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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충만 속에, 존재 속에 있다

기사승인 2019.05.15  09: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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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고석근의 시시(詩視)한 세상 (242)

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항상 충만 속에, 존재 속에 있다. (메를로 퐁티)


 술꾼 봉도
 - 이동순

 흰 눈은 나려
 고죽 마을을 덮었는데
 새알산도 하얗고
 밭엔 못 뽑은 배추가 그대로
 눈 뒤집어썼는데
 이런 날 봉도는 술 생각이 나서
 땅 속에 어찌 누워 있나

 속알못 쪽
 봉도 무덤으로 가는 길도
 이미 눈이 파묻혔다.

 오늘 같은 날
 봉도는 필시 누웠던 땅에서 일어나
 머리에 눈을 맞으며
 주막집으로 혼자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으리라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 그는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림처럼 보이는 것들이라고 말한다. 빵을 먹는다, 커피를 마신다, 아파트에 산다, 이런 것들은 말해도 된다. 하지만 신(神)을 보았다든가, 너를 사랑한다든가, 이런 것들은 말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말들은 그림처럼 보이지 않으니까. 그는 그런 것들은 다만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럼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신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 사랑을 너무나 쉽게 입에 올리는 사람들.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고 이런 것들을 말하게 되면 그들은 신에 대한 관념, 사랑에 대한 관념에 사로잡힌다. 머릿속에 있는 그런 관념들이 그를 조종한다. 신의 이름으로 남들을 마구 재단하게 된다. ‘불신지옥!’ 같은 말들을 남들을 향해 마구 내뱉게 된다. 사랑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자식에게 ‘사랑의 회초리’를 마구 휘두르게 된다.  

 공자에게 제자들이 물었다. ‘난세의 세상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게 바뀔까요?’ 공자는 ‘정명(正名 이름을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원시인들은 말과 대상이 일치했다고 한다. 말과 존재가 일치하게 되면 세상은 얼마나 신비로울까? 존재와 일치하지 않는 말이 존재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망상’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삶은 저 자연만큼 맑고 깨끗할 것이다. 

 사람은 언어만큼 생각을 한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너무나 많이 배우고 말을 하기에 머릿속에는 항상 ‘망상’이 그득하다. 삶은 온갖 거짓으로 난무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자신이 너무나 무겁다.

 고향 마을에는 바보 ‘이형’이 살았다. 이형은 한 여름 깊은 밤에 마을을 가로질러 걸으며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를 불렀다. 그는 바보이기에 아무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나는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아득히 잠에 빠져 들어갔다. 이형의 정신세계는 맑은 물처럼 단순했을 것이다.

 고향 마을 이름이 ‘주막듬’이었다. 이형 같은 술꾼 봉도들이 밤낮없이 드나들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어른이 되면 술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들의 티 없는 주정(酒酊)이 어린 눈에 아름답게 보였던 걸까?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보면 공원 한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술꾼 봉도들’을 많이 본다.

 농촌의 술꾼 봉도는 얼마나 당당한가!

 ‘흰 눈은 나려/고죽 마을을 덮었는데/새알산도 하얗고/밭엔 못 뽑은 배추가 그대로/눈 뒤집어썼는데/이런 날 봉도는 술 생각이 나서/땅 속에 어찌 누워 있나//속알못 쪽/봉도 무덤으로 가는 길도/이미 눈이 파묻혔다.//오늘 같은 날/봉도는 필시 누웠던 땅에서 일어나/머리에 눈을 맞으며/주막집으로 혼자 터덜터덜/걸어가고 있으리라’

 시인 랭보는 ‘모든 감각을 풀어 놓아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바람 구두’를 신고 아프리카 대륙을 방랑했다. 그는 감각을 풀어놓으며 ‘미지의 세계’ 언어와 존재가 일치했던 신비로운 세계로 걸어 들어갔을 것이다.

 나는 가끔 뒷산에 올라 소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요가를 한다. 나도 숲의 일원이 되고 싶다. 내 안의 ‘바보’를 깨우고 싶다. 그들처럼 맑고 깨끗하고 싶다.

 

 

고석근 ksk21ccc@hanmail.net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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