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경 / 농부

 

살구나무를 찾아서 살구나무 동산을 만들고 있다. 올해는 살구나무 마을을 만들려고 한다. 올해 우리 마을에는 많은 살구나무들이 새로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인데, 나는 그것이 북측 회령 백살구나무이기를 바래서, 그것을 구하려 안타깝게 뛰어다니고 있다.

사라진 살구나무를 찾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살구나무를 잃어버렸듯이 아주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무엇을 위하여 그 많은 것들을 놓아버린 것일까? 여기 연재할 글들은 살구나무처럼 우리가 잃은 것들, 잊은 것들, 두고 온 것들에 대한 진지한 호명이다. / 필자

 

▲ 정씨 아저씨의 밀밭 (정운오 제공)

농부, 정씨 아저씨

정씨 아저씨는 30년 농부이다. 그의 어머니도 농부로 평생을 살아오셨고 아흔을 막 넘기신 지금도 호미를 들고 밭에 나가신다. 그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가업을 이었으니 그의 농사연한은 30년이 아니라 평생일 것이지만 구태여 30년을 앞에 붙인 것은 자기가 설계한 자기의 농사를 지은 햇수를 말하기 위함이다.

그는 공부하는 농부이다. 그는 고향 김천 아근에서는 꽤 알려져 있는 유기농 농부인데, 자신의 농사를 보다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해 공부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는 보다 나은 농사방법을 찾아 자연농법, 보존농법 등 유기농 이상의 재배방법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과감하게 시도한다. 그렇게 30년간 공부하면서 농사를 지었으니 농사에 관한 한 박사급은 될 법한데도 그는 결코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농사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할 뿐이다.

그는 엄청난 일을 해내는 농부이다. 그가 지어내는 농사는 자그마치 1만2천평의 논농사와 1만평의 밭농사다. 제초제도, 농약도, 화학비료도 없이 일체의 농사를 모두 유기농 이상으로 해낸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쌀농사는 기계의 힘을 빌린다지만 밭농사는 거의 손농사다. 그가 그렇게 큰 농사를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것은 머리를 써서 연구하기 때문이다. 그의 집에는 밭을 정비하고 작물의 파종과 수확을 빠르고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갖가지 특수농구들이 즐비하다. 모두 각각의 작물과 재배방법에 마춤하게 고안하여 손수 제작한 기계와 손도구들이다. 그는 언제적 골동품인지도 알 수 없는 오래된 작은 트랙터와 그 농구들을 갖고 그렇게 큰 농사를 능숙하게 해제끼고 있다.

그는 즐겁게 일하고 생활하는 농부이다. 그가 정강이를 걷어 부치고 맨발로 논판에 들어가 떡같이 진 흙을 기다란 괭이로 척척 뒤집어놓는 것을 보자면 숙련된 사람의 일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그 일에 몸을 잠근 오랜 시간의 누적만이 가져올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그의 일하는 모습에서는 단지 의무로 일하는 자의 고됨과 힘겨움보다는 주인으로서의 성실함과 경쾌함이 느껴진다. 그는 철인3종 경기 선수이자 바다수영 선수이기도 하다. 그는 항상 즐겁게 일하고 생활하려 한다고 말한다. 왜냐고 물었더니, 농부라는 직업이 힘든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자기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라나. 시골에 와서 들은 최초의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 모내기를 끝낸 정씨 아저씨의 논. (정운오 제공)

정씨 아저씨의 ‘밀’의 의미

그에 관한 또 하나의 감동은 그가 30년간 지켜온 ‘밀’이다. 그가 재배하는 주작물에는 쌀, 양파, 참깨 등과 함께 특이하게도 ‘밀’이 있다. 그냥 밀이 아니라 너무나 드물어 말 자체가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우리밀’이다. 서구에서 셀리악병을 일으키는 원흉으로 지탄받는 글루텐이 없어 제빵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아도 우리가 옛날부터 수제비 칼국수 만두를 만들어먹던 그 밀 말이다.

