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1월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4차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해 3월부터의 네 차례 북중 정상회담은 모두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이루어졌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난 2월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주춤거리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이번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무대 전면에 등장했다.

북중 양국은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이자 중국 국가주석이 20~21일 북한을 국빈방문한다고 17일 저녁 발표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6.28~29)를 코앞에 둔 절묘한 시점으로, G20에서는 미중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G20 직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시진핑 주석의 평양행을 두고 ‘서울행의 징검다리’라며 의미를 축소하는 분석과 ‘북한의 플랜B 가동’이라는 적극적 의미부여가 제기되고 있다. 물론 북미협상 중재 여부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1. 조성렬, 중국의 ‘한국 떼어내기’

북중 정상회담 개최가 양국에서 동시에 발표되자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17일 밤 “정부는 지난주부터 시진핑 주석의 북한 방문 추진 동향을 파악하고 예의 주시하여 왔다”며 “그간 정부는 시진핑 주석의 북한 방문이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이의 조기 실현을 위해 중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여 왔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이례적인 신속하고 구체적인 중국과의 협의 사실 확인은 이른바 ‘한국 패싱’을 우려한 조치로 읽힌다. “북중 간에 만남이 있는데 한국은 뭐하고 있느냐”는 식의 질문이 쏟아질 것에 대해 자문자답한 셈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 측에서 ‘한중관계를 소중히 하지만 우리 특성상 북한을 먼저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조성렬 위원은 “결국 시진핑 주석의 평양행은 서울행을 위한 징검다리”라고 짚었다. 중국은 10월 1일 주변국 정상들을 초청한 가운데 대대적인 건국 70주년 기념행사를 기획하고 있어 시 주석의 서울행은 9월 중순 이전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중국은 한국이 미국의 ‘반(反) 화웨이 전선’과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할까봐 바짝 긴장하고 있다”며 “실제로 미국은 10월말 11월께 열릴 SCM(한미안보협의회의)에서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전면 참여를 관철시키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포위전략에 동참할 경우 중국의 입지는 그만큼 어려워질 수 밖에 없어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 등으로 껄끄러워진 ‘한국 달래기’, 즉 미국으로부터 ‘한국 떼어내기’에 적극 나서야 할 상황이라는 것.

실제로 미국의 한국에 대한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 압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하고, 김대중 정부 이래 사실상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제 편입 논란 때문에 미뤄왔던 SM-3 미사일 도입은 ‘신형 이지스함 3척 건조’ 결정으로 고삐가 풀렸다. 최근 사드 추가배치 의혹까지 불거져 중국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시진핑 주석의 평양행을 서울행 징검다리로 보고 있는 조성렬 위원은 이례적인 시진핑 주석의 19일자 <노동신문> 기고에 대해 “평양에 줄 선물이 없어서 김정은 위원장의 체면을 세워주려는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싸고 북미간 힘겨루기가 한창인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의 대폭적인 양보를 끌어낼 묘책이 없고, 치열한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며 대북 경제제재를 누그러뜨리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의 기고글은 19일자 <노동신문> 1면에는 실렸지만 탑기사가 아닌 사설 아래에 작게 배치됐고, 국빈방문 치고는 1박2일의 소략한 일정이라는 점도 이같은 상황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2. 김동엽, ‘북한의 플랜B’ 시동걸기

이에 비해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시 주석의 방북 자체에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김동엽 교수는 “북한이 미국의 입장이 안 바뀌면 미국을 통한 지름길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등 국제관계 속에서 긴 호흡으로 가겠다는 ‘플랜 B’를 꺼내든 것”이라며 “지난번 러시아 방문이나 최근 유엔이나 국제기구에의 접근도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 연말까지 미국에 협상 시한을 제시했지만 그때까지 미국만 쳐다보고 기다리기 보다는 “6월을 변곡점으로 연말까지 (플랜B로 나아가는) 스텝을 밟아나가겠다는 구상”이라는 것.

김 교수는 “시진핑 주석의 방북은 그런 의미에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며 시진핑 주석의 <노동신문> 기고를 “북한의 선택과 길을 전면 지지하고 협력해 나가겠다는 내용이 주”라고 분석했다.

