이 위치해 있는 해당국 주재 대사관에도 따로 연락이 간다.

사건이 북의 테러라고 발표된 상황에서 외무부로서는 당연한 일을 한 것일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한국을 대표하는 정부부처가 ‘비정부’ 기구를 대상으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더군다나 국제기구를 겨냥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요청을 받은 국내단체들에게 외무부가 정부의 발표를 받아들이라고 압력을 행사했다고도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별도로 외무부는 1988년 1월 20일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규탄위한 특별 대책반”을 만들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등에서 대북규탄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였다(2016070043, 128쪽).

정부의 수사발표는 김현희의 자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KAL858기 사건은 북의 테러라는 공식 입장이 세워진다. 그런데 정부는 그 자백이 있기도 전에 북의 테러라는 결론을 이미 내렸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들은 이를 다시 확인해준다.

예컨대 1987년 12월 14일자로 쓰여진 김현희 신병인수에 관한 발표문 초안이 그리하다. “우리 정부는 이들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대한항공 858호기를 폭파 했다는 제반 정보와 증거를 바레인 당국에 제공하고…”(2016070042, 87쪽). 이는 최종 발표문과 영문 발표문(“at the instruction of North Korea”)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129쪽, 131쪽).

버마의 조사에 대한 특별한 관심

국제민간항공협약에 따르면 이 사건의 기본 조사는 실종 지점이 버마(현 미얀마) 지역으로 추정되었기 때문에 버마 당국이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버마는 이 조사내용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알려야 했다.

이와 관련해 1987년 12월 17일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봤을 때, 우리는 이 사고가 [북 공작원이 설치한] 폭발물에 의한 파괴 행위로 일어난 것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UNTIL NOW, WE ONLY THINK THAT THIS ACCIDENT OCCURS BY SOME EXPLOSIVES SABOTAGE)”라고 한다(2016070043, 28쪽). 그러면서 버마가 이 조사를 위한 준비작업을 시작했는지 물어보고, 혹시 조사를 바라지 않는다면 한국이 직접 나서겠다고 덧붙인다.

바꿔 말하면, 한국은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버마가 사건을 (북의) 테러라고 확인해주기를 강력히 원했다. 물증을 바탕으로 한 공정한 조사 원칙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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