그의 밀은 자기 농사를 시작하던 30년 전 우연히 손에 들어온 종자에서 시작되었는데, 그가 재배하는 작물 중 유일하게 돈이 안되는 품목이다. 수확 시기가 늦어 이모작도 안되고, 제분해주는 곳도 없어 특별히 웃돈을 주고 제분해야 되며, 그렇다고 인기가 있어서 비싸게 팔 수 있는 물건도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도 품을 들여 매해 일정한 평수의 밭에 밀 씨앗을 뿌리고 거두기를 무려 30년이다.

그는 왜 돈도 안되고 가공도 어려운, 게다가 어떤 해에는 채 팔지도 못하는 밀을 30년씩이나 재배해온 것일까? 최소투입에 최대이윤을 절대선으로 부르짖는 자본주의 경제원리에서 보자면 참으로 우둔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혹시 그 밀에 어떤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이나 아닐까? 혹시 그 밀을 통해 어떤 구도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아니면 혹시 그 밀을 꼭 먹어야 하는 누군가가 있는 것일까? 어떤 특별함에 대한 나의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하며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간단하다. “내가 그 씨를 안 뿌리면 없어지잖아요.”

그것은 놀라운 대답이었다. 농자재상에 가면 얼마든지 살 수 있고, 없는 씨앗이 없는 요즘 세상에서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는 말은 소설 속에나 있는 말인 줄 알았었다. 여기 한 농부가 자신이 뿌려 다시 거두지 않으면 종내 세상에서 사라질 씨앗의 보존을 위하여 돌아올 아무런 이익도 기대하지 않은 채 온전히 한 해의 힘든 노동을 바치고 있다. 그것은 대관절 어떤 의미일까?
 

▲ 정씨 아저씨의 양파밭. (정운오 제공)

종자의 반열

사람의 생존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공기와 물, 땅과 종자이다. 종자가 생존조건에 있어 공기와 물, 땅과 같은 반열에 있다는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선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먹어야 사는 것이 사람이고 식량은 곧 생명이며, 모든 식량이 종자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것을 빠뜨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세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씨앗을 심을 땅이요, 또 하나는 그 땅에 심을 씨앗이며, 마지막은 그 땅에 그 씨앗을 심을 농부이다. 경작할 땅과 재배할 씨앗을 가진 농부는 식량생산이라는 엄숙한 일을 감당하며 거기에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다. 그것은 햇빛과 흙, 물과 공기, 그리고 씨앗을 손에 쥔 인간으로 이루어진 세계다. 인류가 채집과 수렵이라는 돌아가지 못할 시대의 강을 건너온 이래, 씨앗을 심는 행위는 인간활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되었다. 씨앗은 바로 모든 것의 시작인 것이다.

충북 청원군에서 발견된 소로리 볍씨는 신석기 초기 이 땅의 첫 농부들로부터 시작된 1만년에 걸친 유장한 서사를 말해주는 증거물이다. 우리 농부들이 가졌던 씨앗은 그로부터 끊임없이 선별과 파종, 보존과 교환을 통해 개량되어왔고, 종자의 선별과 교환은 농부들의 가장 중요한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했다. 그 임무의 막중함을 일컬어 생겨난 것이 바로 ‘굶어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는 말인 것이다.

종자와 농부

종자는 자연물이지만 여타의 자연물들과는 다른 특수한 성격을 갖고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성장과 번식이라는 생명의 메커니즘을 갖고있는 종자의 재생산성이요, 또 하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운명이 좌우된다는 취약성이다. 종자는 그 풍성한 재생산성으로 폭발적으로 팽창하는 인류를 끊임없이 먹여왔으나 농부에 의해 뿌려지지 않으면 그 운명에 종말을 고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종자는 모든 것의 시작이고 또한 완성이다. 농촌사회학자 클로펜버그의 말처럼 ‘씨앗은 생산수단인 동시에 생산물’인 것이다. 종자의 여정은 파종으로 시작되고 수확으로 완성되며, 그것은 종자의 재생산 과정이기도 하다. 이 순환의 과정에 처음부터 끝까지 개입하는 것이 농부이고 여기에서 종자에 대한 농부의 권리가 생겨난다. 종자는 결국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탄생하니, 종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대의 노동과 지혜의 산물인 것이다. 종자는 대를 이어 전해지고 지역을 넘어 교환되었으며 국가의 출현 이후에는 각 나라의 부를 생산하는 핵심적인 자원이 되었다.

