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늘의 이치에 순종하는 자는 흥하고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 順天者 興 逆天者 亡 (공자)


 복종
 - 한용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물속에서 자유로우려면 물에게 복종해야 한다. 물의 법칙에 완전히 복종해야 완전히 자유로워진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의 이치, 법칙에 완전히 복종해야 세상살이에서 대자유(大自由)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오랫동안 세상의 이치, 도(道)를 연구해왔다. 도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 그리고 도를 아는 스승에게 깍듯이 대했다. 

 많은 교사들이 학생들이 버거워 퇴직 전에 교직을 떠나고 있다고 한다. 왜 그럴까? 왜 학생들이 교사들의 가르침에 복종하지 않을까?

 학생들은 교사의 가르침을 어떻게 생각할까? 학교 교육, 교사의 가르침이 세상살이의 이치와 거의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선생님, 가르쳐 주시는 대로 살면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나요?’ 

 이 물음에 교사들이 ‘그래!’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일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교사들의 가르침에 복종하여 취직 잘하는 대학에 들어가겠지만, 대다수 학생들은 자신들이 그들의 들러리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뚜렷한 대안은 없어 학교에 건성으로 다니지만, 교사에게 불복종으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나는 교직에 있을 때 ‘문제아’들이 버거웠다. 학창 시절에 ‘범생이’로만 자라난 나는 그들 앞에 서면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 체육 선생님은 달랐다. 학창 시절에 좀 놀았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교사였다.  

 조폭 비슷하게 생긴 문제아들도 그 분 앞에 서면 금세 고분고분해졌다. 그 문제아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이 선생님은 우리 마음을 잘 아는구나!’ ‘이 선생님 말씀을 따르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겠구나!’ 

 십여 년 전에 모 초등학교 운영위원을 한 적이 있다. 그 학교에서 나는 ‘작은 기적’을 보았다. 문제아들이 한 선생님에게는 다 복종하는 것이었다. 비결은 아이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다. 그 선생님은 아이들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몇 년 전에 우연히 그 선생님의 이력을 듣고 나서야 그 선생님의 깊은 내공을 알 수 있었다. 대학 때부터 ‘튀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교사 양성 과정은 어떤가? 예전에는 그래도 국립 사대나 교대를 나오면 교사를 할 수 있어 대학 시절만이라도 놀 수 있지 않았던가!

 지금은 초중고 시절을 지식 위주의 공부만 하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1학년 때부터 ‘임용 고시’ 준비를 하니 언제 한 번 튀어 본 적이 있을까?

 가끔 낮은 곳에서 ‘뛰어난 지도자들’을 볼 때가 있다. 아파트 부녀회장, 학부모 회장, 마을 이장, 각종 단체 회장...... 이런 사람들 중에 기회만 온다면 세상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사람들의 정계진출을 원천봉쇄한다.

 한용운 시인은 한 여인을 사랑하면서 한 여인에게 복종하는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여인은 바로 ‘부처’라는 것을!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 없습니다./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복종’이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그 분야의 이치를 제대로 모르는 자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의 삶은 부자유스럽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