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육사 손을 잡고 감동을 전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바로 광야다. 또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바로 광야이니, 이육사가 시로 지금 우리를 가장 잘 표현했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우리만이 내달릴 평야. 비록 지금은 춥고 바람도 불지만 거칠 것 하나 없는 완전한 자유에 도달하는 그 광야가 바로 우리가 달려갈 광야라고.”(본문 254쪽)

‘정명(正名)’은 ‘대의명분을 바로잡아 실질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대의명분(大義名分)’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와 본분’이라 정의한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와 본분은 시대에 따라 일정하게 달라져왔다. 그리고 내가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떤 계급적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인류 보편적 가치’라는 것이 있지만, 과거엔 ‘인류’에 속하지 못했던 이들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

궁금해진다. 온전한 정명이 가능할까. 실질을 ‘바르게’한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바르다’는 것은 그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인류의 역사를 돌아볼 때 ‘정명’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것들은 온전히 ‘바른’ 것이었을까. 어쩜 우리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정명을 하지 못해왔던 것은 아닐까. 아니, 여전히 ‘바른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에 대한 평가,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과거 극악무도한 폭군이나 악인으로 평가받던 이가 재평가되어 인정받는가 하면, 우리가 위대한 인물로만 알고 있었던 이의 추악한 이면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 순간이 정명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단정은 그 무엇보다 위험하다.

지금 약산의 삶이 주목받고 있다. 보수 세력은 그가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고 한국전쟁의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그를 폄하해왔다. 반면 이른 바 진보 세력은 의열단을 이끌며 일제에 끝까지 맞서 싸운 그의 항일투쟁을 높게 평가하며 ‘약산의 소환’을 시도하고 있다. 약산 김원봉에 대한 ‘정명’인 셈이다.

▲ 김하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북로그컴퍼니, 2019. 4. [자료사진 - 통일뉴스]

최근 우리 근현대사에 있어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들에 대한 ‘소환’이 이뤄지고 있다. 녹두장군 전봉준, 죽산 조봉암이 다시 주목받고 있고, 이름조차 남기지 않고 스러져갔던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는 작업이 활발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약산 김원봉이 있다. 영화와 드라마 등을 통해 부활한 약산은 현재 진보와 보수 간 ‘역사전쟁’의 중심에 서 있다.

약산은 그의 나이 61세였던 1958년 11월 북한에서 숙청된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 정확한 사망일시도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에서 김원봉은 오래전 잊힌 존재다. 그는 22세 나이에 의열단을 창설했다.(1919년) 그리고 48세에 해방을 맞는다. 한 평생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그 어느 독립운동가보다 치열하게 싸웠지만, 지금까지 그는 남과 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소환될 수 없었다. 이념이라는 굴레가 그를 자유롭게 두질 않았다. 그러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그리고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맞은 올해 그가 돌아온 것이다.

그동안 약산이 남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는 남과 북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미군정, 그리고 이승만 정권에 부역하는 것도 거부했다. 그에게 조국은 오직 하나였다.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그에겐 온전한 조국이 아니었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해방이 되어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책은 약산의 삶을 담담히 그러나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와 함께 의열단의 단원으로 활약하며 일제에 맞서 치열히 싸웠던 수많은 ‘김원봉’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거사를 앞두고 죽으러 가는 길임을 모두 알지만, 서로 자신이 가겠다며 싸우는 모습은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비장함을 전해준다. 웃으며 사지로 향하는 이들은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들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고, 푸른 꿈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내려놓고 영원한 안식의 길을 떠났다.

우리는 이념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우리 눈에 생생하게 보이는, 함께 어루만지며 사랑해온 이들을 무참히 죽였다. 한반도는 증오와 극단주의로 찢어졌고,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남겼다.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북한의 남침이었지만, 그 안에는 강대국들의 이해타산과 이념이라는 허울이 똬리 틀고 앉아있었다. 우리는 왜 죽여야 하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른 채 그렇게 죽이고 죽었다.

때문에 책 속 약산이 그토록 강조했고 또한 아쉬워했던 단어가 맴돌 수밖에 없다. ‘단일대오’, 오직 한 마음으로 뜻을 모으고 뭉쳐야만 잔악한 일제에 맞서 싸우고 독립을 이룰 수 있다는 그의 간절함은 좌우를 따지지 않고 독립을 위해 싸우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끌어안을 수 있었다. 그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 어떤 대의명분도 조국의 독립 앞에서는 아무 가치가 없었다. 그것이 약산이 가진 진정한 힘이었고 위대함이었다.

구역질이 날만큼 더러운 이 시대를 바라보며, 약산의 포용력과 치열한 정신이 꿈만 같이 느껴진다. 의열단의 비장하면서도 언제나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집념이 그 간절함이, 그 낭만이, 그 눈물겨움이 꿈만 같다.

친일을 온전히 청산하지 못한 채 정부를 수립한 우리는, 때문에 온전한 독립과 해방을 이뤄내지 못했다. 더구나 분단까지 되었으니, 온전한 독립은 여전히 멀다. 친일세력이 반공으로, 자유민주주의로 게거품을 물며 변신에 성공했을 때, 조선의 독립과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이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스스로를 은폐해야만 했다. 이 치욕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우리는 식민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약산의 삶은 다시 평가되어야 한다. 그의 공과 과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살펴 그에 맞는 온당한 위치를 찾아주어야 한다. 난세의 영웅으로 우상화, 절대화할 필요도 없지만, 이념이란 핑계를 대며 그를 폄하하고 모욕하는 행태도 멈춰야 한다. 특히 친일의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들은 그 더러운 입을 다물어야 한다.

언제나 논쟁의 대상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정명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민중들이 인정하고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특정 권력자나 정권이 함부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서슴없이 권력에 의해 역사가 재단되어 왔기에, 늘 갈등과 분열이 이어졌다. 정명은 한 번에 끝나는 작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을 찾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현재를 만들어내고 미래를 지배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내는 동력이기도 하다. 때문에 수많은 권력자들이 역사를 마음대로 재단하려 했다. 더 이상 역사를 방치해선 안 된다. 민중이 주체가 되고 민중이 만들어가는 역사가 비로소 온전한 역사다. 승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치열하게 시대를 살아낸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비로소 역사라는 이름을 받아야 한다.

더러운, 말 같지 않은 말들이 난무하는 지금, 또 한 명의 어른이 우리 곁을 떠났다. 평생 민주화와 여성운동 그리고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헌신한 이희호 여사님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 인간의 품격은 스스로 갖추는 것이다. 여사님은 스스로 빛과 같은 삶을 만들어낸, ‘품격’을 갖춘 분이었다.

남은, 어리석은 이들이 더러운 제 입을 씻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이제 그 곳에서 사랑하는 평생의 동지와 함께 더없이 행복하시기 바란다.

“나는 언제나 실패했다.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또 실패를 향해 시도한다.

앞선 실패보다 조금만이라도 더 나은 방법으로 시도한다.”(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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