이렇게 재생산성과 농부의 권리라는 도덕적 범주를 가진 종자의 특성은 땅에서 나오는 수많은 것들이 모두 이윤추구의 상품으로 되어가는 자본주의 진행의 한 가운데에서 상품화하기 어려운 영역에 남겨져 있었다. 그러나, 아주 작은 일부가 아직도 농부들의 손에 남아있기는 하지만, 지금의 종자는 거의 모두 사유화되고 상품화되어 농부들의 손을 떠나갔다. 종자와 농부 사이의 전통적인 관계는 사라졌고, 농부는 종자의 생산자에서 종자의 소비자로 전락했다.

종자가 보편적인 상품이 되어버린 현상을 두고, 누구는 그것이 기술발전의 당연한 결과라 치부하고, 누구는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에서 해방되었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종자의 사유화와 상품화가 진행된 과정은 전 세계 농민의 빈곤과 지위상실의 진행과 정확하게 궤를 같이하며, 종자의 성격과 지위변화에 관한 이야기는 일정한 역사적 관점을 필요로 한다.
 

▲ 자가 채종한 토종배추 씨앗. (주미경 제공)

식물원이 수행한 종자탈취와 이전

그것은 말하자면 ‘이동’에서 시작되었다. 종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실꾸러미를 되감아가면 우리는 또다시 제국주의라는 괴물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스스로를 중심부, 나머지를 주변부로 일컬어왔다. 컬럼부스가 카리브해안에 도착해 해적질을 시작하고, 코르테즈가 아스텍을 무너뜨리고, 피사로가 잉카를 몰살시킨 이래로 18세기의 제국주의는 전 세계를 침략하면서 지구의 생태를 자신들의 이익과 요구에 맞게 변형시켰다.

설탕, 커피와 차, 면화와 고무, 열대세계의 부이며 그들의 생계수단이었던 식물들이 제국주의자들의 이익추구에 따라 지구적 차원에서 이전되었다. 서아프리카 리베리아의 커피가 전 세계로, 브라질의 고무가 실론으로 동남아로 이전되어 대규모 플랜테이션의 주작물이 되었고, 그 땅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어왔던 농민들은 자기 땅에서 쫓겨나 플랜테이션의 노예노동자로 전락했다.

이렇게 식물자원의 체계적 탈취와 이전을 담당했던 핵심적 제도가 ‘식물원’이다. 모든 제국주의 국가가 식물원 체제를 사용했지만 그 선두에 선 것은 단연 ‘영국왕립식물원 큐가든’이다. 큐가든은 남아프리카에서 경제적으로 유용한 식물을 찾아 아시아로 보내 플랜테이션을 확장하고, 홍콩, 태즈매니아, 나탈, 캘커타, 싱가포르 등에 위성 식물원을 운영, 전 세계로부터 식물과 씨앗을 수집하여 세기말에는 1백만종이 넘는 식물자원을 보유하며 그 제국주의적 역할을 유감없이 담당했다.

녹색혁명이 수행한 종자변형

이와 같이 시작된 종자의 사유화와 상품화가 비약적인 상승기를 맞이하는 시기는 20세기 녹색혁명의 시대다. 녹색혁명은 18세기 제국주의자들을 계승한 후대들에 의해 수행된 사건으로서, 현재 농업분야의 가혹한 경제적 생태적 제국주의 체제의 기초가 이 시기에 놓여졌다. ‘세계적 차원에서 식량의 획기적 증산’이라는 찬사로 치장된 녹색혁명의 실제 내용과 결과는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밝혀지기 시작했다.