시진핑 주석은 기고문에서 “우리는 김정은위원장동지의 옳바른 결단과 해당 각측의 공동의 노력에 의하여 조선반도에 평화와 대화의 대세가 형성되고 조선반도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쉽지 않은 력사적 기회가 마련됨으로써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인정과 기대를 획득한데 대하여 기쁘게 보고있다”며 “중국측은 조선측이 조선반도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올바른 방향을 견지하는것을 지지하며 대화를 통하여 조선측의 합리적인 관심사를 해결하는것을 지지한다”고 분명하게 북측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김정은 위원장이 네 차례나 중국을 방문해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 등을 의식해 대북 경제제재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시 주석에게는 심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노동신문> 기고문에서 “나는 이번 방문을 통하여 김정은위원장동지와 조선동지들과 함께 중조친선협조관계를 설계하고 전통적인 중조친선의 새로운 장을 아로새기려고 한다”고 밝혔고, “이미 합의한 협조대상들을 잘 리행”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  지난해 5월 7일 중국 다롄에서 개최된 북중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마주하고 있다. 정상회담 직후 박태성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끄는 북한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해 양국간 경제협력 문제를 논의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한신 남북경제협력연구소 대표는 19일 <통일뉴스> 기고문에서 “지난해 중국 다롄(대련)에서의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의 회담 내용 중 중국측이 훈춘-청진간 고속철도 건설과 청진항 개발 사업을 제안했던 것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외에도 중국은 갈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소 건설 지원과 신의주-개성 고속철도.도로 건설,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 등을 약속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지만 국제적 제재에 묶여 실현된 것은 없다.

김한신 대표는 “체제보장과 비핵화를 ‘빅딜’하고 경제발전에 매진하려는 북한의 의중을 시진핑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보증하고, 북한의 경제발전에 중국자본과 해외자본이 투자하는 형태의 거래가 성사될 수 있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만약, 시진핑 주석이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해줄 수 없는 조건에서 30만톤 정도의 대규모 식량지원을 한다면, 카드가 될 수 있다”며 “그 정도면 북한이 협상시한인 연말까지 미국과의 힘겨루기를 벌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3. 정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북미협상 중재 기대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지만 시진핑 주석이 북한의 좀더 진전된 비핵화 양보를 얻어내고 이를 토대로 미국의 대북 체제보장과 제재완화의 상응조치를 약속받는 ‘북미협상의 중재자’로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시 주석의 방북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진전”이라며 시 주석이 북측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을 권고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했다.

또한 “미국 측에서도 북중 정상회담, 그리고 시 주석의 방북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며 “많은 부분에서 중국과 미국 간에 대북 정책에 대한 일치점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목표가 같고 대북제재에도 발을 맞춰왔다는 판단이 깔린 것.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17일 “(시 주석의) 이번 방문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협상의 조기 재개와 이를 통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긍정적 의미를 부여했고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19일 ‘2019 한반도국제평화포럼’ 기조연설에서 아예 “모든 정상회담의 중요한 목표는 제3차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환경조성에 있다"고 초점을 좁혔다.

남문희 <시사IN> 한반도담당 선임기자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진핑이 자신있게 방북하겠다고 나선 걸 보면 그동안 북중간 물밑 조율을 상당히 했나 보다”며 “결국은 1월 북이 약속했던 ‘영변+알파’ 약속을 김위원장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그렇다면 중국이 북에 줄 수 있는 것은 뭘까? 남 기자는 “지난 1월처럼 북한이 비핵화에서 더 크게 양보해 미국이 유엔안보리 제재를 해제 또는 완화하게 하면 원하는 것 주겠다고 하자니 이미 구문이라 먹히지도 않을 터이고, 결국은 뒤로 드러나지 않게 뭔가를 챙겨주는 식 밖에 없을 것”이라고 봤다. 뒤가 아닌 앞으로 챙겨줄 수 있는 것은 인도적 지원에 해당하는 식량지원 등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 주석의 방북과 중재 역할도 중요하지만 역시 한반도 문제의 본질은 북미 양자관계에 달려있다는 것은 공통된 시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스웨덴 의회 연설에서 “북미 간, 또 남북 간에 물밑에서 대화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대화의 모멘텀은 유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며 “결국 김정은 위원장이 언제 호응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북미 간, 또 남북 간의 대화가 너무 늦지 않게 재개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스티브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에 한참 앞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조성렬 연구위원은 “비건 대표가 판문점이나 평양에 가서 김정은 위원장 친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해 판을 바꿀 가능성도 있다”며 “폼페이오-김영철 라인을 빼고 비건의 급을 높여서 비건-최선희 제1부상의 고위급실무회담에서 윤곽을 잡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지 않아도 줄어든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로서의 입지는 시진핑 주석의 방북으로 더욱 줄어든 느낌이다. 남북관계의 당사자로서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 9.19군사분야합의서를 실천하는 길이 그나마 남아 있는 고유한 영역인 셈이다.

조윤제 주미대사는 18일(현지시간)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김정은 위원장의 트럼프 친서 전달과 이희호 여사의 유족에 대한 조의문 전달은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한 지도자의 첫 북미간 남북간 직접 소통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동향”이라며 “한미 양국은 이러한 계기를 잘 살려 다시 북미대화, 남북대화의 재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나간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은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진핑 주석이 평양을 방문하고 나면 김정은 위원장이 10월쯤 답방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그 전후에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가능성도 정세상으로는 높아진다”고 관측했다.

한 소식통은 중국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그림’은 “시 주석 방북, 북중 정상회담(6.20~21) → 미중 정상회담(6.28~29) → 한미 정상회담 → 남북 정상회담 → 시 주석 방한, 한중 정상회담 → 북미 정상회담”이라고 귀띔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