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의 삶은 그가 세상을 뜰 때에야 비로소 그 의미와 가치를 가늠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눈을 감은지 사흘이 지나면서 그의 삶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97세로 별세했기에 고인에게는 그 길다면 긴 삶만큼 적지 않은 족적이 남겨져 있습니다. 1세대 여성운동가, 페미니스트, 민주화운동가 그리고 평화운동가 등의 수식어가 붙습니다. 그런데 ‘김대중-이희호’ 부부는 집 대문에 각각의 문패를 걸 정도로 서로 존중하는 민주적 관계이기에 뭐든지 서로 주고받는 게 자연스럽게 통했을 것입니다.

봉건제 아래 태어나 오랫동안 살아 온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게 된 것은 아내 덕분”이라고 말했는데, 그 의미 있는 결과가 1997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국민의 정부 시절 여성부가 신설되고 또 가정폭력방지법(1998년)과 남녀차별금지법(1999년) 시행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물론 상호작용으로 이 여사도 남편으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더욱이 정치인 김대중과의 삶은 어쩔 수 없는 ‘정치적 동반자’로서 한편으로 공통의 위험과 고난을 감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공통의 철학과 신념을 꾸려야 했을 것입니다.

마침 부부가 서로 수수(授受)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그래서 고인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하나는 유서입니다. 이 여사는 11일 공개된 유서에서 “하늘나라에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하나는 북측의 조의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이희호 여사 서거에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통해 조전과 조화를 전하며 애도를 표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조전을 통해 “리희호 녀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온갖 고난과 풍파를 겪으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울인 헌신과 노력은 자주통일과 번영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현 북남관계의 흐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으며 온 겨레는 그에 대하여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으며, 조화에는 ‘고 리희호 녀사님을 추모하여, 김정은’이라고 적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 여사는 남편과 퍽 닮은 삶을 살았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서거하기 전까지 당시 이명박 정부에 대해 ‘민주주의 후퇴, 빈부격차 커짐, 남북관계 초긴장’을 지적했는데 이게 사실상 유언이 된 셈이며, 서거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즉각 유족에게 조전을 보내고 또한 ‘특사 조의방문단’을 남측에 보냈기에 말입니다.

두 사람의 유언이 사실상 남북문제와 연관이 있으며, 특히 사후 북측이 두 사람 모두에게 조의를 표했으니 이 정도라면 ‘김대중-이희호’ 부부는 부창부수(夫唱婦隨), 부창부수(婦唱夫隨)라 할 만합니다.

물론 아쉬움도 있습니다. 너무 강한 목적성을 띨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조문 정치’, ‘조문 외교’라는 말도 있듯이 이 여사의 부음에 북측 ‘특사 조의방문단’이 남측에 내려와 교착상태에 있는 남북관계에 활력을 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은 듯싶습니다.

그래도 북측으로부터 조전과 조화가 왔으니 다행입니다. 이 여사는 “하늘나라에서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그의 울림이 큰 유언대로 눈을 감으면서도 남북관계의 끈을 이어주고 또 확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김 전 대통령과 나란히 누울 이희호 여사의 영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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