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은 대화 자체의 필요성에만 합의했을 뿐 미국은 한국의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히 괜찮은 거래)’을 거부하였다. 미국이 우리의 ‘포괄적 합의 단계별 이행’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우리 정부는 핵 시설 리스트 신고와 대량 살상 무기(WMD) 동결·폐기를 포함하는 ‘일괄 타결식 빅 딜(big deal)’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만큼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 합의 후, 단계적 이행’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대가 컷던 금강산 관광 재개는 일단 무산되었다. 미국의 강압적 태도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미국의 일방적 외교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2.27~28)을 무위로 돌렸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결과보다는 더 진전된 합의가 나올 것으로 기대를 했던 많은 국민들과 전문가들을 ‘멘붕’에 빠뜨렸다. 기대가 컷던 만큼 실망도 그만큼 컷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100년 대계인 ‘신한반도체제’를 준비했던 문재인 정부와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를 꿈꾸었던 관련 기업들의 실망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일 것이다. 그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한 주역은 누구든 언젠가 응당한 책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북의 완전한 비핵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미국의 체제안전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북이 ‘안보의 보검’인 핵무기를 포기할 리가 만무하다. 북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핵무기 공격을 두려워해 왔고 그 가능성은 여전히 불식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핵안보에 대한 대체재(substitute goods)를 주지 않은 상태에서 북핵을 모두 폐기하라고 하는 것은 남의 안보 대체재 없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북핵문제 해결의 최선책은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이다. 북과 미국이 북의 완전한 비핵화와 미국의 완전한 체제안전 보장을 합의하고 이것을 몇 단계로 나누어 이행하는 것이다. 상호 불신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당면 과제를 ‘선후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방이 먼저 행동을 했을 때 타방이 똑같이 행동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배신을 감독하고 배신에 대해 책벌을 가할 주체가 없는 것이다. 이 때 최선의 방법은 동시에 행동하는 것이다. 조그만 것에서 신뢰가 쌓이면 더 큰 것으로 확장해 가는 것이다.

문제는 북핵 문제에 있어서는 이것조차 쉽지가 않다는 것에 있다. 미국은 단계별 해법을 죽도록 혐오한다. 미국은 1994년 10월 미북 제네바 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2007년 2.13합의, 10.3합의, 2012년 2,29합의 등이 소위 ‘단계별 동시행동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었지만 북이 이를 모두 파기했다고 보고 있다. 볼턴과 같은 강경파들이 북의 단계[별 해법을 죽자사자 반대하고 최단기간내에 ‘빅뱅식’으로 비핵화를 실시하자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반대로 북은 위의 합의들을 미국이 깼다고 보고 만일 일시에 비핵화를 이룬다면 이후 미국은 CIA공작을 통해 ‘리비아식’으로 민중혁명을 사주하여 김정은 정권은 물론 주체사회주의 체제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인 방안은 우선 북을 ‘미국의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 만일 북이 미국의 친구가 되면 북이 미국에게 핵무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된다. 지금은 미국과 북이 ‘백년 숙적’처럼 지내고 있으니까 북이 미국의 침략을 두려워하고 미국이 북의 핵공격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만일 두 국가가 친구가 되면 ’친구평화론‘에 입각하여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불법적 핵보유국인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에 대해서는 문제를 삼지 않고 있다. 미국은 이들 국가들과 수교와 경제교류 등을 진행하여 친구로 지내기 때문에 이들의 핵공격을 염려하지 않는 것이다. 북도 미국이 친구로 삼을 만한 충분한 전략적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북과 친구가 됨으로써 북의 안보불안을 제거해주고 신뢰를 확보한 다음에 북의 비핵화를 본격화하는 것이 순서이다. 일부 논자들은 미국과 북이 친구가 되는 과정에서 북은 언제든 미국에게 핵무기로 위협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미국이 북을 친구로 만드는 과정에서는 북이 미국에게 핵무기를 사용할 필요도 이유도 없게 된다. 미국이 북을 죽이려 한다면 핵무기를 쓰겠지만 자신을 살리려고 하는 데 무슨 이유로 핵무기를 쓸 것인가?

만일 북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북도 그 즉시로 파멸적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미국은 전략 및 전술무기를 6,500기 정도 보유하고 있다. 북은 기껏해야 몇 십 기를 가지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정상적이지 않고서야 미국을 선제공격할 수는 없다.

결국 안보상 약자인 북이 핵무기를 쓸 필요가 없는 상황을 만들고 그 이후에 북핵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순서이다. 진정 북의 비핵화를 원한다면 북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 첩경이다. 다만 이 해법 또한 쉽지는 않다. 북을 친구로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면서 북과의 적대적 상태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국내외의 안보 카르텔이 있기 때문이다.

 

 

1953년생으로서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북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통일연구원에서 22년간 재직한 북한전문가이다.

2006년 북한연구학회장 재직 시 북한연구의 총결산서인 ‘북한학총서’ 10권을 발간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동안 통일부 자문위원, NSC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민화협,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현재는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김정일 리더쉽 연구」, 「김정일 정권의 통치엘리트」, 「북한 체제의 내구력 평가」, 『북한이해의 길잡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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