녹색혁명은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진 전통적인 농사방법을 밀어내고 화학비료와 살충제와 기계에 의존하는 석유기반 농업을 정착시켰다. 또한 대규모 단작의 확대를 통해 엄청난 종들의 소실을 불러왔으니, 3천종 이상의 식물이 식량으로 재배되어왔던 세계를 15개 종, 그 중에서도 쌀, 옥수수, 밀, 3개의 작물이 세계곡물의 66%이상을 공급하는 세계로 바꾸어놓았다. 과거 식물원 체제가 수행했던 역할은 국제농업연구센터(IARCs) 체제가 충실히 이어받았으니, 멕시코의 ‘국제 옥수수 및 밀 개량센터’(CIMMYT)와 필리핀의 ‘국제쌀연구소’는 이 체제의 대표적 기관이다. 특히 ‘국제쌀연구’소의 종자는 ‘제국주의 종자’로 불리는데 우리나라의 통일벼가 이 기관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녹색혁명의 핵심은 변종 종자의 개발이다. 화학비료와 농약, 기계작업 등 녹색혁명 기술에 적합한 종자의 개발은 불가능하게 보였던 종자의 사유화와 상품화에 있어 괄목할 만한 성공을 가져왔다. 초국적 거대기업집단에서 생산되는 농기계와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하는 상품화된 종자의 출현, 학자들은 이것을 ‘녹색혁명 커넥션’이라 일컫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농부들이 전통적으로 수행해온 종자개량의 목표는 생산성과 품질의 향상이다. 그러나 종자의 사유화와 상품화를 추구하는 거대기업들의 종자개량의 목표는 다른 데에 있다. 생산성 향상이라는 목표는 같을지라도 그들의 핵심목표는 재파종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종자를 매해 팔리는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두가지 방법으로 달성하는데, 하나는 기술적으로 종자의 재생성을 파괴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법률적으로 종자의 독점적 소유권을 인정받도록 만드는 것이다.

종자의 재생성을 파괴하는 기술은 불임종자로 만드는 F1 교잡기술, 터미네이터 기술 등을 거쳐 지금은 분자수준에서 유전자를 조작하는 GMO기술에까지 이르러있다. 또한 법률적 측면에서는 각종 특허권과 지적재산권에 관한 국제협약들이 변형종자에 대한 기업들의 소유권을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 기업에서 판매하는 무 씨앗. (주미경 제공)

계속되는 해적질

인도의 생태사상가이자 운동가인 반다나 시바는 종자에 대한 이러한 파괴와 독점의 전 과정을 해적질이라고 말한다. 그는 컬럼부스에서 시작된 영토에 대한 서구의 해적질이 현대에 와서 동일한 주체에 의한 생물체에 대한 해적질로 이어지고있다고 이야기한다. 과거 영토에 대한 해적질이 교황의 승인 아래 이루어졌다면, 생물체에 대한 해적질은 특허권과 지적재산권이라는 국제법의 승인하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탄식한다. 제국주의가 출현한 이래, 그들의 세계에 대한 식민화는 표적을 달리 하며 단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는 것이다.

“종자는 장차 작물과 식량이 될 단순한 씨앗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의 저장소이다. 종자는 식량사슬의 첫번째 고리이며, 식량안보의 궁극적 상징이다.”

종자에 대한 반다나 시바의 이러한 정의를 놓고 보자면, 농부의 손에서 종자가 사라지는 일은 한 종류의 식량뿐 아니라 한 영역의 문화, 한 갈래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으로 된다. 그리고 농부의 손에 쥐어져 있던 온전한 종자를 대체하는 것은 재생이 불가능한 파괴된 종자이다. 농업과 식품체계는 이미 세계적 차원에서 열 손가락 안팎의 거대자본들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그들의 구호는 ‘종자에서 식탁까지’이다. 뒤에 생략된 말은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종자에서 식탁까지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오늘 아침 식탁에 오른 끼니거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우리 대부분은 알지 못한다.

정씨 아저씨의 밀은 어떻게 될까? 그가 30년을 지켜온 우리밀 종자의 운명이 가파른 고개를 오르고 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할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 녀석도 살아있을 것이야.’라고. 농부의 운명이 곧 종자의 운명이다. 농부가 살아야 종자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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